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미투' 바람이 권력의 심장부인 정치권에 상륙했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마저 미투 운동의 거대한 파고에 휩쓸리자, 정치권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미투 운동에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 '멘붕' 빠진 여의도…제2, 제3 피해자 소문만 무성안 전 지사 성폭행 논란과 도지사직 사퇴 소식이 알려진 6일 더불어민주당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민주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오갔다.
의원들의 사무공간이 마련된 의원회관에도 무거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의원실 소속 보좌진들은 전날 안 지사 성폭행 논란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듯 주변인들과 안 지사 성폭행 논란과 관련해 소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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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국회 보좌관을 지낸 A 씨(여)는 "터질 게 터졌다"며 혀를 끌끌 차면서 "앞으로 더 많은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미투 운동에 곤욕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당직 생활을 한 당 관계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로가) 터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뒤숭숭한 분위기는 SNS에서도 포착됐다. 안 지사의 추가 피해자가 폭로를 준비한다는 소문부터 여권 지방선거 출마자, 심지어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성폭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정보지(속칭 '찌라시')가 여의도 정가에 급속도로 퍼졌다.
여러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소문만 무성해지는 가운데 국회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에는 A 씨는 '회관 남자 전반에 대한 #MeToo'란 글이 올려 자신도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A 씨는 "몇년 전 모 비서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녹취와 문자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사건 직후 집 근처 해바라기센터에 달려가 몸 상태를 체크하고 당시 기록을 남겨뒀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그 비서관의 인맥이나 영향력이 두려웠고, 경찰조사를 받으면 회관에 기자들 내부보고용 카톡 혹은 경찰 정보과 찌라시가 돌 수 있는데, 제 신원이 밝혀질 것이 두려웠다"고 전했다.
◇ 비일비재한 성범죄…"노래방 도우미 취급은 예삿일"여의도로 번지는 미투 물결은 단일 사건에 대한 폭로를 넘어 국회에 만연한 성범죄의 민낯을 고발하는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다.
A 씨는 해당 글을 통해 "여기 사람들은 술 조금 마시고 노래방 가면 같이 있는 여자가 누구이든 노래방 도우미 취급을 하며 허리를 쓰다듬는 것을 예사로 아는 사람들"이라며 성희롱.성추행의 행동을 일일히 묘사했다.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전여옥 작가도 블로그에 글을 올려 "여의도에는 수많은 안희정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슬프게도 절망스럽게도"라며 "안희정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그를 뛰어넘는 '프로페셔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국회 보좌진들은 불과 1년 6개월 전쯤인 2016년 하반기에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A 의원실 보좌관이 여비서를 성추행했는데, A 의원이 가해 보좌관을 해고하지 않으면서 여비서가 떠났다고 한다.
선거 과정에서 가해 보좌권의 역할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 '자비는 없다'…민주당, 긴장 속 신속·엄중대응민주당은 일단 안 지사 성폭행 논란의 여파가 번지지 않도록 수습에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9시에 열릴 계획이었던 원내대책회의를 취소하는 대신 젠더폭력대책TF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민주당은 일단 안 지사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원내에 설치된 젠더폭력대책TF를 당내 특별위원회로 격상해 피해 여성들의 제보를 적극적으로 받기로 했다.
당에서 피해 사실을 신속히 인지해 엄정 대응함으로써 미투 운동의 후폭풍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또 민주당은 미투 운동과 관련해 선거에 악재가 될만한 요소는 신속하게 대응해 원천 차단하고 있다.
부산시의원 선거를 준비하는 한 예비후보가 페이스북 댓글에 '달라는 놈이나 주는 X이나... 똑같다'고 올리자, 민주당 부산시당은 곧바로 그를 제명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전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피해 여성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막말을 SNS 상에서 한 행위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심판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안 지사 논란에 이어 제2, 제3의 폭로자가 나올 경우, 상황이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 일부도 대책마련에 분주했다. 바른미래당은 ▲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지원 ▲ 교육계 성폭력 처벌 강화 규정 등의 내용을 담은 성폭력 근절 법안을 마련하는 한편, 의원 전원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해 제도 개혁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