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사용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박종민 기자2024.5.10. 감사위원회의 회의록/ 조은석 감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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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부분이 중요하나면 감사원이 잘못하면 독박 쓴다는 것이, 벌써 다른 사건에서 이 기간 동안에 역술가가 방문했다는 것이 나와요. 객관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 국민감사청구로 되어 있는데 국무회의 절차를 거쳤다, 그것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거쳤다고 내놔버리면, 우리 스스로가 검토 보고에서 이렇게 하면 정합성이 없게 되는 거예요. 최소한 답을 어떻게 하든 자료를 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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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과 관련해 첫 감사종료보고서를 받아 본 조은석 당시 감사위원(현 내란 특별검사)은 크게 놀랐다. 1년 6개월이나 걸린 감사에서 확보한 물적 증거가 무색할 만큼, 기초적인 조사의 공백이 곳곳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조 위원은 곧바로 약 20장 분량의 비판적 검토의견서를 작성해 감사위원들에게 돌렸다. 2024년 5월 10일 감사위원회에서 관저 이전 관련 불법 의혹에 대해 감사위원회가 의결을 보류하고 보완 조사를 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감사위원회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제14회 감사위원회의 회의록'과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조 위원은 "(이러면)
감사원이 독박 쓴다"는 표현까지 할 정도로 부실 감사가 초래할 결과를 우려했지만, 최재해 감사원장을 비롯한 일부 감사위원들은 생각이 달랐다.
대통령 관저 부지는 2022년 4월 6일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결정됐다가 같은 달 24일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갑자기 변경됐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노후화가 심해 공사비가 많이 소요되며 경호·보안 등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은 영부인 김건희씨가 외교부장관 공관을 둘러본 후 변경하게 된 것 아니냐며 '공관쇼핑'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조 위원은 원래 예정한 곳과 옮기려는 곳의 공사비 산정 및 비교 등을 거쳐 타당한 근거에 따라 부지가 변경된 것인지 감사했어야 하는데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부지 선정이 최종적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는지만 따져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남구·이미현 감사위원 등은 관저 부지 변경이 '정책 결정'이기에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조은석 당시 감사위원(현 내란 특검). 연합뉴스▶ 2024.5.10. 감사위원회의 회의록 |
-조은석 위원: 사무처가 검토보고서에 명백히 관저에 대해서는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위원회에 제공한 문서에 기재해 놓고, 위원회가 결정 했어요. 그러면 우리는 그대로 이행하는 거예요. 사무처 스스로 그렇게 써놓고, 예를 들면 이것이 과연 정책이냐 아니냐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어쨌든 입지 선정은 정책이 아닙니다. 정책 수행과 이행 과정이지 -최재해 의장: 그것은 판단의 영역이니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실 것은 아니고요. -이남구 위원: 그것은 정무적으로 결정이 됐잖아요. -이미현 위원: A가 옳냐 B가 옳냐는 것은 정책 판단이지 그것이 어디 무슨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은석 위원: 정책 판단을 할 때 정확한 검토를 거쳐서 판단하는 것이죠. -이미현 위원: 검토도 어느 정도 했냐고는 판단하는 자가 하는 것이고요. 다만, 이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법에 일정한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그 절차를 안 거쳤다는 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절차를 거친 것이 확인됐다면, 이 판단이 옳냐 그르냐는 정책 판단이어서, 저희가 감사할 대상은 아니잖아요. -조은석 위원: 그러면 정책 판단이라고 당당하게 감사보고서에 쓰세요. 어쨌든 의결된 것은 문구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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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가 방문 의혹까지 제기되며 국민의 관심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공관 이전 시기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방문한 민간인이 풍수지리 전문가 백재권씨라는 경찰 조사 결과는 이미 2023년 9월 알려졌지만, 최 원장과 이미현 위원은 "언론에서 떠든 것", "확인이 안됐다"고 감사 필요성을 일축했다.
