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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은 왜 '금기'를 깨고자 했을까[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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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검은 수녀들'은 국내 보기 드문 오컬트 장르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로 알려지며 관객들 이목을 끌었다. 큰 기대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라서 새롭고 또 '오컬트'이기에 아쉬운 점이 공존하는 영화다.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희준(문우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올 수 없는 구마 사제를 기다리다가 악령에 사로잡힌 부마자가 희생될 것이 분명하자 유니아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기로 한다. 유니아는 희준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의학이라 믿는 바오로 신부(이진욱)의 제자 미카엘라 수녀(전여빈)를 끌어들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소년을 살리기 위한 위험한 의식을 시작한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수녀, 금기를 깨다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은 '오컬트' 장르로 홍보되고 있지만, 정확히는 오컬트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드라마 또는 두 여성의 버디 무비에 가깝다. 유니아 수녀와 미카엘라 수녀는 각자 다른 출발점에서 서로를 마주하지만,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금기를 정면에서 맞받아치며 결국 동일한 목적지에 도착한다.
 
보수적인 종교인 가톨릭에서 서품조차 받지 못하는 수녀들에게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유니아 수녀는 모든 금기에 반발한다. 두 수녀 앞에 놓인 금기는 단순히 '서품'을 받지 못한 것만이 아니다.
 
가톨릭 안에서조차 구마 의식에 대해서는 믿음과 불신이 공존하며, 누군가는 무속 행위, 즉 미신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톨릭 내에서 구마의식을 두고 믿음과 불신이 공존한다. 그런 의식을 가톨릭에서 서품도 받지 못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자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수녀이자 '여성'으로서 유니아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구마에 나서고, 수녀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서품을 받은 사제들에게 거친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을 향해 '미친X'이라 하는 악령과 남성을 향해 "짜증 난다"라며 입을 틀어막는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애초에 유니아는 여성인 자신을 향한 여성 혐오적인 발언에도 아무런 타격감을 받지 못한다는 듯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구마를 통해 부마자를 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금기를 넘는 유니아는 경계에 머물렀던 미카엘라 수녀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미카엘라는 애초에 유니아와 같은 부류의 인물이다. 그러나 과거로 인해 자신을 부정하고, 강박적으로 억압한다. 그런 미카엘라는 유니아 수녀를 통해 모호하게 걸쳐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금기의 경계를 넘어 '여성 최초 사도'의 이름을 이은 유니아의 의지를 이어 나간다.
 
다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갈 뿐이다. 애초에 유니아는 순교한 성인이고, 미카엘라(대천사 미카엘의 여성형 이름)는 악마에 맞선 천사라는 점에서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엔딩은 두 갈래 길일 수밖에 없었다.
 
두 수녀 캐릭터에서 아쉬운 건 '미친X'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금기를 뛰어넘는 유니아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인물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또한 미카엘라에게 과거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이를 기대하게 했지만, 정작 풀어내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점 역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종교-무속-타로의 공존은 신선…그러나 화합 안 된 혼합 그쳐


'검은 수녀들'이 엑소시즘을 다루는 여타 오컬트 영화와 또 다른 지점은 가톨릭 구마 의식만을 동원하지 않고 한국 무속 신앙과 서양 점술, 즉 비종교적인 미신으로 치부되는 타로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심지어 수녀 출신 무속인도 등장한다. 여성 종교인을 향한 억압과 차별, 금기는 '검은 수녀들' 속 여성들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깨진다.
 
종교와 미신의 결합, 무속인을 두고 신성을 경험한 자라 칭하고 그의 합류로 구마 의식이 완성된다는, 종교와 미신의 결합은 오컬트 영화의 금기마저 깨트리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화합물이 아닌 혼합물에 그쳤다는 점은 아쉽다. 여러 가지 오컬트 요소들을 영화 안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영화에 녹아들었느냐는 점에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오컬트적인 요소들은 가져오되, 이들이 파편화돼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수다쟁이 악마는 지치지만…박력 넘치는 유니아 스타일은 통쾌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구마 의식'이다. 사제가 아닌 수녀가 진행하는 구마 의식은 그 자체로도 범상치 않다. 기껏해야 성수를 한 바가지 퍼붓거나 그나마도 모자라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봐온 관객들에게 20리터는 될 법한 말통으로 성수를 아낌없이 들이붓는 모습은 시원시원하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야 할 구마 의식은 힘이 빠진 모양새다. 구마를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클라이맥스에서 본격적인 구마 의식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초반부터 계속 구마에 한 발 두 발 담그길 반복해서 정작 하이라이트 구마 의식에서 임팩트가 약해졌다.
 
