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백화점 업계가 '실적 부풀리기'를 위한 일명 가매출 관행에 고객까지 동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말 심모(41) 씨는 아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의 결제 명세를 정리하던 중 수천만 원의 카드빚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심 씨의 아내와 현대백화점의 해당 매장 매니저가 결제 기일을 앞두고 카드 승인을 취소했다가 재승인하는 이른바 '날짜 교체' 수법을 사용했던 것.
이럴 경우 취소했던 금액분은 당장 결제해야 하는 금액에 포함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카드빚은 그대로 남을 뿐 아니라 연체이자까지 더해지면서 갚아야 할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확인 결과 심 씨의 아내는 매장 한 곳에서만 지난 2010년 12월부터 2년여에 걸쳐 2000여만원의 결제를 미뤄왔다.
또 B매장에서도 지난해 1월부터 8개월 동안 1200여만원을 취소·재승인하는 등 총 3700여만원의 카드빚을 안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 씨는 "아내가 알아서 관리할 줄 알고 매달 결제총액만 문자로 확인했을 뿐 고지서나 관련내용을 살피지 않아 미처 몰랐다"며 "아내가 남편 모르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넘어간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이어 "한두 번이라면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매니저가 잠깐 실수한 것으로 이해하겠지만 2년여 동안 했다면 매출 증대를 노린 매니저도 아내와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 아니겠느냐"고 황당해했다.
또 "내 아내 외에도 '남편 모르게 카드를 쓸 수 있다'는 매장 매니저의 유혹에 끌려 '날짜 교체'에 가담했다가 큰 빚을 진 주부들이 더 있다는 소문도 여러 차례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해당 매장 매니저들은 "백화점에서 카드를 돌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면서도 "수입·고가의 브랜드 매니저들이나 디자이너 브랜드 등에 한해 고객들의 '카드 돌림'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심 씨의 부인이 남편에게 잔소리 듣기 싫다고 대금유예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고객의 편의를 봐드린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 역시 "고객이 환불을 요구하면 해드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해명했다.
또 "백화점은 같은 금액을 취소했다 승인하길 반복하면 자동으로 결제를 막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도 "금액이 들쑥날쑥하면 백화점으로서도 특이사항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 씨의 경우 고객이 먼저 취소·재승인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심 씨가 결제를 계속 거부해 채무를 변제하라고 소송을 제기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백화점 관계자와 매장 매니저들은 이러한 '날짜 교체'가 종종 벌어질 뿐 아니라, 백화점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화점 관계자는 "어찌됐든 백화점의 잘못"이라며 "백화점도 다 알면서도 방조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한 매장 매니저도 "그런 수법은 매니저들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이라며 "당일 매출이 기준보다 낮을 때 조심스럽게 사용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매장 매니저는 "나도 6개월 동안 '날짜 교체'를 하다 백화점 재무팀에 걸려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백화점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매니저는 "'날짜 교체'가 비일비재하진 않지만 없지도 않다. 고객 100명 중 10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일단 고객이 원하면 당연히 날짜교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위 고객 가운데는 아예 카드를 매장에 맡겨두는 경우도 있다"며 "보통 매니저가 가매출을 올리기 위해 고객 카드로 거짓 구매하면 매출을 많이 올린 날 다시 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몇 달을 계속 미루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출을 올리려는 매장 매니저가 주부들을 유혹했든, 남편 몰래 마음껏 쇼핑하려던 주부들이 먼저 요구했든간에 부정한 방법으로 매출 날짜를 조작하는 경우가 백화점 매장에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백화점 한 관계자는 "카드 명의자가 명세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카드를 가진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장기간에 걸쳐 '날짜 교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흔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반대로 협조하는 고객을 구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