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인공지능(AI)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왔을 뿐이다."
중국 양회 기간인 지난 9일 전국정협 위원인 랴오샹중 중국전매대학(중전) 당서기는 대학이 전공 16개를 폐지하기로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불가피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이 올인하고있다시피 한 AI는 경제·산업을 넘어 교육 분야에도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폐지한 전공 대다수는 번역, 사진, 시각전달디자인, 예술관리 등 역사가 오래된 전공이었고 중국 내에서 최상위권에 있던 만화 전공도 포함됐다.
관영매체 등 다수의 언론들이 이들 전공은 AI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분야여서 "독립적인 존재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랴오샹중 서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미래는 인간과 AI가 분업하는 시대가 될 것이므로 교육 개혁이 시급하며, 교실 수업은 완전히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핵심 요지다. 앞으로 이런 전공 폐지 및 조정이 더 큰 폭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AI가 몇 초 만에 완성할 수 있는 기초 능력을 몇 년의 시간을 들여 쌓게 하는 게 맞느냐는 논리다. 여기에는 예방적으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청년실업은 더 치솟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묻어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이에 따른 충격파는 작지 않았다. 그날 밤 이 소식이 웨이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해당 학교 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빠르게 퍼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뉴스를 본 순간, 온몸이 얼음이 된 듯했습니다. 저희가 중전에 합격한 것은 이 전공들을 보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없앤다고 합니다. 우리의 학위는 여전히 유효한가요? 앞으로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졸업 후 취업할 때, 고용주가 우리 전공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고 '도태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 글은 대상이 아닌 전공 학생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언제 자신에게 닥칠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 대규모로 전공을 폐지한 대학은 중전만이 아니다.
지린대학은 6개의 예술 관련 전공을 포함해 19개 전공 모집을 중단했고, 난창대학은 희극영상문학, 방송TV편집연출, 애니메이션 등 8개 전공 폐지를 추진 중이다.
베이징언어대학은 석사 모집에서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등 7개 번역 전공 모집을 중단했다.
중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도 전국 대학에서 총 2220개 전공이 모집을 중단했고 1428개의 전공이 폐지됐다. 2년간 폐지 및 모집 중단된 전공은 6638개에 달한다.
한국 뿐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지만, 중국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목표(전체의 20%)를 정해놓고 전공 구조조정에 나서다 보니 그 속도와 폭이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많은 전공이 폐지·통합되고 있지만 AI 시대에 맞춰 새로 신설된 전공도 적지 않다. 중국전매대학은 지난 7년간 지능영상예술, 게임예술디자인, 지능시청각공학 등 20개 전공이 새로 생겼다. 대부분 AI 시대에 맞춰 처음 만들어지거나 기존 전공에 AI를 접목시켰다.
중국 전체로 보면 지난 2년간 신설된 전공은 3715개다. 신설보다는 폐지·모집 중단이 훨씬 많다.
난징대학은 2024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AI 교양 필수 과목을 개설했고 현재까지 100여 개의 AI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푸단대학은 10개 우수 학과를 선정해 '학술형 학과 박사+전문형 AI 석사' 복수 학위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학생 한 명이 경제학, 물리학 등의 전공 박사 과정과 함께 AI 석사 과정을 동시에 밟게 해 연구 인력에게 AI 기술이라는 도구를 쥐어주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 인재를 키우려는 것이다.
AI가 촉발한 산업구조 개편과 맞물린 중국의 전공 구조조정은 미래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개편된 전공 출신의 졸업생들이 현장에 투입될 3~4년 이후 성공 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