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20학년도 숙명여대 법학과대학에 합격한 A씨가 결국 지난 7일 입학 포기 결정을 내렸다. 이날은 등록금 납부 마감일로 자신의 입학을 둘러싼 반대 여론에 부담감을 느낀 결정으로 풀이된다.
앞서 A의 합격 사실이 알려지며 학교 안팎에서는 찬반 논란이 일었다. 동문들을 중심으로 "입학을 환영한다"는 성명서가 발표되는 한편 "여성의 공간을 침해하려 한다"는 반박 대자보도 붙었다.
특히 여대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 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대에 속한 21개 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며 연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소수자 연대'를 지향해온 페미니즘 단체들이 나서서 입학을 반대하는 이유에 의문을 표했다. 이들이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랜스젠더 여성들에 대한 불신 기저"…"여성 운동 퇴보시킨다는 입장"전문가들은 '일부' 페미니즘 단체들이 '심리적 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 성별'을 중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2000년대 후반 들어 페미니즘을 배우기 시작한 세대들은 '생물학적 성별'을 중요시한다"며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받는 일종의 '선천적인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에 계속 노출된다거나 취업시장에서 받게 되는 차별이 대표적"이라며 "이들은 트랜스여성은 메일바디(male body), 즉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일종의 사회문화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의 고통에 100% 공감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학자 B씨는 해당 주장이 페미니즘의 본류가 아닌 일부라고 일축했다.
그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범주에 넣는 페미니스트들을 '터프'(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라고 부른다"며 "트랜스젠더는 겉모습만 바뀌었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는 건데, 약자나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페미니즘 원칙에는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화장을 하고 몸매를 가꾸는 등의 방식으로) 여성성을 강화하면서 여성 운동을 퇴보시킨다고 보는 입장"라며 "한국에서는 2015년 메갈리아에서 극단주의 성향의 커뮤니티 '워마드'가 떨어져나올 때 처음으로 가시화됐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입학 포기 사태까지…"소수자 혐오로 번져서는 안 돼"한편, 이런 움직임이 '소수자 혐오'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대 의견 피력을 넘어 A씨가 입학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왔기 때문이다.
앞서 A씨는 7일 온라인의 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숙대 등록 포기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해당 글에서 "내 몇 안되는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두려웠다"며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손희정 연구원은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손 연구원은 "일부 트랜스젠더 이미지를 일반화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소수자 혐오"라며 "결국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너가 왜 여자인지 증명해보라'는 억압과 '왜 여성성을 강조하며 편견을 강화시키냐'는 이중잣대 속에 갇혀 살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C씨도 "고통의 맥락이 다를 뿐, 트랜스젠더도 만만치 않은 고뇌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성 소수자가 겪을 억압과 차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대하는 목소리 아래에 깔린 불안감을 이해한다"면서도 "진심으로 여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가능성을 열어주고 동료로 맞아주는 것이 페미니스트로서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