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불 피해 대응을 두고 '예비비'가 정쟁의 중심에 선 가운데 과거 윤석열 정부가 예비비를 해외순방 등에 집중 사용한 사실이 다시 조명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대통령실 제공영남권 산불 피해 대응을 두고 '예비비'가 정쟁의 중심에 섰다. 여당은 지난해 야당이 예비비를 대거 삭감한 탓에 재난 대응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과거 윤석열 정부가 예비비를 대통령실 이전과 해외순방 등에 집중 사용한 사실이 다시 조명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재난 대응 책임론'은 지난 25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삭감한 재난 대응 예비비 2조원을 이번 추경에 포함해 국민 안전망을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27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지난해 예비비를 일방 삭감해 재난 대응과 이재민 구호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김용태 비대위원),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야 할 예비비를 정치적 계산으로 무책임하게 축소했다"(최보윤 비대위원) 등 비판 수위를 높였고, 급기야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요구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과거 2025년 예산안에 전년 대비 14.3% 증가한 4조8천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 가운데 절반(2조4천억)을 삭감해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예비비는 국가재정법상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국가 비상금'으로, 구체적인 사용 내역에 대한 국회의 사전 심의 없이 총액만 승인받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예비비를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해외 순방 등에 집중 사용하면서, 본래 취지를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6월 1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차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작년 한국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명목으로 약 650억원, 2023년 외교 활동 지원 명목으로 532억원의 예비비를 사용했다. 편성 내역 기준으로 사용 규모가 가장 컸다.
정부는 이에 대해 "대면 외교 재개와 물가 상승, 주요 정상외교 일정 추가 등으로 예산 소요가 늘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이같은 기조를 이어갈 것을 시사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비비를 6천억원 증액해 뭘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상외교나 정부의 외교 활동이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면서 올해도 해외 순방 등에 예비비를 활용할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6월 13일(현지시간)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에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작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아무 때나 아무 용도로 꺼내 쓰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고, 국회예산정책처도 보고서를 통해 "예비비는 다른 세출예산 대비 상대적으로 크게 증액되었으나 (예비비의 주된 용도 중 하나인) 재해대책과 관련된 예산안은 개별 부처에도 편성되어 있다"고 중복 소지 등을 언급하면서 적정 규모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초 예비비의 주된 목적이 재난 대응이 아니었고, 실제 집행 과정에서도 자의적 사용으로 감액 명분을 자초해놓고 이제와 야당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낙동강변 둔치에 마련된 소방지휘본부에서 산불을 진압하던 의용소방대원들이 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25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예비비를 '쌈짓돈'처럼 마구잡이로 쓰지 못하게 막았더니 마치 이번 산불 확산과 관련된 양 거짓말을 하며 정쟁의 수단으로 삼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자체 추경 제안 가운데 산불, 홍수, 가뭄에 대응할 수 있는 재해대책비로 9천억원을 편성했다"면서 "산불 진화용 헬리콥터를 더 확충한다든지, 소방 장비를 더 확충한다든지 하는 것은 예비비로 할 수 없으니 추경을 통해서 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