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서 열광하는 관객의 모습. 픽사베이"일단 처우가 너무 안 좋고 돈을 조금 줘도 한다는 사람이 당연히 많으니까 바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참여자 11 / 1년 경력 20대 A&R)
"엔터는 어차피 일할 사람 많아가지고 들어오고 싶은 사람 많아서 너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렇게 말하는 기조가 약간 있는 문화"(참여자 17 / 4년 경력 30대 마케팅)"누가 나가도 대체될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 그러니까 뭐가 달라지겠어요." (참여자 22 / 9년 경력 40대 A&R)시간과 인력은 부족한데 변수는 늘 예상보다 많고, 업무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며,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 일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턱없이 낮은 임금과 아티스트 및 상급자가 요구하는 과도한 감정 노동을 견뎌야 한다. 좁은 업계라 내부 고발이나 자정이 어렵고, 오히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는 반응이 먼저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주최로 '엔터 산업 노동자 면접 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화려한 K팝 산업, 이면의 노동을 조명하다'가 열렸다. 한빛센터는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27일까지 총 19회에 걸쳐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 29명을 대상으로 1:1 심층 면접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령대로 살펴보면 30대가 13명, 20대가 12명, 40대가 3명, 50대가 1명이었다. 경력은 1년 미만 4명, 1년 3명, 2년 2명, 3년 2명으로 3년 이하 종사자가 37.9%를 차지했다. 직군별로는 A&R(7명), 방송작가(4명), 마케팅(4명), 매니저(3명), 스타일리스트(3명), 공연기획(2명), 신인개발팀(2명), 촬영팀(1명), 영상편집(1명), 아티스트 담당(1명), 메이크업 아티스트(1명) 순으로, K팝 업계 종사자 수가 가장 많았다.
참여자들 평균 임금은 295만 원(전체 중위 임금의 67% 수준)이었고 일부는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는, 200만 원 이하 3명(11.5%), 200만 원 초과~300만 원 이하 10명(38.5%), 300만 원 초과~400만 원 이하 13명(50%), 400만 원 초과 3명(11.5%)이었다.
추가 근무 수당은 대부분 받지 않지 않았고, 대체 휴무 제도가 있어도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으며, 아티스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 특성상 종사자의 역량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한계 속에서 성과급 제도 역시 대부분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한빛센터 설명이다.
"모두의 시간을 맞추려면 되는 시간이 새벽 2시"(참여자 20 / 13년 경력 40대 A&R)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스케줄들이 되게 타이트하게 나와"(참여자 25 / 5년 경력 30대 매니저)서 시간대 상관없이 '즉시 확인'해야 할 일이 많고, 아티스트는 "자기가 새벽에 일하니까 우리도 새벽에 일하길 바라는"(참여자 26 / 3년 경력 20대 A&R)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캐스팅 팀 같은 경우에는 경쟁이라든지 시간 싸움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탠바이 상태야. 편안하게 온전히 쉰다거나 이런 게 없이 업무적인 긴장감이 계속되는 상태"(참여자 5 / 3년 경력 20대 신인개발팀) "맨날 야근"(참여자 27 / 9년 경력 30대 스타일리스트) "큰 단독 공연이나 프로젝트가 있으면, 한 달 반 두 달 맨날 새벽 3시 퇴근"(참여자 19 / 1년 경력 20대 스타일리스트) 등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은 일상이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2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엔터 산업 노동자 면접 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화려한 K팝 산업, 이면의 노동을 조명하다'를 열었다. 김수정 기자'체계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턴이 할 일부터 부장이 할 일까지 저 혼자 다"(참여자 11 / 1년 경력 20대 A&R) 할 정도로 한 사람이 많은 일을 맡으니, "직무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참여자 12 / 2년 경력 20대 A&R)거나 "내가 하면서도 여러 개를 하고 있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전문적이게 발전한다는 생각보다 넓고 얇게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참여자 18 / 2년 경력 20대 공연기획)이 든다는 것이다.
본인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알아서 일을 찾아서 배워서 해야 되는 일"(참여자 22 / 9년 경력 40대 A&R)로 바라보았고, 사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회사에서는 뭐든지 해 보라고 해서 좀 맨땅에 헤딩을 1년간"(참여자 5 / 3년 경력 20대 신인개발팀) 한 사례도 있었다. "시스템 마련이 잘 안 돼 있어"서 "인력 배치 절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모두 참여자 17 / 4년 경력 30대 마케팅)는다고도 털어놨다.
아티스트라는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의존도가 높다 보니 아티스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공론화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2년 경력의 20대 메이크업 아티스트(참여자 10)는 아티스트가 먼저 접근하더라도 거부하기가 힘든데 오히려 본인이 매번 소문이 좋지 않게 나서 괴롭고, 현장에서 본인의 성 경험을 얘기하는 등 기본적인 '거리 유지'도 하지 않는 일도 있다고 밝혔다.
5년 경력 20대 스타일리스트(참여자 13)는 모든 스태프가 있는 가운데 아이돌에게 신발을 신기려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아이돌이 빨리 신기라며 소리를 질렀던 일화를 전했다. 1년 미만 경력 20대 매니저(참여자 14)는 "어떤 배우를 만나느냐에 따라 업무 강도가 천지 차이"라며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 가지고"라고 말했다.
