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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중국계 친구에게 '짱개'…웃음으로 포장된 교실안의 혐오 ②'없으면 만들고, 있으면 키운다'…인플루언서·렉카가 돌리는 '혐오 공장' ③"인격적 접촉없이 감정만 배출"…'공감 능력' 키울 대책 절실 (계속) |
교실에서는 '놀이'가 됐고, 유튜브에서는 '돈'이 됐다. 대한민국 혐오의 현주소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비윤리 행태로만 간주하기에 너무 일상화했고 도덕적 기준은 허물어 지고 있다. 아이들은 죄의식 없이 친구를 비하·조롱하고, 악성 유튜버들은 혐오를 팔아 거액의 돈을 번다.
무심코 던지는 혐오 표현은 그 자체가 어떤 맥락과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타킷이 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인식과 각성이 결여된 데서 시작한다는 분석이다. 그럼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디어 플랫폼 규제와 더불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맥락과 감정이 결여된 '혐오'…온라인 구조가 문제
전문가들은 비대면 중심의 온라인 환경과 낮은 미디어 이해도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혐오 표현은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감정과 맥락을 인식하지 않은 채 무변별하게 재생산되고 잇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공간은 인격적 접촉 없이 감정을 배출하기 쉬운 구조이고, 이런 환경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표현이 일상화된다"며 "특히 아이들이 그런 말을 무비판적으로 쓰는 건, 그 표현이 담고 있는 맥락과 감정을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SNS에서 자극적 표현이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혐오에 대한 죄의식 없이 말이 퍼지고, 공감 능력이 자랄 수 없는 구조가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콘텐츠를 공유하고, 어떤 말을 남기는지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별개로, 현장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 모 씨는 "아이들이 혐오 표현을 쓰면 먼저 표현의 의미를 설명하고 지도를 한다. 반복될 경우 벌점을 부과하거나 반성문, 교내 봉사 등으로 조치하지만, 학생들 사이의 모든 발화를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독일·오스트리아 극우의 '혐오 수출'…사라지기 쉽지 않아
연합뉴스혐오의 상품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국경을 넘어 극단주의와 혐오를 퍼뜨리는 핵심 진원지로 지목된 지 오래다.
이용일 대구교대 초등사회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 일부 유튜버들이 일본어 자막을 달아 '한국이 중국인에게 점령당했다'는 식의 혐오 콘텐츠를 일본 극우층에 수출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혐오의 플랫폼화'라고 정의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이슬람 혐오와 반이민 정서를 담은 콘텐츠를 영어권이나 프랑스어권으로 확산시켜 수익을 창출한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해석이다.
이 교수는 "현대의 극단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불안과 소속감을 파는 '상품'으로 작동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결정적인 공범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다. 시청자의 분노를 자극할수록 영상은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많은 광고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가 혐오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주류를 배척하는 인터넷에서는 이 같은 발언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의 저자 김경수 작가는 2023년 같은 이름의 연세대 비교문화협동과정 석사 논문에서 '주목 경제'와 결합한 밈이 타인을 비하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상호모멸'의 도구로 변질됐다고 분석했다.
김 작가는"과거에는 취업난에 자신을 비하하는 청년들이 순수한 재미를 위해 밈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기성세대의 언어 습관을 조롱하는 현상으로 변화했다"면서 "주류를 배척하는 인터넷 문화의 속성상 밈은 반복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독일·호주·핀란드 배워야"…규제와 리터러시 교육의 병행
연합뉴스전문가들은 플랫폼 규제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규제 의무를 부과한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독일은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2017년부터 '네트워크 집행법(NetzDG)'을 시행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혐오 발언 등 불법 콘텐츠를 24시간 내에 삭제할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거액의 벌금을 매기고 있다"고 말했다. 혐오가 돈이 되는 고리를 끊기 위해 국가가 칼을 빼 든 것이다.
구정우 교수는 혐오 표현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호주나 핀란드 등에서는 SNS 이용 가능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런 흐름을 참고해 SNS의 유해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SNS나 미디어는 청소년에게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학습하게 만드는 강력한 매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재윤 한국화법학회장은 청소년 언어 습관 변화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학교 교육만으로는 습관화 단계까지 이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혐오 표현은 생명력이 짧아 교육 현장에서 이를 바로잡으려 할 때쯤이면 이미 유행이 지나 사장된 경우가 많다"며 "잘못된 것을 고쳐주는 '교정 교육'에 그치면 아이들의 실제 언어생활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조 학회장은 "교육 기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토론과 현실적인 미디어 교육이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수익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 차원의 재정적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혐오 표현의 확산 방지를 위해 '공감 교육'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경희 교수는 "혐오 표현은 특정 약자 집단 전체를 비하하고, 그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만드는 언어 폭력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말을 조심하라는 차원을 넘어, 혐오 표현이 특정 집단에게 고통과 낙인을 남기는지를 이해하고, 타인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공감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