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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호러가 된 19세기 여성의 욕망 '노스페라투'[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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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노스페라투'(감독 로버트 에거스)

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노스페라투'가 100년의 세월을 넘어 2025년 관객들을 찾아왔다. 전염병의 공포가 가득했던, 그러면서도 여성의 욕망을 악마성으로 치부했던 19세기를 담은 낯설지만 매혹적인 고딕 호러로 말이다.

오랜 시간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악몽과 괴로움에 시달려 온 엘렌(릴리 로즈 뎁)은 남편 토마스(니콜라스 홀트)가 거액의 부동산 계약을 위해 머나먼 올록성으로 떠난 후부터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알 수 없는 말을 되뇐다.
 
그러한 가운데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며 그림자는 마을로 점점 짙게 번져오고, 영원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이 엘렌을 찾아온다.
 
1922년 개봉 이후 수많은 공포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독일 최초 뱀파이어 영화 '노스페라투, 공포의 교향곡'(감독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이 로버트 에거스 감독을 손길을 거쳐 '노스페라투'로 다시 태어났다.

고딕 문학이 신비와 주술, 공포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처럼 '노스페라투' 역시 회색빛 악몽과 현실, 이성과 욕망, 과학과 주술, 사랑과 탐욕, 호러와 에로티시즘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이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관객들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반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것들 사이 경계를 오가며 갈등하고 부딪히고 매혹된다.

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1993) 속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매력적인 외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드라큘라 백작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노스페라투' 속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살아있는 시체 같은 노스페라투 올록 백작은 낯설고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올록 백작의 외형은 드라큘라 콘텐츠의 뿌리인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묘사하는 외형과 흡사하다. 매부리코에 검은 콧수염, 딱딱하고 험상궂으며 호색적인 인상, 짐승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크고 하얀 이빨 등 '노스페라투'의 올록 백작은 원작에 가깝다.
 
공포 로맨스에 가까운 '드라큘라'와 달리 '노스페라투'의 올록 백작은 죽음으로 둘러싸인 외형에 엘렌을 향한 탐욕을 드러내는 '재앙'적인 존재다. 한 명의 존재, 당대의 인간들, 한 시대에 드리워진 탐욕과 죽음의 공포가 '노스페라투'의 기저에 깔려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전염병'에 대한 은유다. 흡혈귀의 저주와 이를 대변하는 쥐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세기를 위협했던 흑사병에 대한 공포를 상징한다. 이러한 올록 백작을 대변하는 동물이 쥐라면, 올록 백작을 처치하는 핵심 인물인 엘렌과 조력자 폰 프란츠 교수의 곁에는 고양이가 존재한다.
 
전염병이라는 익히 알려진 19세기의 공포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와 '노스페라투'를 엮어 살펴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의 욕망이다.
 
주인공 엘렌이 지닌 성적 욕망은 죽음과 탐욕의 올록 백작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리고 엘렌이 지닌 욕망의 근원인 올록 백작은 인간 사회에 전염병이란 죽음을 가져온다. 여성의 욕망이 죽음의 공포가 된 순간이다.
 
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앞서 말했듯이 노스페라투 혹은 드라큘라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전염병 공포에 대한 은유는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그러나 '노스페라투'가 엘렌이라는 여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을 상기할 때, 19세기 빅토리아 시대가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얼마나 금기시하며 억압했는지와 연결해 볼 수 있다.
 
당시 여성의 욕망은 억눌러야 했고 발현해선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영화에서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이를 충족하고자 했던 엘렌을 두고 올록 백작은 인간에서 벗어난 존재라 칭한다. 욕망의 상징인 악마 노스페라투를 불러들인 것 역시 엘렌이다. 즉 엘렌에게 올록 백작은 내면에 가둬야 했던 '욕망'을 은유한다.
 
19세기를 배경으로 여성의 욕망을 다룬 영화 '가여운 것들'(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에서도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니지 못한다. 또한 영화 속 성적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 주인공은 비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노스페라투'에서 주로 엘렌의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은 현실이 아닌 꿈이었고, 그 꿈은 흑백의 악몽으로 표현된다. 토마스와의 관계에서도 엘렌은 노스페라투라는 성적 욕망과 토마스라는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고 괴로워한다. 꿈에서만 충족되던 엘렌의 욕망은 노스페라투라는 악마적인 존재로 현실에 현현했고, 그 욕망의 실현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
 
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금기시된 욕망과 사회가 허락한 사랑 내에서 갈등한 엘렌이 결국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을 지키기 위해 노스페라투라는 악몽을 선택한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은 19세기 욕망하는 여성의 결말을 보여주는 듯하다. 악의 처단이라는 영화의 엔딩이 새드엔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엘렌의 악몽이 아닌 19세기 현실에 있었던 것이다.
 
고딕 호러와 에로티시즘이 뒤얽힌 '노스페라투'에서 엘렌과 토마스, 올록 백작을 연기한 릴리 로즈 뎁과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는 악몽 같은 미장센 안에서 매혹적으로 존재한다. 욕망과 욕망을 넘어선 광기 그리고 공포라는 감정, 회색빛 비탄을 스크린에 펼쳐낸 세 배우의 열연은 19세기 고딕 호러라는 퍼즐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릴리 로즈 뎁의 빙의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한다.
 
점프 스퀘어와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각종 장치로 심박수를 높이는 현대적인 공포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노스페라투'는 분명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 가까운 분위기, 불쾌한 듯 매혹적인 악몽이 선사하는 공포는 분명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132분 상영, 1월 1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노스페라투'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노스페라투'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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