그리고 부마자의 육신을 빌린 악마가 너무 말이 많다는 점은 감점 요소다. 유니아 수녀가 악령의 소리를 듣는 영능력자이고, 그가 청각에 예민하다는 점을 고려해 악마가 청각 공격을 시전했다고 좋게 생각하더라도 악마가 너무 수다스러워서 듣는 관객이 먼저 지쳐버린다. 그렇지만 말 많은 악마의 입에 성물을 집어넣으며 입을 다물게 하는 유니아 수녀의 박력은 신선하고 즐겁다. 마치 악마를 향해 중지를 날리던 콘스탄틴처럼 말이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자신을 멸시한 악마, 유니아만의 방식으로 구마하다

 
영화 개봉 전 스포일러가 되면서 여성혐오적 요소로 불호 포인트가 된 악마 처리 방법은 영화에서 등장한 여러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검은 수녀들'의 구마는 성자와 악마, 생명과 죽음, 불과 물,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로 펼쳐진다. 여기에는 영화가 가져온 가톨릭과 성경, 한국 무속신앙 등이 뒤섞여 있다.
 
영화에서 부마자에게 닿은 목화꽃이 까맣게 시들어 버리지만, 목화꽃이 유니아 수녀에게 닿았을 때는 하얗게 피어난다. '생명신' 혹은 '생명을 낳는 신'인 삼신(삼신할미)의 상징 목화꽃이 유니아와 부마자에게 각각 다르게 반응한 장면을 눈여겨봐야 한다.
 
성서에 따르면 동정녀는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선함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를 성서 속 마리아의 입장에서 풀어내면,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선함'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놓고 봤을 때, 여성은 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선함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검은 수녀들'에서 유니아는 스스로의 믿음과 의지와 용기로 부마자 속 악마를 자신의 몸 안에 가둔다. 생명을 꺼트리는 악마, 물에서 태어난 악마를 생명을 피워내는 유니아가 자신의 몸 안에 품은 채 물과 상극인 불로 뛰어들어 퇴마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유니아는 스스로 선함을 행하지 못하는 동정녀가 아니라 스스로 선함을 행하는 선지자이자 생명의 구원자가 됐다고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종교적인 해석을 배제하더라도, 애초에 유니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생명을 구하고자 용기 있게 나아갔다. 그렇게 '서품조차 받지 못한' 수녀가 금기와 멸시를 이겨내고 한 생명을 구하고 '서품을 받은 사제'조차 하지 못한 세상의 구원자가 됐다. 스스로의 의지로 말이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두 여성'의 혐관 워맨스는 '검은 수녀들'만의 미덕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부터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라는 점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렇기에 '검은 사제들'을 본 관객이라면 자연스럽게 '검은 사제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관객들의 기저에 깔린 채 '검은 수녀들'을 대하게 만든다. 또한 '검은 사제들'에 대한 오마주 내지 헌정처럼 '검은 사제들' 속 장면과 구도를 가져온 게 다수 눈에 띈다. 자연스레 '검은 사제들'의 그림자를 어떻게 떨쳐낼 것인가가 '검은 수녀들'의 과제가 된 셈이다.
 
그렇지만 국내 대형 상업 영화, 장르 영화에서 나오기 힘든 여성 투톱 영화라는 점은 분명 반가운 지점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여성이 부마자를 구한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금기를 넘어 연대하는 지점, 두 여성의 믿음이 만나는 곳에 피어난 구원,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혐관 워맨스는 '검은 수녀들'만의 미덕이다.
 
114분 상영, 1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NEW 제공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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