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80년 전 美 뉴딜정책, 댐건설이 전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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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강 종합개발 뉴딜의 상징…댐건설 통한 전략확보·일자리 창출
도로 철도 빌딩 등 공공사업 뿐아니라 자원보전 일자리 창출, 문화사업도 주도
보수 반발속 사회안전망 구축…노동권 보호 법제화, 소득세도 강화
데이터 등 4차 산업 발굴 등 경제활성화에 초점 둔 한국형 뉴딜
불평등 해소 등 제도 개혁, 기후위기 대비 등은 미흡 지적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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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은 이번 정권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全) 세계적으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침제 가속화를 낳은 코로나19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으로 나온 게 '한국판 뉴딜 정책'입니다.

한국판 뉴딜정책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등 3대 프로젝트를 핵심 축으로 합니다. 보다 구체적인 10대 과제를 보면 데이터·5G·인공지능(AI)·원격교육·비대면의료·사회기반시설·스마트 물류 등입니다.

SOC도 도로·철도 등 눈에 보이는 시설물을 새로 짓기보다는 스마트 관리체계 쪽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이 때문에 사물인테넷(IoT) 등이 부각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정부의 큰 그림은 도래할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새로운 일자리로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입니다.

이쯤에서 미국이 약 80년 전 뉴딜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시기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연평균 3%대의 국민총생산(GNP) 성장을 기록하며 상당기간 상승세를 탔던 미국 경제는 1929년 10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입니다.

(이미지=연합뉴스)
같은해 10월 29일 하루 만에 주가가 11% 하락했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금융권 전체가 휘청거립니다.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1933년까지 4년간 1400여개가 넘은 은행이 파산합니다.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철저한 시장주의자인 허버트 후버는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부흥금융공사를 설립해 파산위기에 처한 은행·철도 업계에 구제 금융을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후버를 꺾고 32대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민주당 대선 후보지명 연설에서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미국 국민을 위한 새로운 대책(뉴딜)을 마련할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처럼 초유의 사태인 대공황을 맞아 루스벨트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댐·도로·철도 등 건설사업이 주요 내용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SOC사업도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일부분이었습니다. 뉴딜 정책은 3R로 불리는 구제(Relief)·회복(Recovery)·개혁(Reform)을 모토로 합니다.


구제는 실업 지원·빈민 구호를 말하고, 회복은 대공황 이전의 소득 수준과 산업질서 회복을, 개혁은 사회 불평등·시장 경제의 모순 해결 등을 뜻합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실물경제 부진으로 실업급여 신청이 증가하는 지난달 2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근로자 계약기간 만료 등 직장을 잃은 시민들이 실업급여 안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뉴딜정책은 크게 두번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전기 뉴딜정책(1933~1934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00일간 입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은행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긴급은행법을 통과와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한 금본위제 중단입니다.

생산 물량을 조절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직접적인 농업 지원를 위한 농업조정법, 상업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규제하기 위한 은행법이 만들어집니다.

또 연방긴급구제국을 세워 실업·빈곤가계에 현금·현물을 지원하는 긴급구제법도 이때 생겼습니다. 빈농, 이주민, 학생 등에 대한 의식주 시설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대공황을 계기로 미국 정부에서 처음으로 취약층에 대한 직접 구호에 나선 겁니다.

동남부 테네시강 종합개발을 위한 테네시강 유역개발공사도 설립됩니다. 홍수 예방, 전력생산 등을 위해 테네시강 본류와 지류에 26개의 댐을 짓는 것인데, 토목 개발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전기 뉴딜 정책이 연방정부의 직접적인 구제와 은행 안정 등 경제 회복에 중점을 뒀다면, 후기 뉴딜정책(1935~1941년)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제도 개혁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공공사업촉진청을 중심으로 빌딩·도로·철도·공항·학교 건설 사업을 벌입니다.

시민자원보존단이 창설돼 식목과 청소 등 청년 160만 명에게 자원보존과 관련된 일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 배우,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을 위한 '연방연극사업계획', '연방예술사업 계획' 등 문화사업도 정부가 적극 추진합니다.

근로자 단체교섭권 보장,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등을 규정한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이 탄생했고, 소득분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소득세 강화도 이뤄집니다.

실업보험과 노령연금을 제도화한 사회보장법이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발속에 제정됩니다. 유럽과 달리 이렇다할 사회안전망이 없었던 미국에서 안전망이 처음 구축된 것입니다.

(이미지=연합뉴스)
미국은 1933년부터 1937년까지 뚜렷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면서 뉴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1938년 실업 급증 등 경제 위기가 재발하면서 뉴딜정책에 의문을 표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인지, 적자예산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루스벨트가 긴축재정으로 돌아선 게 위기 재발의 원인이라는 반론도 강합니다.

아무튼 뉴딜정책은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국가개입으로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복지제도의 방향을 제시하고, 독점자본주의에 따른 사회·경제적 모순을 일정부분 바로잡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전환점이라고 의미 부여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이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살펴본 것 처럼 '원조 뉴딜'은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국 뉴딜은 불평등 해소 등 제도 개혁과 사회보장제도 확충보다는 신산업 창출과 이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에 한정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완성하지 못한 '그린 뉴딜'에서 핵심 의제로 다룬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도 빠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빈곤층과 흑인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대기업·부유층과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상류층의 배신자' '전체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한국형 뉴딜정책이 불평등 해소 등 개혁에 더 비중을 둔다면 아마도 비슷한 정치 공세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시늉만 내는 용두사미에 그친다면 진보·중도 진영에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형 뉴딜정책이라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돼야하지 않을까요. K방역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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