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이 제21대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4‧15 총선 후보 시절보다 급격히 증가한 사례가 다수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불과 5개월 만에 10억원 이상 늘어난 사례도 적지 않아 재산이 누락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1대 국회의원들은 임기 시작일인 지난 5월 30일을 기준으로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 신고를 했다.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시절에 재산 신고(2019년 12월 31일 기준)를 한지 5개월 만이다.
문제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의원들이 재산이 수억원 규모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증가분도 있지만, 당초 고지를 거부했던 직계존‧비속 재산이 포함되거나 원인 모를 채권·채무가 생겨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오른쪽). (사진=윤창원 기자)
◇민주당 이광재, 선거 후 추가된 부모 재산 9억원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최근 재산 신고(지난 5월 30일 기준)에서 총 22억6000만원 가량을 등록했다. 총선 전(2019년 12월 31일 기준) 신고액인 10억610만원에서 약 12억5000만원이 늘어난 액수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선거 전엔 고지를 거부했던 예금(약 6억2000만원)을 포함한 부모의 재산이 9억6000만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의원 측은 10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생계를 사유로 고지거부를 신청했는데 국회 감찰관실에서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면서 다시 제출하라고 해 재산으로 신고하게 됐다"며 후보자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산을 신고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후보 시절에는 부모님이 생계를 독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그렇게 신고했지만 소득 수준이 공직자 재산 규정 상 고지 거부 요건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국민의힘 허은아, 소득 없는 모친 재산 5억원 추가돼 최종 31억원 신고총선 전에 부모 재산에 대해 고지를 거부했지만, 이번엔 고지 거부가 불허되면서 재산이 증가한 사례는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은 총선 전에는 모친 재산 공개를 거부했지만, 이번엔 공직자윤리법 기준에 의해 포함시켰다.
당초 26억2800만원 재산을 신고했지만 이번엔 31억8900만원이 됐다. 경기 광주시 소재 모친 소유 아파트(3억1500만원)와 금융자산(2억5000만원) 등이 추가된 것이다.
허 의원은 통화에서 "어머니는 총선 전이나 지금이나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에는 감사담당관 측이 기준을 줘서 맞춰서 신고를 했는데, 총선 전에는 선관위가 따로 떨어져 살면 고지를 거부해도 된다고 해서 그에 따랐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민주당 비례대표 이수진, 6억에서 12억으로 껑충민주당 이수진 의원(비례)은 지난 9일 문자 메시지를 통해 "총선 당시엔 부모님 재산을 고지거부하여 신고하지 않았다"며 "국회의원 재산신고에서는 미처 부모님 재산 고지거부를 신청하지 못해서 부모님 재산 총액인 6억 5천여만원이 추가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의원의 재산 신고액은 선거 전 6억1700만원이었지만 최근엔 11억9500만원으로 늘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좌진 구성이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감사관실에서 초반에 보낸 재산신고 관련 메일을 제때 확인하지 못했다"며 "그 이후 별도로 연락이 오지 않다보니 고지거부 시한 등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의원의 부모님은 고령으로 소득활동이 쉽지 않은 상태지만 이 의원도 앞선 의원들과 같이 후보 시절에는 선관위로부터 고지거부를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하태경, 조태용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조태용, 빠졌던 모친 재산 10억 포함…"당직자들에 맡겼다"국민의힘 조태용 의원도 앞선 의원들과 비슷한 사례다. 조 의원의 선거 전 신고액은 21억4800만원이지만, 최근엔 33억1000만원을 신고했다. 용산구 이촌동 아파트 임차권 4억8000만원과 예금 6억원 등 모친 명의 재산 10억여원이 추가로 포함된 것이다.