▶ 2024.5.10. 감사위원회의 회의록 |
-조은석 위원: 그런데 이 부분은 감사해야 하는 것이 역술가가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를 안 해 버리면. -이미현 위원: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여기에서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조은석 위원: 사회적으로, 객관적으로 노출되어 있잖아요. -최재해 의장: 그것은 언론에 나와 있는 것이죠. -이미현 위원: 그것은 언론에서 떠든 것이지 확인이 안 됐잖아요. -조은석 위원: 우리가 감사 개시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미현 위원: 감사청구서에는 그것을 확인하라고 안 되어 있는데 왜 그 말씀을 여기에서 하세요. -김영신 위원: 저는 아무리 읽어봐도 조은석 위원님 말씀처럼 안 들리는데요. -김인회 위원: 저는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런 과정(당시 상황의 충분한 서술)을 통해서 밝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재해 의장: 조은석 위원님이 약간 오버하시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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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해 감사원장. 황진환 기자최 원장의 말대로 조 위원의 '오버'에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최근 김건희씨 관련 의혹들에 대한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시작된 후 관저 이전 시기 김씨가 백씨와 십수 차례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감사원은 관저 부지 변경 과정에서 실제 영향을 미친 인사가 누구인지, 권한 없는 영부인 김건희씨나 민간인 역술가가 영향력을 행사한건 아닌지 조사는커녕 무작정 덮어 놓고 감사를 종료한 꼴이 됐다.
5월 10일 감사위원회의 내내 최 원장은 조 위원이 과도하게 감사청구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는 취지로 제동을 건다. 반대로 조 위원은 문언상 명백한 감사 대상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의혹의 핵심 당사자조차 조사되지 않은 문제를 지적한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차를 '순수하게' 감사 청구 범위에 대한 해석 차이로만 볼 수 있느냐다.
국민감사청구는 공직자의 부패행위를 잡기 위한 제도다. 김건희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 등 공사업자의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건 대통령 부부라는 공직자의 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그러나 관저 이전에 대한 감사원의 첫 감사종료보고 내용엔 공직자의 부패행위를 검증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사들이 상당 부분 누락됐다.
조 위원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이남구 감사위원도 "주요 쟁점과 관련돼서 핵심 관계자에 대한 추가 조사와 증거 서류에 대한 추가 확인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 했다"며 "보고서도 보면 채증된 증거서류에 있는 것들이 모두 담긴 것 같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김인회 감사위원도 "(관저) 공사감독을 비서실과 (행정안전부) 청사관리본부 사이에 그렇게(사실상 행안부 배제로) 협의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누가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누가 했는지 부분이 잘 밝혀져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 2024.5.10. 감사위원회의 회의록/ 최재해 감사원장 |
"우리가 감사 청구가 들어왔을 때 청구사항에 국한해서 답을 할 것이냐 아니면 조금 더 폭을 넓힐 것이냐는 것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어요. 위원회의에서도 어떤 청구사항에 대해서는 그것만 답해야 한다고 하고 어떨 때는 조금 넓게 본 부분도 있었는데, 이 건은 국민적 관심도가 굉장히 높고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건을 가지고 들어온 청구사항 외에 우리가 넓혀서 판단하고 조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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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다행히 첫 관저 감사 보고서에 대해선 의결 보류가 결정되면서 재감사 기회가 생겼다. 특히 조 위원은 청사관리본부가 제출한 문서에
'대통령과 영부인의 요구사항 때문에 증축 범위를 축소하지 못한다'는 표현까지 들어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같은 증거를 토대로 한 핵심 관계자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감사는 결국 기존 결론을 크게 바꾸지 못한 채 맹탕으로 끝났다. 감사원은 기존에 서면 답변서만 받았던 21그램과 원담종합건설 관계자를 부르고, 김오진 당시 대통령실 관리비서관도 처음 조사했지만 김건희씨에 대해선 서면조사도 하지 못했다. 관저 부지 변경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조 위원은 최종 감사보고서 의결을 앞두고 객관적 증거관계와 다른 내용이 담긴 보고서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의견을 내부에 공유했지만 묵살됐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고 민감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게 감사위원회의 막바지까지 보인 최 원장의 입장이었다. 김건희 특검은 관저 공사 관련 비위 의혹과 함께 감사원이 단순히 보수적인 감사를 한 것인지, 고의적인 감사 범위 축소·왜곡 정황이 있는지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