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촌철살인 발언록'에 담긴 이재명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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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국민에게 내세울 것은 피와 노동, 눈물과 땀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윈스턴 처질이 체임벌린 수상으로부터 총리직을 물려받으면서 하원에서 행한 연설의 내용 중 한 부분이다.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던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국민적 단합을 촉구한 메시지다. 전황을 알려주는 백가지 사실보다 이 한마디가 국민들에게 더 생생하게 다가갔음은 물론이다.
 
국가지도자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분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주정권이든 전체주의정권이든 지도자의 메시지 관리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것도 지도자 언행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의 어법이 국민적 관심사이자 커다란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주요 이슈나 정책에 대한 발언들이 하나 같이 한번 듣고도 기억에 남을 만큼 감각적 표현과 뚜렷한 방향성 등을 담고 있어 공직자들 뇌리에 각인되고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에 부족하지 않다.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전 국민 소비쿠폰 신청의 와중에 몇몇 지자체가 제작한 소비쿠폰의 색깔이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보고받자 이 대통령은 "공급자 중심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는 질타와 함께 즉각 시정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촌철살인은 백경현 구리시장의 수해 야유회 때도 이어졌다. "엄혹한 현장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거나 대책없이 행동하는 정신 나간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엄히 단속하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뼈아픈 일침에 백 시장은 22일 공식사과와 함께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기습폭우가 전국을 덮쳤을 때 대통령 어록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국가의 제1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피해와 사고예방조치를 취하겠다"는 부분이다. 수 백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한 심각한 수해 앞에 이재민들은 망연자실했고 행안부와 지자체 공무원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엄두를 내지 못하던 상황.
 
이 발언은 수해의 와중인 18일 중앙재난상황실에서 나왔다. 행정 최고책임자로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피해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받은 공무원들의 행동이 어떻게 나올 지는 예상이 어렵지 않다. 집이 통째로 침수되거나 부서지고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는 백마디 말보다는 하나의 빠른 지원이 절실할 뿐이다.
 
지시가 있은 지 4일만에 산청 합천 가평 등 전국 6곳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같은 날 농식품부는 피해지역 손해평가를 일단락짓고 25일부터는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남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수천명의 인력과 가용한 중장비 등을 총동원 총력 지원체제를 가동했다.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으로부터 말단 지방행정조직까지 수해 대응이 기민하고 일사분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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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수해 때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늑장 또는 뒷북대응이란 해묵은 논란이 이번에는 사라진 듯하다. 수해가 지나가고 나면 으레껏 등장하는 사회면의 늑장대응 또는 정부고발기사도 이번엔 찾아보기 어렵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집권초여서 정부의 서슬이 칼날같고 반복되는 재해로 인해 우리사회의 재해대응 역량이 고도화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위기대응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재해 대응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어정쩡한 메시지나 애매한 발언을 했어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우리는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진 역대 대통령들이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에둘러 의사를 표시하거나 실기하는 바람에 대응이 늦어지고 피해가 커진 경우를 이따금씩 보아왔다.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정치적 논쟁거리가 됐던 사례도 지켜봤다.

벌어진 상황 처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빠르고 명확한 메시지가 나오기 어렵다. 재치있는 그러면서도 명확한 지시나 정책의지가 담긴 발언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적지 않았다. 집권초 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대통령의 촌철살인 퍼레이드가 공직사회와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으로까지 확산하며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메시지 관리를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뜻하는 바를 이룬 역대 제왕이나 국가지도자는 부지기수다. 지도자가 발하는 메시지를 국민은 기뻐하고 반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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