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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열풍 속 '벼락거지'된 사람들 "돈이 돈을 벌어? 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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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상식이 된 '불장시대'…코스피 4천 돌파
여윳돈 없고 주거 불안한 2030, 상대적 박탈감 느껴
"가용 자금 없는데 어떻게 투자", "열심히 살았는데 허탈"
소득구간 투자 여력 격차 계속 벌어져…빈익빈부익부 가속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회초년생 윤지영(28·가명)씨는 최근 몇 달간 마음이 복잡했다. 스무 살부터 부모님 도움 없이 독립해 돈을 벌기에만 바빴던 그에게 '코스피 4000 시대'와 주변 친구들의 투자 수익담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윤씨는 "한 달 수입에서 월세에, 생활비, 학자금 대출 상환까지 빼면 여윳돈은 거의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투자할 돈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불장'에 뛰어들자니 너무 늦은 것 같아 자포자기했다"고 속상한 듯 말했다.

그는 "코스피 황금시대다. 너는 돈도 버는데 왜 투자를 안 하냐"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태되는 기분이라고 씁쓸해 했다. 윤씨는 "서울에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이 벌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는데, 돈이 돈을 번다는 게 남 얘기 같다"며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나 생각까지 들었다"고도 했다.

이른바 '투자 전성시대'다. 지난달 말 코스피(KOSPI)가 사상 처음으로 4천 선을 돌파하면서 역대급 '불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매매 시가총액은 올해 꾸준히 오르다 지난달 최초로 1800조 원을 넘어섰다. 주식과 부동산 모두 호황을 맞으며, 사회 전반에서 '투자는 상식'이 됐다.

그러나 '불장시대'에 뒤늦게라도 뛰어들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회초년생인 2030 청년들은 투자 전성시대 앞에 취약층으로 전락했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앞도하는 시대에 이들은 한순간에 '벼락거지' 신세가 됐다며 한탄했다.

"근로소득으로 안 되는 사회, 내 탓처럼 느껴져"

윤씨 같은 청년들에게 불확실한 투자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투자를 하려고 해도 여윳돈이 없다고 토로했다.

올해 막 취업한 직장인 황현지(26)씨도 투자할 생각조차 못해봤다고 했다. 황씨는 "시드머니(종잣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주식을 쳐다보지도 못했다"며 "또래 친구들이 몇천만 원씩 벌었다는 걸 계속 듣다 보니 '나만 바보였구나'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요즘엔 재테크를 안 하면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 같다"며 "근로소득만으로는 안 되는 사회 구조가 내 탓처럼 느껴진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공기업 취준생인 김모(27)씨는 "주변 친구들이 주식으로 이번에 크게 벌었다, 옛날에 넣어 놓았던 게 지금 호황이 돼서 소위 '꿀 빨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나 역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허탈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대전에서 올라와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전모(30)씨는 투자를 못하게 되는 이유로 주거 불안을 꼽았다. 전씨는 "보증금으로 많이 들어가 있으니 애초에 가용할 수 있는 자금도 없는데 제대로 정착도 못하니 모아둔 돈도 없다. 앞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하겠냐"며 "있는 사람만 계속 돈을 버는 구조가 돼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한탄했다.

근로소득보다 투자소득이 훨씬 앞서가고 있는 요즘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한다. "과연 노동의 가치가 있긴 할까. 이렇게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있는 사람만 계속 돈 벌어…부의 불평등 가속화


통계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투자 여력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와 상위 20%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격차는 매년 커지고 있다.

2023년 전체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5864만 원으로 지난 2019년(4860만 원)대비 늘었으나,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간 격차는 1만1680만 원으로, 2019년(9882만 원)보다 벌어졌다. 처분가능소득은 전체 소득 중에서 세금·사회보험금·이자 등 비소비지출을 빼고 가계가 실제로 자유롭게 소비하거나 저축할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저소득층은 여윳돈이 부족한 동시에 부채 부담까지 늘고 있다. 신한은행이 발간한 '2024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득 하위 20% 구간의 부채보유율은 전년 대비 4.4%포인트 증가한 48.4%로, 전 구간에서 유일하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전성시대가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서강대 경제학부 김영익 교수는 "처분가능소득이 많을수록 은행,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게 된다"며 "상위층과 하위층 간 처분가능소득의 격차는 곧 투자여력의 격차로 이어지고, 양극화를 심화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 이하인데, 주가는 오르고 있다. 주식을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큰 돈을 벌고, 일자리조차 찾기 힘든 젊은 청년들은 진입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식 투자자 중 2030 남성이 수익률이 가장 낮은데, 이 현상 역시 가진 돈이 적으니 소수종목에 집중 투자할 수밖에 없고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해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리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진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우리 사회는 자본의 가치가 그 어떤 가치보다 지배적이기 때문에 지금 청년 세대는 돈이 없으면 그야말로 좌절감을 느낀다"며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빚투'나 '영끌 투자' 같은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어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고 투명성을 높여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등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투자 자체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는 측면도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조세 원칙에 따라 금융 투자에 과세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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