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27주년인 1일 친중 성향 홍콩 주민들이 오성홍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홍콩 기본법 제 23조(홍콩판 국가보안법) 입법이 완료되고 선거 제도가 개혁됨에 따라 홍콩은 이미 기회가 도전보다 더 큰, 번영을 이루기 위해 잘 통제된 상태로 최고의 발전기에 접어들었다."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홍콩 반환 27주년을 맞은 1일 "조국 복귀 27주년, 홍콩 최고의 발전기'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오늘날 홍콩의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이러한 조치에 따라 홍콩에서 폭력적인 시위를 기획하고 지휘한 거의 모든 반중 및 반홍콩 인물이 재판에 회부되거나 재판을 받고 수배자 명단에 오르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강조했다.
홍콩 반환 27주년을 맞아 나온 관영매체의 이같은 보도는 홍콩을 바라보는 중국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842년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가 당시 대영 제국에 식민지로 내준 홍콩은 이후 1984년 중국과 영국간 반환 협정 체결을 거쳐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다.
홍콩 반환 협정에서 양국은 반환 이후 50년간 홍콩이 '일국양제(一國兩制)' 개념 하에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 정치·경제·사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도록 상호 약속했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현재 중국의 홍콩 통치 방향이 '양제' 보다는 '일국'에 방점이 찍히면서 약속받은 고도의 자치권은 커녕 '홍콩의 중국화'는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두 차례 민주화 요구에 강경진압으로 맞대응
2020년 5월 홍콩 반정부시위 현장. 연합뉴스첫번째 위기는 홍콩 반환 17주년을 맞은 2014년 찾아왔다. 그해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발표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전인대가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하자 홍콩의 대학생들은 물론 중·고등학생까지 들고 일어났다.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지자 홍콩 경찰 당국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고, 시위대가 우선을 펴 최루탄을 막아내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되며 이를 '우산혁명'이라 불렀다.
두번째 위기는 2017년 3월 찾아왔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 제정을 추진하자 이 법안이 홍콩의 반중 인사, 인권 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왔고 이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그해 6월 9일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주최 측 추산 103만명이 참가했는데 홍콩 시민 7명 가운데 1명이 참여한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였다.
시위가 점차 격화되자 당황한 홍콩 당국은 범죄인 인도법 제정을 철회했지만, 시위의 성격은 이미 범죄인 인도법 반대를 넘어 중국화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로 확대돼 갔다.
이에 홍콩 경찰은 최루탄은 물론 실탄까지 사용하며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이어갔고, 당국은 복면 쓴 시민을 처벌하는 복면금지법까지 도입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선거제 개편으로 통제 강화
홍콩 경찰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 35주년인 4일 홍콩 코즈웨이 베이 지역에서 경찰이 한 여성을 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2014년과 2019년 두차례에 걸친 시위를 통해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는데는 성공했지만 홍콩의 중국화를 막는데는 실패했다.
이후 중국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을 시행해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 행위자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올해 3월 23일부터는 홍콩 당국 주도로 홍콩판 국가보안법(수호국가안전조례)이 시행됐다. 이는 2020년 전인대가 대신 제정한 홍콩국가보안법을 대체하는 법안으로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새로 제정된 홍콩판 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과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39가지 안보 범죄 유형과 이에 대한 처벌을 담고 있으며, 특히 '외부 세력과의 공모'를 중대 범죄로 취급해 가중처벌하고 있다.
여기다 중국 당국은 2021년 5월 홍콩에서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소위 '애국자' 여부를 가리는 공직선거 출마자격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도록 선거법을 개편해 사실상 직할 통치체제를 확립했다.
이밖에도 1990년부터 31년간 매년 6월 4일 저녁이면 톈안먼 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홍콩에서 열렸던 대규모 촛불집회가 지난 2021년부터 홍콩 당국의 원천봉쇄 조치로 더이상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해외자본 줄줄이 떠나며 껍대기만 남은 금융허브
홍콩 센트럴의 증시 스크린. 연합뉴스문제는 이렇게 홍콩에서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가 더이상 용납되지 않으면서 그동안 홍콩의 번영을 이끌었던 해외 자본이 떠나고 국제허브로서의 위상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낮은 세금과 최소한의 규제로 전세계 자금이 몰리며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 자리를 꿰찼던 홍콩은 이제 껍데기만 남은지 오래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홍콩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의 자본 조달액은 102억 달러(14조 790억 원)에 그쳤는데, 이는 2021년(533억 달러) 대비 81%나 줄어든 수치다.
또, 올해 상반기 글로벌 증시 IPO 순위에서 홍콩증권거래소는 전년 동기보다 4계단 떨어진 13위를 기록했다. 조달액도 15억 달러(2조 685억 원)에 그쳐 전년 상반기보다 35%나 줄어들었다.
이는 홍콩이 투자처로 매력을 잃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자금줄이었던 해외 자본이 떠나면서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홍콩 정부가 개인 소득세 등에 대한 증세를 추진하면서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더욱 반감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매력 점차 사라져가는 홍콩, 중국에 득보다 실
홍콩의 중국명은 샹강(香港)으로 말그대로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홍콩은 중국 명나라때 향나무 중계무역이 성행했던 곳인데 향나무의 은은한 향기가 항구에 그윽해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1980~90년대 전성기 시절 홍콩 영화를 보며 홍콩의 번영과 자유, 화려함에 한번쯤 빠져들었던 이라면 '향기로운 항구'라는 명칭이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반환 이후 홍콩은 그 향기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모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국양제' 약속과 급격한 중국화 때문 만이라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다 홍콩이 그동안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혁·개방을 모토로 빠르게 성장하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륙의 끄트머리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홍콩의 번영은 중국과 차별화되는 홍콩 만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매력을 잃는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