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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소설집, 고향 강릉에서 삶의 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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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강릉:윤후명 소설'

 

내년에 등단 50주년을 앞둔 윤후명의 신작 소설집 '강릉'이 '윤후명 소설전집'의 첫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집 '강릉'은 고향 강릉을 모티프로 쓰인 열 편의 소설을 모았다. 신작 소설로 채워진 책의 말미에 강릉을 무대로 한 데뷔작 <산역>(1979)을 함께 묶었다.

1946년 강릉에서 태어난 윤후명 작가는 여덟 살 때 고향을 떠났다.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은 방공호로 몸을 피하던 전쟁의 기억으로 얼룩졌고 어른이 된 후에는 차마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됐다. '그곳에는 으스스한 무엇이 살고 있다/ 가끔 뒤돌아보며 길을 걸으면/ 한 발짝 한 발짝 나를 따르는/ 그 모습의 기척을 느낀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강릉은 그립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곳, 창작의 원천으로서 애틋한 대상이었다.

소설집 '강릉'은 작가가 어린 시절 강릉에서 겪었던 일상의 이야기뿐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가 소설에서 그려내는 '강릉'은 강원도의 한 지역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어디론가 길을 떠나야 하는 소설적 자아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은유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등장한다.

머리 감는 처녀를 물어가서 장가를 든 호랑이가 나무로 변신하여 해마다 한 번씩 처갓집에 내려오는 행사를 기려 개최되는 '강릉 단오제'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이다. 작가는 설화 속 호랑이를 소설적 자아에 투영하며 '강릉'에 이르는 메타포로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고 변주한다.

윤후명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어디론가 가고 있거나 현실을 떠나 있다. 떠남과 만남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작가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값하는 공간이면 어디든지 상상력의 나래를 편다.

강릉을 찾아온 알타이족의 음유시인에게 바다를 보여주며 '아름답다'라는 말을 나누고 싶어 하거나(<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 강릉 가는 길에 가마를 멈춘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다 바친 <헌화가>의 노인이 되어보거나(<눈 속의="" 시인학교="">), 고향 바다의 방파제를 다녀온 뒤 호랑이밥이 되고 머리만 남았다는 처녀의 환상에 사로잡히거나(<방파제를 향하여="">), 설화 속 호랑이에 자신을 완전히 이입하여 선녀가 된 처녀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거나(<대관령의 시="">), 핀란드 역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탈북자 여자에게서 그리움을 이루려는 마음을 보거나(<핀란드 역의="" 소녀="">), '백남준 10주기 기념 전시회―호랑이는 살아 있다'를 보러 갔다가 설화 속 머리만 남은 처녀와 죽은 모든 존재들이 나란히 옆에 되살아나 함께 둑길을 걷는 환상(<호랑이는 살아="" 있다="">)을 경험하기도 한다.

보세요. 호랑이도 살아 있으니, 우리도 살아 있어요.
품속의 처녀가 말했다.
우리도 살아 있다고? 죽은 사람도…… 살아 있다고?
그럼요.
처녀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보고 싶은 모습들 모두가 살아 있다니……
내 얼굴도 밝아져 있으리라. 나는 벅찬 가슴으로 둑길을 디뎠다. 그리고 몰려오는 사람들과 함께 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곧 축제가 열릴 것이었다. 모두들 살아 있음을 서로에게 알리는 축제였다. 가슴 가득 어떤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알고 알리는 주체할 수 없는 벅참이었다.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일도 잊은 채, 나는 남대천의 물길을 바라보며 '보세요' 소리와 함께 삶의 축제를 향해 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었다.
_<호랑이는 살아="" 있다="">에서

태어남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있었고, 오랜 상처가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이 얽혔습니다. 치유와 화해가 있었는가? 고향의 큰 산과 큰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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