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달성군청 선수단이 25일 '제 59회 대통령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남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뒤 올해를 끝으로지휘봉을 놓는 남종대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안성=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팽팽히 맞선 타이 브레이크에서 1 대 5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무려 6점이 필요했고, 상대는 두 포인트만 내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불혹을 넘거나 언저리의 베테랑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40살의 박규철은 키를 넘어 코트 구석에 떨어지는 로브를 끝까지 달려가 넘기는 투혼을 펼쳤다. 노장들의 기세에 눌려 당황한 상대는 실수를 연발했고, 5 대 5 동점을 허용했다.
분위기를 타며 6 대 5로 역전, 매치 포인트를 먼저 맞았다. 37살의 왼손 이현수가 접전 끝에 환상적인 대각 스트로크를 코트에 꽂으며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스승의 고별 무대를 우승으로 장식하려는 마음이 이뤄낸 기적이었다.
남종대 감독(60)이 이끄는 달성군청이 올해 마지막 소프트테니스(정구) 대회 정상에 올랐다. 달성군청은 25일 경기도 안성국제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린 '제 59회 대통령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순창군청에 2 대 1 역전승을 거뒀다.
달성군청은 첫 게임 복식을 내줬지만 2단식에서 윤형욱이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마지막 3복식에서 박규철-이현수가 나서 대접전을 펼쳤다.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을 확정지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남 감독은 짜릿한 역전 우승이 완성되자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국제소프트테니스연맹 이현택 부회장,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신재섭 부회장과 장한섭 전무 겸 NH농협은행 부단장, 순천시청 김백수 감독, 수원시청 임교성 감독 등 관계자들은 남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결승 상대 홍정현 순창군청 감독도 선배 사령탑에 대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번 대회는 남 감독의 고별전이다. 지난 1996년 창단 사령탑을 맡은 남 감독은 올해를 끝으로 지휘봉을 놓는다. 26년 동안 달성군청을 국내 최강으로 키운 남 감독의 화려한 피날레였다.
경기 후 선수들과 김경한 코치는 남 감독을 뜨겁게 헹가래를 쳤다. 남 감독은 선수 1명, 1명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25일 '제 59회 대통령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남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달성군청 남종대 감독(가운데)이 관계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안성=협회주장 박규철은 "타이 브레이크 때 점수 차가 많이 났지만 오늘만큼은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경기를 했다"면서 "감독님의 마지막 대회인 만큼 우승을 꼭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승을 확정하는 환상적인 샷을 날린 이현수도 "평소 같으면 그런 각이 나오지 않는데 감독님을 생각해서 그런지 성공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남 감독은 "준우승도 괜찮은데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힘을 내 우승을 이뤄 정말 대견하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수많은 대회를 치러 왔는데 벌써 마무리할 때가 왔다"면서 "마지막 대회를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고 감개무량한 소감을 밝혔다.
1987년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정상급 선수로 뛴 남 감독이었지만 지도자 생활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수원시청에서 코치로 3년을 지낸 남 감독은 1996년 1월 대구 달성군청의 창단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남 감독은 "선수 4명으로 시작했는데 사비로 승합차로 구입해 대회 출전과 훈련을 했다"고 돌아봤다. 이후 10년 동안 좌충우돌하며 차츰 경기장, 숙소, 차량 등 선수단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달성군청은 이날을 포함해 단체전 우승만 무려 39번을 이룬 명문으로 도약했다. 남 감독은 "개인전 우승은 셀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 2019년 중국 타이저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남자 국가대표팀 6명 중 박규철, 이현수, 이수열, 김종윤, 윤형욱 등 무려 5명이 달성군청 소속이었다. 대표 선발전에서 그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보인 것.
남 감독 본인도 국제 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2015년 인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장한섭 부단장과 함께 남녀 대표팀을 맡아 금메달 7개 중 6개를 휩쓸었다.
제자들이 보는 스승은 어떨까. 가장 오랫동안 지내온 박규철은 "달성군청에 처음 실업 무대에 데뷔한 이후 20년 가까이 감독님과 함께 했다"면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밀려 군대에 가야 했는데 제대 후 4년을 방황하다 감독님께서 고맙게도 다시 불러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후 감독님에게 경기는 물론 심리적인 부분까지 조언을 얻어 31살부터 10년 넘게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었다"면서 "기술은 김경한 코치님께 배우지만 전체적인 선수로서 커갈 수 있었던 데는 감독님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남 감독은 "올해 실업연맹전까지 6개 대회 중 단체전 4관왕을 달성했다"면서 "마지막 해에 이런 성과를 거둬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어 "시원섭섭하지만 이런 선수들을 키워 뿌듯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천시청과 창녕군청 팀이 해체되는 등 위기를 맞은 한국 소프트테니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이천시청은 재창단이 결정돼 내년부터 대회에 나선다.) 남 감독은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 다른 라켓 스포츠에 비해 소프트테니스 저변이 얇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현재 정부의 스포츠 정책도 엘리트보다는 생활체육에 집중하는 등 어려운 현실"이라고 짚었다.
소프트테니스는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효자로 활약해온 중요한 종목.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7개를 휩쓸었다.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종주국 일본과 라이벌 대결을 앞두고 있다. 남 감독은 "한국 소프트테니스의 저력이 있는 만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도 소프트테니스의 혜택을 입고 살아온 만큼 역할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재 양성을 위해 한 몸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