조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비례대표 후보 시절, 미래한국당 사무국에서 점검을 해줬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해서 독립생계를 사유로 고지를 거부했다"며 "의원이 된 이후 심사를 받으니 국회 사무처에서 기준 미달로 모친 재산도 고지해야 한다고 해서 포함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자녀의 부양을 받지 않고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직계 존·비속은 고지거부를 신청해 재산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독립생계나 타인부양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2020년 독립생계 월 소득기준은 2인가구일 때 도시지역 179만5000원, 농촌지역 125만7000원이다. 대부분 의원들이 후보자 시절엔 부모의 독립생계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했지만, 공직자가 된 이후 원칙적으로 법을 적용하니 달라진 셈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재산 포함여부로 인해 후보 시절과 의원 시절의 재산이 크게 차이나는 점에 대해 어느 의원도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 대변인인 허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후보자 재산등록시 부모님은 고지거부(독립생계유지) 후 재산신고를 진행했다. 국회의원 당선 후 국회공직자 재산등록 메뉴얼에 따라 신고했으며, 고지거부제도 중 '독립생계 월 소득기준'에 부모님 소득이 충족되지 않아 부모님 포함하여 재산등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허 의원은 후보 당시 5억8000만원 가량을 신고했지만 당선 후에는 고지거부 불허로 인해 부모님 재산이 편입되면서 11억1400만원 가량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다수의 국회의원 보좌관과 강원도지사 비서실장, 서울시장 비서실장, 민주당 부대변인 등 공직자 재산공개 절차나 내용 등에 대해서 알기 쉬운 보직을 두루 거쳤음에도 후보 때는 자의적으로 독립생계를 판단해 부모님의 재산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다.
11억 고의 누락 의혹에 휩싸인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재산 목록. (사진=자료사진)
그러면서 채권 증가로 논란이 일고 있는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을 향해서만 "본인의 문제를 덮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채권·채무 발생 사실을 빠뜨려 재산이 누락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실무진의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재산 영역은 당사자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민주당 임오경, 지인에게 빌린 '채무 5억2천' 누락?
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당초 6억6333만원이던 재산이 14억5585만원으로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지역구인 경기 광명시 소재 아파트 전세권 5억2000만원이 포함된 탓이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로 이사를 가야했는데 돈이 부족해 임 의원이 전세금을 지인에게서 빌렸다"며 "해당 채무기록을 재산 신고에서 빠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의원이 보좌진에게 알리지 않은 것인지, 실무 보좌진이 듣고도 누락시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지를 거부했던 부모 재산도 이번 신고에선 약 2억원이 늘었지만, 임 의원 측 별다른 해명은 없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한기호, '아들 재산 2억원' 갑툭튀?…"고지거부 시한 놓쳐"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선거 전 24억원이었던 재산이 이번 신고에선 30억원으로 약 6억원이 늘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총선 전 공개가 안됐던 장남의 재산이 이번 신고에선 포함된 점이다.
한 의원의 장남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 삼성아파트 전세권 지분을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각각 1억7000만원씩 보유하고 있다. 장남 소유 자동차 2대(아우디A5 2300만원‧K5 2000만원) 내역도 이번 신고엔 포함됐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아들은 이미 2년 전에 결혼해 독립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총선 전엔 고지 거부를 신청했는데, 이번엔 실무자가 6월말까지 신청해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왼쪽 두번째). (사진=윤창원 기자)
◇정의당 이은주, 부모 예금 2억 포함에 "보좌진 실수"
총선 때 보다 재산이 6억6000만원 늘어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증가액 중 예금 2억6200여만원은 부모님 소유로 단순한 "담당 보좌진의 실수 때문에 기재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지거부 허가신청 기간은 등록기준일로부터 1개월 이내이기 때문에 6월 30일까지 신청을 했어야 했지만 실무자가 날짜를 잊고 있다가 기간을 놓쳤다는 해명으로 한 의원과 같은 사례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 의원의 부모는 월 250만원 가량의 수입이 증빙됐다. 때문에 이 의원의 재산은 사실관계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총선 때와 1번째 공개 때, 2번째 공개 때마다 들쭉날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