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정성이 빚어낸 영화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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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①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지난달 20일 언론 시사회에서 본 '리틀 포레스트'의 첫인상은 싱그러움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자, 김태리-류준열-진기주 등 충무로 신예들이 나온다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이 간 자리에서,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초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도 몇 명 안 되고, 이야기도 단순하다. '서울살이에서 허기짐을 느꼈던 혜원(김태리 분)이 잊고 지냈던 고향 집에 내려와 자급자족하며 '밥 지어 먹는' 이야기'라는 설명은, '리틀 포레스트'를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소꿉친구 재하(류준열 분), 은숙(진기주 분)과의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주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주 정직하게 농촌의 사계절을 담아냈다. 가장 풍성할 때의 황금빛 논, 무럭무럭 자라는 붉은 토마토, 여름밤의 짙푸른 강, 알맞게 익어 먹기 좋은 곶감, 오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흰 눈… 때로는 정겨움을 때로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강아지의 울음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쏴-하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 저절로 군침이 돌게 만드는 아카시아 튀김 소리…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충만함을 안긴다.

'제보자' 이후 4년 만에 '리틀 포레스트'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을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때아닌 비가 잔뜩 내려 하늘도 찌푸린 날이었지만, 임 감독 특유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으로 인터뷰는 즐거웠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2월 28일)이 '리틀 포레스트' 개봉일이다. 기분이 어떤가.

실감은 안 나는 것 같다. 어쨌든 날짜는 흘러가는 거고, 개봉은 닥쳤고.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4일 정도가 관건이라 잘 흘러갔으면 좋겠다. 오늘 비가 오는데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고. (웃음)

▶ 지난 20일에 언론 시사회가 있었다. 당시 영화를 보았나.

전 언시는 안 봤다. 2월 초에 기술시사를 했고, 일반 관객에게 먼저 오픈했을 때(2월 13일) 그때 봤다. 관객 반응이 되게 궁금했다. 언시 때 배우들은 배급관에서 봤고, 저는 기자관에서 볼까 하다가 언시는 항상 분위기가 싸하다 보니 분위기 안 좋으면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안 봤다.

보통 기술 시사 끝나고 나면 거의 영화를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엔 되게 많이 봤다. 13일에도 보고, 메가토크할 때도 보고, VIP 시사회 때도 보고. 영화 보면 촬영했을 때의 아쉬움들이 너무 잘 보여서 괴롭다. 그래서 기술 시사까지만 보고 잘 안 보게 된다.

▶ 그런데도 '리틀 포레스트'는 유독 여러 차례 봤다. 그만큼 보기가 편해서 그런 걸까.

나이 탓인 것 같다. 그런 것에 약간 둔감해지다 보니. 예전에는 막 예민하게 봤던 부분도 확실히 나이가 드니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그런 결점조차도 내가 만든 거니까. 조금 덜 예민해진 것 같다.

▶ 여러 번의 시사회를 통해 관객 반응을 좀 체감했나.

작년 11월에 모니터 시사를 했다. 사운드나 CG(컴퓨터그래픽)가 안 들어간 거여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서 반응을 봤는데 되게 좋은 거다. 블라인드 시사니까 (배우들의) 팬들만 온 건 아닐 거고. 반응이 좋아서 약간 고무됐다. 13일에 한 시사회 때는 반응이 되게 좋았는데, 아무래도 배우들 팬들이 많이 오셔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니까.

사실 이 영화 문법이 장르적이지가 않다. 밥만 해 먹고 장작 패고 자고 있고. (웃음)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관객들이 조용하더라. 시간이 지나니, 스폰지에 물 스며들듯이 이 영화를 조금씩 편하게 느끼면서 웃기 시작하더라. 엔딩까지 가니 더 반응이 좋았고.

아직 (개봉) 첫 날이니 어떤 풍경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예측했던 것보단 괜찮은 것 같다. 인물이 제한적이고 사건도 별로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어서 지루하거나 재미없게 보시면 어떡하지 했는데, 젊은 관객들이 생각보다 좋아해주셔서 기분이 좋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와 영화 원작이 있다.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영화화하게 됐는지.

제작자가 영화를 먼저 보시고 제게 제의했고, 뒤늦게 찾아봤다. 만화도 있다길래 나중에 만화도 봤다. 일본 영화와 만화는 거의 똑같다. 매체 차이만 있고 내용은 거의 똑같다. 일본에서는 다른 매체로 리메이크할 때 똑같이 하는 것 같다. 바꾸지 않고. 도시에 살던 만화가가 시골로 가 거기서 느끼는 걸 만화로 그렸고, 소소한 인기를 얻었다. 우연히 그 만화를 본 감독이 영화로 만든 거고, 그게 한국에서 수입돼 개봉했는데 그걸 본 제작자가 제게 제의한 거다.

