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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독립' 꿈꾼 안중근이 2024년에 건넨 등불 '하얼빈'[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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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겨레의 등불' 안중근 장군이 고뇌와 두려움, 슬픔 속에서도 지켜냈던 '평화'를 향한 신념은 결국 대한독립이란 미래를 열었다. 그런 안중근 장군의 고결함은 2024년에도 저마다의 등불을 들고 폭력에 맞설 힘을 건넸다. 영화 '하얼빈'은 '인간 안중근'을 이해하는 시간을 통해 그의 고결한 신념이 어떻게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현빈)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이동욱)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등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민낯을 들췄던 우민호 감독이 이번엔 1909년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하얼빈'은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본 '겨레의 등불' 안중근 장군 안에 감춰진, 마치 그의 개인적인 일기 속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엿본 느낌마저 준다.
 
'하얼빈'은 일반적인 영화보다 더욱더 '감각'하는 영화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떠오르는 감정을 느껴야 한다. 한 인물의 여정과 고뇌에 스파이 장르물을 입힌 ​구조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회화와 시에 가깝다.
 
많은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산문적인 방식보다 ​간결하게 압축하고 생략하는 형태의 시적 표현 방식을 가져간다. 그렇기에 영화의 여백에서 '장군 안중근'과 '인간 안중근' 사이 괴리를 발견하고 읽어내야 한다. 이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감독은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시의 세계와 미시의 세계를 오간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대한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투사로서의 투쟁은 거시적인 풍경화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는 미시적인 초상화로 그려낸다. 그렇게 웅장한 풍경화와 비장한 인물화가 교차한다.
 
영화의 시작은 거시적인 풍경이다. 영웅은 난세에 나온는 말이 있다. 얼어붙은 호수 위에 홀로 남겨진 안중근 장군의 뒷모습은 전쟁과 식민통치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숙명처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 안중근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드러낸다. 그렇게 영화는 점차 안중근의 미시의 세계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안중근은 영화 내내 고뇌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영웅 안중근' ​뒤에 감춰진 한 ​인간의 모습은 나약하고 처절하다. 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안중근에게 현실은 신념과 의지를 꺾으라 말한다. 지옥과도 같은 폭력적인 현실에서 평화에 대한 추구는 동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안중근은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이루고자 한다. 그 길이 마치 얼어붙은 호수 위에 홀로 남겨진 듯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슬픔을 안겨줘도 말이다.
 
​마지막까지 신념과 의지를, 이창섭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결함'을 잃지 않은 안중근의 발걸음은 결국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그 기회를 받은 이는 안중근의 고결함을 잇고, 그렇게 이어진 고결함은 안중근이 살아생전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대한독립을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안중근의 이야기는 다시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되돌아온 시작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잘 몰랐던,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안중근의 신념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처음엔 그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우리는 러닝타임의 끝에 다다르기까지 안중근의 행보를 함께 했고, 그와 함께 그의 고뇌를 느꼈다. 그렇기에 비로소 얼어붙은 호수 위에 선 안중근의 얼굴을, 그의 신념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됐다.
 
뒷모습이 아닌 그의 얼굴과 눈빛을,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하얼빈'이 달려온 이유다. 웅장한 풍광 대신 비장한 초상을 비춘 이유, 거시적인 세계를 거쳐 미시적인 세계에 다다랐기에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얼굴이다. 그렇게 우리가 몰랐던 인간 안중근, 이해할 수 없었던 안중근의 고결함이 비로소 우리에게도 이어지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대한독립 운동의 중요한 순간으로 가기까지 과정을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그려낼 것이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하얼빈'의 문법은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하얼빈'의 목표는 단순히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스크린에 재현하는 게 아니다. '의사' '장군' '겨레의 등불' '영웅'이라는 거시적인 모습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안중근의 미시적인 내면으로 가는 여정을 영화적으로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있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하얼빈'이라는 영화가 가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무엇보다 '하얼빈'은 지금 시국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갑작스럽게 어둠이 덮친 현실에서도 안중근 장군의 유훈을 알게 모르게 기억하고 받아 든 이들이 자신만의 등불을 들고 어둠을 밝혀나가고 있다. '하얼빈'은 어둠을 관통하는 모든 사람의 고뇌와 슬픔, 두려움과 공명한다. 이미 그 길을 걸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와 그의 신념이 지금의 우리와 공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동시에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둠 속 얼어붙은 호수 위에 홀로 선 것 같이 느껴지는 우리에게 지금 각자의 손에 든 작은 등불이 횃불이 되어 어둠을 밀어내고 세상을 밝힐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폭력 앞에 평화로 대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이야기한다.
 
지금 현실에 '하얼빈'이란 그런 의미다. 함께하는 동지이자 앞으로 나갈 힘, 지금의 어둠 그리고 타협과 침묵을 바라는 현실에 굴하지 말고 작은 등불을 든 동지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라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이러한 위로와 응원이 와닿을 수 있었던 건 안중근 장군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열연으로 스크린에 구현한 배우들의 힘이 크다. 그리고 그들과 대척점에 섰던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을 연기한 배우들의 힘 또한 '하얼빈'을 지탱한 또 다른 축이다. 여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1909년의 거대한 세계를 우리 안으로 가져온 우민호 감독의 신념이 '하얼빈'을 완성했다.
 
113분 상영,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하얼빈' 포스터. CJ ENM 제공영화 '하얼빈' 포스터.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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