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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위안부' 정보공개, 2심서 줄줄이 좌절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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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사실판단'에 비해 단순한 2심 논리
재판부도 충분한 자료 없이 소송 진행…모호한 법익 비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사진=박종민 기자)

 

"우리(한국)에게 직접적인 의사표시는 안 했지만 일본 내에서 (한일 합의 내용 공개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거나 기자회견을 했다거나…. 그런 것이 있다고 해야 피고(외교부)는 유리할 테니 잘 알아보세요. 알겠죠? 일본 정부 내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다 밝혀주세요. 중요할 수 있어요."

지난달 7일 서울고법 행정3부의 문용선 부장판사는 피고 측인 외교부에 이같은 지침을 일러줬다. '한·일 위안부 협상' 관련 정보 공개 소송의 마지막 변론 기일이었다.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원고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생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호소문을 제출했다. 외교부 측은 비공개 서류를 노란 봉투에 담아 이날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 18일 재판부는 정보 비공개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라고 했던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송 변호사가 청구한 정보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일본이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당시 한일 협상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합의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됐다. 이에 송 변호사는 당시 협의 중 '군의 관여', '성노예',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어떻게 채택하고 사용키로 한 것인지 언급된 문서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제1~12차 한일 국장급 협의와 2014년 8월과 12월 비공개 한일 국장급 협의 전문을 제출토록 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비공개 대상 정보여도 사건 심리를 위해 재판부에만 비공개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당시 법원도 관련 자료 전문을 비공개로 제공하라고 석명준비명령까지 했지만 외교부는 일부만을 제출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부분적으로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일본 정부가 어떤 식의 '군의 관여'에 대해 사죄를 하고 지원을 한다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2심 재판부는 외교부가 마지막 변론 기일에 비공개로 제출한 서류가 기존과 다른 것이었는지, 이번 판단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2심 판결문은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침해되는 국민의 이익(알권리 등)이 정보공개로 해칠 우려가 있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보다 크지 않다"며 두 법익을 단순 비교하는데 그쳤다.

특히 1심이 비공개로 받아본 자료를 토대로 사실판단에 힘을 쓴 것에 비하면 2심은 재판부의 주관과 추측이 비교적 많이 개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군의 관여'라는 표현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에서 민감한 사안이어서 나름대로 심사숙고와 조율을 거쳐 채택된 표현으로 보인다"며 "그 의미는 표현된 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국가의 정보 비공개 처분에 대한 2심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의 '문건 목록'이나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협상과정' 관련 자료에 대한 공개 청구도 1심에서는 받아들여졌다가 2심에서 모두 뒤집혔다.

해당 사건들의 1심 판결문에는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등에 대해 사실 판단이 주로 이뤄졌다. 반면 2심 판결문에는 "피고(정부)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외교적 신뢰 관계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언급이 포함되는 등 '국익'을 근거로 한 피고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청와대의 세월호 문서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지정기록물 제도'의 입법 취지와 법적 안정성이 우선 고려됐다. 해당 재판에서도 정부 측은 재판부에 지정기록물 관련 자료를 비공개로도 대부분 제공하지 않았다. 비슷한 소송들이 사실판단보다는 알 권리와 국익의 두루뭉술한 비교·판단으로 흐르게 되는 요인이다.

세월호·위안부 관련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한 송 변호사는 "외교 분야의 비밀·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법치주의와 인권 보호 등의 부분에 대해 다뤄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소송 당사자로서 승패를 떠나 판결 내용은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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