▶ 많은 조건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면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제목도 똑같이 해야 되고 캐릭터를 바꾸면 안 된다고 해서. 일본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면 너무 일본스러웠을 것이다. 한국 색깔과는 아주 달랐다. 일단 원작자를 설득했다. 한국판 시나리오를 써서 그때 가서 보고 판단해 달라고 했다. 일본어로 번역한 원고를 원작자에게 보내줬는데 다행히 좋다고 해서 지금 같은 얼개를 갖게 됐다.

(일본 작품과) 사실 매우 다르다. 거긴 두 계절을 하나씩 묶어 두 편이었고 상영시간이 길었다. 4시간이 넘었으니까. 저희는 그걸 100분으로 압축했고, 엄마와 혜원이 캐릭터에도 변화를 줬다. '어린 시절에 말없이 떠난 경험을 가진 젊은 여성이 도시에서 생활하다 시골로 와 거기서 나는 식재료를 갖고 자급자족하면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기본 설정은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와 상황을 시도했다.

▶ '리틀 포레스트'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끊임없이 나온다. 결과물에 만족하는지.

원작의 설정이기도 했고, (작품 내에서) 요리라는 건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엄마하고의 기억이나 친구들 사이의 관계와 밀접히 연결된 거여서 중요했다. 태리 씨가 잘 먹고, 예쁘게, 복스럽게 먹더라. (웃음)

▶ 각 계절의 느낌을 색감과 소리로 잘 표현한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을 특별히 신경 썼는지 궁금하다.

예쁜 색감을 담으려면 조명이 중요하지 않나. 바깥에서 찍는 경우는 자연광인데, 햇빛이 최상으로 나왔을 때 찍어야 하니 그것만 기다렸다. 내부 조명도 신경 쓰고. 김태리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다. 100분 동안 계속 봐야 하니까, 태리 씨가 굉장히 예쁘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낙 나오는 인물이 별로 없으니까. 음식, 자연도 하나의 캐릭터처럼 대했다. 색감도 그렇고, 요리할 때의 소리, 개 소리, 새소리 등. 사실 다들 이렇게 한다. (이런 부분에) 신경 안 쓰는 영화가 어디 있겠나.

▶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인내가 필요했겠다.

기다려야 했다. 꽃이 절정으로 피어 있을 때, 벼가 가장 노랄 때, 감이 가장 예쁠 때. 그런 자연과의 싸움이 있었다. 아, 갑자기 생각나는데 그곳이 군 비행기가 지나가는 항로였다. 장소 섭외할 때만 해도 비행기 소리를 못 들었던 거다. 수시로 지나가니까 동시 녹음할 때 대사에도 방해가 됐다. 보니까 주말에는 비행을 안 하더라. 비행기 소리 때문에 또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여름과 겨울 풍경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그렇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기존 작품보다 '더 오래 기다린' 영화인가.

눈이 오고, 햇빛이 나오고, 비행기가 안 지나가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극중 엄마(문소리 분)도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나. 우리도 가장 좋은 화면과 소리를 얻기 위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도 촬영 회차가 47회차로 짧은 편이다. 무척 효율적으로 찍었나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보드를 완전히 다 짜고 갔다. 불필요한 장면을 아예 넣지 않았다. 편집에 안 쓸 것 같으면 찍지도 말자는 주의였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차라리 쓸 화면에 정성 들이자. 찍어 놓고 안 쓴 화면이 상대적으로 무척 적은 영화다. 되게 콤팩트하게 찍었다.

▶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생명 친화적인 촬영 현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경 쓸 것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그런 원칙을 고수한 이유는.

저는 집에서도 그런다. 생활신조가 '이유 없이 생명을 죽이지 말자'다. 보통 사람들은 파리, 모기, 개미를 죽이는데 그거 다 피해 가면 된다. 모기, 바퀴, 파리가 들어오지 않는 환경을 만든다든지, 내가 노력하면 게네들을 안 죽일 수 있는데 반사적으로 죽이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

제가 한 10년 전에 티벳 망명촌 길거리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봤다. 포장도 안 된 흙길에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뭘 하고 있더라. 개미들이 줄지어서 길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니까, 나뭇가지를 가지고 다시 올려보내고 있더라. 사람이 밟거나 차에 깔릴 수 있으니까. 꼬맹이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개미를 다시 산으로 올려준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생명에 대해 가진 생각 자체가 되게 인간 중심적으로 돼 있지 않나.

저도 무의식적으로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영화를 위해 더 많은 생명을 죽일 필요는 없고, 안 죽였으면 좋겠다. '죽이지 마!' 이렇게 했다기보단 솔선수범한 거다. 그러다 보니 (다른 스태프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 같다.

(노컷 인터뷰 ② 임순례 "미투, 사회 전체의 문제… 다 같이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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