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아무리 망가져도 이 정도일 순 없다. 민주정당 하라고 한 해 수백억원의 정부보조금까지 지급했더니 극우세력도 모자라 신천지·통일교 등 유사종교집단과도 버젓이 손을 잡는다. 악마와의 악수를 연상케 하는 저들의 탐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지난 십수년의 흐름을 볼 때 극단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국민의힘 주류 기득권세력이 당을 망가뜨렸다. 공천도, 당권도, 심지어 대권후보도 그들의 입맛대로 정해졌다.
저항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에는 배신자 혹은 분열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악은 악을 알아본다. 유사종교가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를 미끼로 결합했다. 아니 필요에 의해 서로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속속 드러나는 신천지·통일교와의 밀착설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 연합뉴스국민의힘이 이단 유사종교와 밀착해 은밀하게 거래한 정황은 당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21년 국민의힘 20대 대선후보 경선 당시 신천지 신도들이 조직적으로 입당했다"고 최근 폭로했다. 교주 이만희씨가 윤석열 후보를 도운 것은 "검찰총장 시절 신천지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막아주어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고도 했다.
홍 전 시장은 당비를 1회만 내도 투표권을 줬던 2021년 7월부터 9월 사이 신천지가 대규모 입당해 윤석열 경선후보를 도왔다는 사실을 경선 직후 알게 됐고, 그걸 확인하고자 이듬해 8월 교주 이만희를 만났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신천지가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증거가 없다', '단지 이만희 교주의 말에만 의존한' 폭로라고 반박했다.
과연 그럴까. CBS는 신천지가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조직적으로 꾸준히 관리해온 사실을 지난 3월 보도했다.
(3월 21일자 '[단독] 신천지, 대선 이어 국민의힘 당권 개입까지…작전명 필라테스')
2023년 10월 신천지 간부들이 공유하는 텔레그램 방에는 '필라테스 유의사항'이란 공지사항이 내려온다. 기밀유지를 위해 필라테스라는 암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지사항에는 신도들에게 당원 가입을 종용할 때 지켜야 할 수칙이 담겼다.
비밀작전을 방불케 한 '필라테스 프로젝트'는 실제로 신도들의 당원가입으로 이어졌다. 각 지역별로 당원 가입한 사람들의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 이름 등 개인정보가 취합돼 보고됐다. '해당 지역 인원의 절반 이상은 가입시키라'는 식으로 목표 수치는 높게 설정됐고, 정당 가입 이후에는 상부에 보고한 뒤 파기하는 방식으로 관리됐다고 한다.
'필라테스 보고'에 보고된 당원 가입 신도들의 정보들. 송주열·오요셉 기자 대전 서구을 선거구에 주소를 둔 신규 가입 당원 667명의 이름과 신도 고유번호, 연락처 등이 담긴 엑셀파일이 지난 2023년 5월 온라인커뮤니티 레딧에 폭로됐다가 삭제됐던 사실도 28일 CBS보도로 새롭게 드러났다.
(7월 28일자 '[단독] 신천지 국민의힘 추정 당원 명단 입수')
국민의힘이 '증거가 없다'며 신천지 연루설에 선을 긋고 있지만, 이단상담소 측이 삭제 전 파일을 다운로드해 놓은 만큼 국민의힘 당원 명부와 신천지 가입자 명단이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면 진위는 쉽게 가려질 수 있을 것이다.
통일교, 당대표 선거에 당원 가입시키려 한 정황
가평 통일교 천정궁 앞에 모인 신도들의 모습. 가평=박종민 기자통일교가 대선 개입 의혹뿐 아니라 당대표 선거에서 권성동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교인들을 당원으로 가입시키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2023년 3월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통일교 윤영호 전 본부장이 2022년 11월 나눈 문자메시지에는 동원 신도 규모 등 조직적 개입의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통일교와 신천지 신도들이 강제로 당원에 가입해서 전당대회에 참여했다면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중대한 위반에 해당한다.
특검은 통일교측이 김건희씨에게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백 등을 건네며 통일교의 메콩강 개발사업 지원, YTN인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 교단의 현안을 청탁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공생의 방정식은 주고받기
누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당이 망하는 길로 가든 말든 자기 이익만 지키면 된다는 이른바 친윤 기득권 세력의 극단적 이기주의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뒤 두 달이 다 되도록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기득권 고질병에 걸린 당 주류, 표만 된다면 오염돼도 좋다는 당원구조가 결합해 혁신을 막아선 것이다.
국민의힘과 유사종교가 만들어낸 공생의 방정식은 주고받기다.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신천지와 통일교는 당원 가입을 통해 표를 주는 대신, 이권과 영향력을 보장 받으려 했다.
국민의힘 기득권세력에게 표는 당권과 대권, 기득권 유지를 위한 유일무이한 통로나 다름없다. 현 국민의힘 지도부가 난파선을 부여잡고 '당원 80%' 조항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뼈대와 피가 모두 감염…유사종교 개입 진상 밝혀야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왼쪽)와 홍준표 전 대구시장. 연합뉴스홍준표 전 시장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국민의힘은 더 이상 민주정당이라 불리기 힘들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천지 봐주기, 그 대가로 신천지 신도가 대거 책임당원으로 입당했다면 내란에 버금가는 민주주의 파괴행위나 다름없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에도 위배된다.
손을 잡은 상대가 이단 사이비라면 말해 무엇하랴. 신천지는 이혼과 구타, 가출, 자살 등 가정 파괴를 유발하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켜왔다.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암살에 통일교의 과도한 헌금이 지목돼 파문이 일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이단세력은 정치권과의 유착을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특정 종교세력과 연관된 당원들의 실태를 파악해 신속히 당적을 정리하는 게 옳다.
정당법은 이중 당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과의 이중당적자를 찾아내는 일도 급선무다. 특검이 통일교와 신천지의 개입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만큼 입당과정과 대가관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당이 몸이라면 국민의힘은 당 주류에 해당하는 머리와 골격이 모두 망가졌다. 당원에 해당하는 피와 살도 병이 깊다. 이대로라면 기득권 고질병에 유사종교와 극우세력 감염병이 더해진 국민의힘은 회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의명분을 무기로 혁신의 몸부림을 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젖과 꿀에 취한 기득권세력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은 언제까지든 탄핵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병든 정당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