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4천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연합뉴스40대 초반 자영업자 A씨는 결혼을 앞두고 작년에 수도권 아파트 청약까지 당첨되면서 그야말로 '단꿈'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주택구매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뛰어들었던 가상화폐 시장이 한순간에 얼어붙으면서 A씨가 세운 계획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장 상황이 좋았던 지난해 10월부터 2천만 원으로 투자를 시작해 잠시 가격 상승 흐름에 올라탔던 그는 하락장에서 여러 차례 추가 매수를 선택해 8천만 원까지 투자금을 불렸지만, 그 결과는 '반토막'이었다. A씨는 "손실이 커서 돈을 쉽게 빼기가 어렵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아파트 대출 이자 걱정에, 결혼자금 걱정까지 겹치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고 토로했다. 내 집 마련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30대 직장인 B씨는 작년 초부터 종잣돈 1천만 원으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를 8대 2 정도의 비율로 병행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큰 수익이 나자 그는 대부분의 대기업 주식을 '손절'하고 추가 투자금 2천만 원을 더해 가상화폐 투자 비중을 늘렸다. 주식은 미국 메타버스 관련주를 중심으로 매수했다. 그 결과 현재 60% 가량의 투자원금이 증발했다. B씨도 "월급을 모아 만든 돈이라 아까워서 쉽게 손절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과잉 유동성 시대에 주식·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긴축 가속화 여파 속 여전히 높은 물가, 경기둔화 우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복합적인 악재들이 상호작용하면서 투자 시장이 발작 수준으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화폐 시장에선 안정성을 앞세우며 시가총액 상위권에 들었던 국산코인 루나와 테라가 '휴지조각' 수준으로 몰락하면서 "거품 붕괴의 신호"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 우려 겹쳐…증시 '약세장' 지속
연합뉴스 코스피 지수는 이달 들어 8거래일(2일~12일) 연속 하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작년 8월 이후 최장기간 연속 하락세였다. 이 기간에만 지수는 5.3% 이상 빠져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26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3일에서야 2.12% 반등에 성공해 2604.24로 장을 마쳤다. 작년 6월 고점(3316.08)에 비해선 21.4%, 올해 첫 거래일(2988.77) 대비론 12.8% 빠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13일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약 9조9789억 원이다. 코로나19 시대 유동성 증가로 주식시장이 활황이었던 작년 같은 기간엔 17조 9836억 원대였던 거래대금 규모가 40% 이상 쪼그라든 것이다.
외국인과 기관은 이달 8거래일 연속 하락 기간에 코스피 시장에서 각각 1조 3871억 원, 1조 8584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수하락을 견인했다. 지수는 우리시간으로 지난 5일 새벽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발표한 뒤부터 낙폭을 키웠다. 이 같은 빅스텝 금리 인상은 예상됐던 것이지만,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투자심리 위축세가 지속됐다.
지난 11일 발표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전달 대비 소폭 꺾이긴 했지만,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면서 긴장 국면이 이어졌다.
'14만원→0.03원' 루나 쇼크까지 더해진 코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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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달 1일 고가가 4852만 원이었는데, 12일엔 한 때 3700만 원까지 떨어졌다. 낙폭은 23.7%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고점(8270만 원)과 비교했을 땐 낙폭이 55%가 넘는다. 13일 오후 4시10분 현재 4020만 원선에서 거래되며 소폭 상승 중이지만 여전히 낮은 가격이다.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의 약세와 맞물려 대다수의 '알트코인'의 가격도 추락했다. 가상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3731조 원에 육박했던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이날 오후 1668조 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특히 대표적인 국산코인으로서 가상화폐 시가총액 10위권 안에 올랐던 '루나'의 충격적인 폭락은 패닉 국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지면서 시장 전체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원에서 지난 4월에 개당 14만 5천 원선까지 치솟았던 루나의 개당 가격은 지난 6일부터 10만 원 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해 13일엔 한 때 개당 0.031원까지 떨어졌다. 일주일새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세계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루나의 모든 선물거래와 일부 현물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인 고팍스와 업비트, 빗썸도 이날 잇따라 같은 결정을 했다. 업비트는 20일, 빗썸은 27일, 고팍스는 16일부터 거래지원이 종료된다.
루나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씨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자매코인인 테라와 함께 발행하는 가상화폐로, 두 코인은 서로 독특한 구조로 연결돼 있다. 테라는 개당 가치가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 코인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루나를 발행해 테라를 사들이고, 1달러를 웃돌면 테라로 루나를 사들여 소각시키는 구조다. 투자자가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면서 최대 20%의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도 적용됐다. 이런 구조를 놓고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지 않는 '폰지 사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루나는 한 때 시가총액이 50조 원에 달했고, 테라의 시가총액도 23조 원을 웃돌며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최근 가상화폐 시장의 위축세 속에서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진 뒤 가격 회복을 하지 못하면서 루나의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미국 CNN은 테라와 루나의 몰락을 다루면서 "리먼 브라더스의 순간"이라며 "문제는 루나가 가치가 있다고 믿는 거래자들에 의존해 온 생태계"라고 지적했다. 영국 BBC도 "가상화폐 시장의 거품붕괴가 시작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 '한숨'…영끌족 부담 우려도
연합뉴스
급격히 위축되는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한숨은 짙어지고 있다. 인터넷 카페엔 개인회생 절차를 문의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카드론과 은행대출 원금만 6천만 원이라는 C씨는 "대출 가운데 80%는 코인투자로 잃고 있는 중"이라며 "현재 대출 연체 중인데 회생 신청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D씨는 "아내와 제 앞으로 신용대출을 2억 원 이상 받았는데, 모두 주식과 해외선물로 잃었다. 지인 빚도 있어 매달 수백만 원이 원리금으로 나가는 상황"이라며 회생 절차 관련 질문을 올렸다. '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서도 "하루 아침에 3천만 원이 사라졌다. 빚이 5천만 원이 넘어 간다" 등 피해 호소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투자실패는 이른바 '영끌 투자족'들에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영끌족들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체를 포함해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20대 다중채무자는 2020년 말 32만 명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약 37만 4천 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대출총액도 같은 기간 18조 6359억 원에서 23억 2814억 원으로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긴축 시대인데다가 수많은 외부변수들이 존재하는 만큼, 투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금융시장이 바닥을 보면서 안정화 되고 있긴 하다"며 "주가의 경우 패닉 이후엔 한 번도 예외가 없이 긴축 중단이나 양적 완화 시그널이 있어야 추세가 전환됐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 결국 약세장 속 반등이 나올 순 있어도 추세가 전환되긴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이런 시장에선 종목을 얼마나 신중하게 잘 선정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