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이병헌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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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이병헌 연기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_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GV(관객과의 대화) 중 박찬욱 감독의 말
 
어느 정도 필모그래피가 쌓인 배우들을 작품에서 만나다 보면 일정 정도 '캐릭터'가 아니라 '그 배우'가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이병헌은 분명 이병헌이지만, '이병헌'보다는 '그 캐릭터'로 보인다. 그만큼 이병헌은 자신 위로 캐릭터를 입히고 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간다.
 
그렇기에 그의 새로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황궁 아파트 주민 김영탁으로 등장할 거란, 기대를 넘어 확신이 있었다. 역시나 이병헌은 완벽하게 김영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병헌'에 대한 예측이 빗나갔다는 점이다.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전 작품 속 이병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말마따나 이미 다 봤다고 생각한 이병헌에게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과연 이병헌이 어떻게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자신이 연기한 김영탁에 다가갔는지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늘 자신 위로 새로운 인물을 덧입히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M자 이마·성게 헤어스타일…'김영탁'이 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지만 재난 상황보다 재난 한가운데 놓인 '사람'을 보여주는 영화다.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입주민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로 영탁을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다.
 
이병헌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시나리오를 읽은 후 새삼스럽게 "정말 이런 블랙코미디를 참 좋아했었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어떤 영화 장르가 유행하면 해당 장르가 몇 년 동안 이어지는 상황에서 블랙코미디는 못 봤던 것 같다"며 "'맞아, 내가 이런 영화를 좋아했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신나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만난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황궁 아파트 902호 주민인 영탁이 '특이한 인물'이 아니길 바랐다. 이병헌이 엄태화 감독과 많이 상의한 부분 역시 영탁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식적인 인물이었으면 하는 점이었다. 그는 "다만 삶 자체가 루저이고, 내 집 마련이 꿈이었던 사람인데 그것마저 사기당해서 내면에 큰 분노와 상실감, 우울감이 가득한 불쌍한 소시민의 느낌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었다"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같은 느낌으로 시작해야 감정 이입이 좀 더 쉽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 이병헌은 그것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영탁뿐 아니라 모든 인물이 왠지 주변에 있을 것만 같고, 절대 악 혹은 절대 선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선과 악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조금 나쁜 사람, 조금 좋은 사람, 그런 인물이 모여서 보이는 감정과 갈등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했다.
 
이병헌은 외적으로도 완벽하게 영탁을 만들어 갔다. M자 이마, 성게 헤어스타일 등을 두고 누군가는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꼬질한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분장팀, 감독 등과 이것저것 시도해 본 끝에 모두가 "어! 이거 왠지 영탁 같아!"라고 생각한 설정을 가져가기로 했다. 이러한 변화에 이병헌은 "팬들이 탈퇴할까 봐 두려움도 있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진 뒤 "그런데 사실 내 직업 자체가 그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가는 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황궁 아파트 902호 주민 김영탁의 순간들

 
촬영은 2021년에 마무리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까지 2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이병헌은 오히려 그 기다림이 전화위복이 됐다. 영화가 완성도 있게 나왔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는 "감독님이 후반작업을 정말 한 땀 한 땀 열심히 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가장 큰 매력은 이상하게 웃기기도 웃기는데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갈수록 점점 더 긴장은 커져 가는데 그 사이사이 피식 웃게 되는 정서가 있죠. 만들어진 걸 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그런 게 좀 더 극대화된 느낌이었죠.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요."
 
이병헌은 영탁이 노래 '아파트'를 부를 때 플래시백(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그 기법)으로 넘어갔다 오면서 클로즈업에서 천천히 빠지는 시퀀스와 마치 공익광고처럼 인물들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황궁 아파트를 소개하는 시퀀스 등을 좋아하는 시퀀스로 꼽았다. "아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퀀스였다"는 게 그 이유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흥미로운 점은 극 중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은 테스트 컷이었다. 일반적인 리허설과 달리 현장에서 엄태화 감독은 카메라를 켠 상태로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런데 리허설에서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이병헌은 "되게 특이하게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효과를 발휘한 신"이라며 "감독님의 방식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리허설만으로 오케이를 받은 신도 있지만, 이병헌을 고민스럽게 만들었던 신도 있다. 그중 하나가 후반부에 혜원(박지후)을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 후 구역질을 하며 말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병헌은 "영탁이 원래부터 절대 악이었던 사람이라면 익숙하게 행동하거나 할 수 있었겠지만, 끈을 놓아버린 감정 상태와 원래 영탁 사이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원래 자기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 할 행동(혜원을 집어던지는 것)을 하는 모습에서 오는 괴리가 결국 몸의 증상, 즉 헛구역질로 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이렇듯 영탁이란 인물이 극한의 상황에서 점점 변해간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던 영탁이 악한 모습까지 드러내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 그것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보여주고자 한 인간의 모습 중 하나다.
 
"평소 사람이 만나 서로 대화할 때 그 중 매너가 50% 정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진짜 할 말은 어쩌면 50도 안 될 수도 있죠. 영화처럼 재난이 벌어지고,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생존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솔직하게 인간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렇기에 나름 민주적으로 주민 규칙을 세우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가고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갈등이 생기죠.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갈등이 계속 생기고 결국 붕괴되는 상황에 이르는 거죠. 정말, 매 순간 매 상황이 인간의 양면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드라마인 것 같아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의 '믿음'이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거두고 본다면 영탁은 정말 우리가 길을 걷다가도 마주할 수 있고, 당장 우리 옆집에도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이병헌은 영탁처럼 가장 일상적이고 보통의 사람 그리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연기하는 게 제일 좋다. 제일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연기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장 내가 많이 겪어본 감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연기할 때가 가장 자신감 있고 확신 있게 연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겪어본 감정이라 해도 그걸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그의 직업이 '배우'라고 하지만 그만큼 작품 속에 녹아들어 오롯이 '캐릭터'로 보이는 배우도 드물다.

이병헌은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놀랄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보이는 구나. 달라 보이는 구나"라며 "일부러 또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지 혹은 이번엔 이렇게 했으니 다음엔 또 다르게 해야지 생각하는 건 없다. 그저 캐릭터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고 캐릭터를 연구하는 데 쓴다"고 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역 배우 이병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병의 모양에 따라 물을 넣으면 물의 모양이 바뀌는 것과 같은 배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만 그게 매력인 배우가 있죠. 어떤 역할을 해도 그 배우가 보이는데 그래도 계속 보고 싶은 거죠. 어떤 스타일이 맞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스타일이 더 좋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다만 자꾸 그 캐릭터에 젖어 들려고 애쓰고 좀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어떤 인물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흔히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를 두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쓴다. 이병헌 역시 당연하게도 '믿보배'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이병헌은 관객들에게 어떤 '믿음'을 주는 배우이고 싶을까.
 
"예전부터도 제가 이런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계속 다음 작품이 또 보고 싶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더 잘하고 못하고, 이런 게 아니고 제일 그리고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저 사람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봐야지. 그리고 다음 작품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예요. 이렇게 기대되는 사람, 그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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