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년 역사를 지닌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 올해 1월 말 문을 닫았다. 국내 8명밖에 없는 '제과명장'이 운영하며 홍대 명물로 자리매김했지만, 급등하는 비싼 임대료를 당해낼 수 없었다. 리치몬드과자점은 지난해 건물주로부터 롯데그룹 계열사와 계약해 재계약의 여지가 없으니 계약만료일이 되면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받았다. 이 자리에는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엔제리너스가 입점한다.
#2. 얼마전까지만해도 서울 명동 밀리오레 인근에는 파리바게뜨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사라졌다. 이유를 알아보니 건물주가 기존 보증금 1억원에 월 500만원하던 임대료를 재계약 시기가 되자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증금 20억원에 월 3,800만원을 제시했고, 1주일 안에 결정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터무니없는 재계약 조건에 가맹점주는 폐점을 선택했다. 지금 그곳엔 블랙스미스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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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갱신될때마다 임대료(보증금·월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릅니다.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는 것은 다름아닌 부동산컨설팅 업체나 주변 부동산 업자들입니다. 건물주가 업체를 부추겨서 임대료를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건물주가 아닌 임대를 해서 장사를 하는 가맹점주들은 손놓고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프랜차이즈업계 한 관계자)
적게는 2년, 많게는 5년에 한번씩 갱신되는 매장 임대료. 최근 정부의 물가잡기 방침에 따라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있는 유통업체들에겐 큰 고민거리다. 게다가 가맹점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이유로 점포 확대를 통한 이익 증대도 노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전국 가맹점 월세는 2010년 238만원에서 2011년 268만원으로 13%가 상승했다.
특히, 주요 핵심상권인 명동과 강남역, 홍대 등지에서는 매 재계약 갱신 때가 되면 보증금과 월세를 2~3배가 올라 '쩐의전쟁'을 방불케한다.
실제, 가맹사업자들이 안테나숍(소비자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본사가 적극 투자에 나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숍)을 대거 열고 있는 명동의 경우 가맹사업자들끼리 노른자위를 놓고 뺏고 뺏기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출혈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은 곧 과도한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기업들에겐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는 셈이다. 과열경쟁은 고스란히 가격 인상 요인으로 반영되고 결국 건물주만 배불리는 구조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프랜차이즈업계 한 관계자는 "신규로 론칭하는 가맹사업자는 핵심 상권에 매장을 열기 위해 기존 가맹점주를 회유하거나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건물주에게 웃돈을 주면서 기존 가맹점주를 내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특히 주요 핵심상권의 보증금과 월세는 재계약 기간이 되면 각각 2~3배 급등하고 있는데 이런 급등에는 경쟁사가 배후에 있다"며 "공정위 등 정부가 나서 임대료 재계약 시 부당한 출혈경쟁이 없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 임대료 급등에 상반된 경영…SPC '자구책' vs 스타벅스 '가격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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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임대료 상승 여파 속에서 상반된 경영을 보이고 있는 두 기업이 있다. 바로 프랜차이즈 업계 '거대공룡'으로 불리는 SPC그룹과 커피전문점 업계의 리더격인 스타벅스커피코리아(스타벅스)가 그 장본인이다.
SPC그룹은 임대료 절감 등의 자구책을 통해 현상황을 극복에 나서며 주목을 받고 있지만, 스타벅스는 가격 인상을 통해 인건비, 임대료 등의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던킨도너츠 등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법한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SPC그룹은 올해 가을쯤 양재동 빌딩으로 자사의 계열사를 집결시킬 예정이다.
그동안 서울의 핵심상권에 각각 위치하며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던 계열사들을 비교적 임대료가 싼 양재동으로 이전시켜 영업이익을 개선해보겠다는 의지다. 계열사만 이전시켜도 지금보다 임대료에서만 기존에 부담하던 임대료 대비 10%를 절감할 수 있다.
이는 SPC그룹이 최근 정부로부터 면밀한 감시를 받고 있어 가격 인상은 고사하고 점포확대도 어려운 처지에 몰린 데 따른 대안이다.
올해들어 SPC는 수시로 현안에 대한 긴급회의 등을 통해 갈수록 악화되는 영업이익을 개선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SPC그룹 관계자는 "이들 계열사를 양재동 빌딩으로 이전시킴으로써 SPC그룹은 임대료에서만 기존 대비 10%가량 절감하게 됐다"며 "최근 악화되는 영업이익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반면, 스타벅스는 임대료 상승 등을 판매가에 반영시켰다. 파리크라상의 4배가량인 두자릿수 영업이익률(로열티 포함)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합리적인 가격을 소비자에게 제시하기 보단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떠넘기기'를 택했다.
이에 따라 스타벅스 매장엔 그린티크림(6,600원), 두유그린티라떼(6,400원) 등 6,000원이 넘는 커피가 8종이고 대부분 커피가격이 5000원을 넘게 됐다. 더이상 1만원짜리 한 장으로는 더이상 커피 두 잔을 살 수 없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직성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가격을 올렸다는 것은 자사의 영업이익을 지키기 위해 비용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