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법관 대표 110여명이 참석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한 처리 방안을 논의한다. (사진=박종민 기자)
그래서 어떤 '후속 조치'를 내놓을 것인가.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간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놓고 법원내 내홍도 깊어지면서 '이렇게 마냥 시간을 끌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출근길 김 대법원장의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는 말을 보름 넘게 이렇게 저렇게 변주하고 있는 기자 입장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야속할 지경입니다.
법원내 내홍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신기한 것은 후속 조치와 관련해 각기 다른 주장을 하는 소장, 노장파의 논거가 닮았다는 점입니다. 양측 모두 바로 '사법부 독립'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고 있습니다.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 등 강력한 후속 대책을 요구하는 쪽이나 법원 내부적으로 해결하자며 신중론을 펼치는 쪽이나 "재판의 독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후속 조치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양측의 접점에는 실제 재판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가 주고 받은 게 확실히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얘기인 셈이죠. 이 대목에서 내부 해결 또는 봉합을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는데, 거칠게 정리하자면 "적절하지 않은 행위들이 좀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그렇다면 "재판 거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단언으로 정리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다시 사법부는 '정의실현 최후의 보루'라는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간 "거래가 무산됐다"는 전제 위에서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적어도 특별조사단의 조사로 드러난 문건들만 봤을 땐, '외관상'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단언하는 법원장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외관의 공정성과 정당성에는 이미 상처가 났다는 말입니다.
마침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줄, 적당한 '법언(法諺)'이 있습니다. "정의는 행해져야 할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것 같은 말이지만, 소위 법률가들에게는 법원칙과 관련해 매우 익숙한 문장입니다.
1923년 영국, 자동차 충돌사고와 관련된 형사 유죄 판결이 상급심에서 파기됐습니다. 사실관계나 법리문제 같은 복잡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하급심 담당 판사들이 합의할 당시 해당 사고와 관련된 민사사건을 담당했던 로펌 소속 재판연구원이 배석했다는 게 유죄판결 파기의 배경이었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재판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석했던 이 재판연구원은 실제 합의 자리에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상급심의 판단은 단호했습니다. "사법작용에 부적절한 간섭이 있다고 의심이 들게 하는 어떠한 사유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공정성의 외관'을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 대입시켜 보겠습니다. 재판은 실체가 공정한 것도 중요하지만 절차의 적법성을 보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재판부가 가족이나 지인의 재판을 스스로 회피하는 제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나는 불필요한 전화를 받았지만,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봤자, 수화기를 들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 판결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고 보여질 수 있다는 겁니다. 법원 내부의 자체 해결이 왜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없는지 어쩌면 법률가들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