의상 준비 기간이 3일밖에 안 남은 촉박한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밤 11시에 갑자기 '이렇게 준비해 줘요'라고 연락(참여자 19 / 1년 경력 20대 스타일리스트)한다든지, "작품만 들어가면 갑자기 엄청 사람이 예민해져가지고 어리광을 엄청 부리는"(참여자 29 / 1년 미만 경력 20대 매니저) 등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엔터업계 노동자가 겪는 직장 내 괴롭힘은 물건을 던지는 물리적인 폭력, 폭언이나 고성을 포함한 언어 폭력, 과중한 업무 부여 혹은 업무 배제 등의 따돌림 행위 등이 있었다.
"혼나는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브러시를 던지거나"(참여자 10 / 2년 경력 20대 메이크업 아티스트) "자기가 좋은 사람한테만 계속 공유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절대 공유 안 해"(참여자 26 / 3년 경력 20대 A&R) 주는 식이다. "신고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엔터업계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참여자 22 / 9년 경력 40대 A&R)다는 체념적인 반응도 나왔다.
이채은 한빛센터 기획차장은 "업무 현장에 있지 않아도 집에 있더라도 업무 연락과 지시가 수시로 이어지기에, 종사자들은 항상 대기 상태로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해서 신경이 예민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했다. 여성 질환 수술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라며 "20%가 정신적인 어려움이었는데, 불안과 우울 증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채은 한빛센터 기획차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발제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열악한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채은 차장은 "엔터 산업은 높은 IP 의존성을 보인다. 하나의 상품, 무형 자산으로서 가치를 중시한다"라며 "(회사는) 아티스트에 투자하지 인력 충원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종사자들이 여러 명이 해야 할 업무를 한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 차장은 "업계 전반에 일하는 사람 존중하지 않는 '엔터 열정 페이' 문화가 존재한다"라며 "부당한 처우 문제 제기할 경우 해고되거나 일감 배제 등 불이익이 우려된다. 업무 결정 권한이 상급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조직 내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문제로 볼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엔터업계) 투자 규모는 크게 확대됐지만 노동 환경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투자 보상 심리와 무분별한 시장 진입으로 인해 엔터 산업 전반의 일자리 질 낮아 노동조건이 열악해졌다"라고 바라봤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1886년에 미국 뉴욕에 지부 1호를 설립한 공연 기술자 노동조합의 요구 조건을 언급했다. △업무 영역의 확실한 구분 △8 to 5 표준 8시간 노동 정착 △공연과 비공연 의무의 확실한 정의 및 각 분야에 따른 적절한 임금 체계 마련 △배우나 혹은 기술이 없는 부적격자 기술직 고용 불가가 큰 줄기다.
"엔터 산업에서 노동자성을 규명할 때 '협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라고 한 이 집행위원은 "콘텐츠 수정에 횟수 제한이 없는 것 같다"라며 "'계속적인 수정'이 업무 특성이라고 한다면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지 않나. 24시간 계속 돌리는 노동은 개선이 필요하고, (이 부분 관련해) 계약 조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영화산업 실태조사를 맡아온 노무법인 화평의 이종수 노무사는 '대중문화'라는 큰 틀에서 조사를 하기보다 영화·방송·출판·게임처럼 K팝도 별도의 정기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책을 결정하는 건 국회의원, 대통령, 문체부 등인데 여기(시야) 안에 안 걸리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검색이 되도록 해야 예산도 배정되고 매년 실태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빛센터의 조사 결과, 최저시급 미달,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장시간 노동 등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지방노동관서에 노동관계법 위반에 따라 벌어진 피해 권리 구제를 요청하는 제도인 '근로감독 청원'이 있다고 이 노무사는 전했다. 재직 중이거나 퇴직한 노동자가 신원 특정 등 불이익 등을 고려해 직접 신고가 어렵다면 감독 청원 대상 사업장에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같은 '단체'도 청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이 노무사는 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가 성희롱 및 괴롭힘 신고 사건과 개별 분쟁 사건을 담당하게 할 것, 노사정 협의기구를 설치해 종사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것, 영화계 근로표준계약서 사례처럼 K팝 업계의 노동조건 표준화·통일화를 추진할 것 등을 제시했다.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청년 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해 본 결과 청년 여성은 몸을 써서 일한다. 예를 들어 스타일리스트는 큰 짐을 직접 꾸리고 나르고 다녀야 하고, 촬영 보조도 렌즈 박스 무게만 10~20㎏에 달하는 등 사회적 편견과 달리 힘을 써야 하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능력 증명에 관한 부담을 지고 있으며, 각종 잔심부름을 도맡고 상사와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기분을 신경 써야 하는 등 돌봄노동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국장은 본연의 업무 이상으로 무리하고 돌봄노동까지 수행함에도 승진에서 배제되는 사례를 거론한 후 "문제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데 엔터업계 종사자 문제는 '예술인의 힘듦'으로만 희석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고 짚었다.
이어 "일터는 변하지 않았는데 당사자들만 병원에 가서 약 받는 건 근본적으로 노동자 건강은 절대 나아질 수 없다"라며 "일하는 누구든 포괄하는 산재보험, 유급병가, 상병수당을 받도록 마련되어야 회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