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殺처분'에 '철새 탓'...과학적인 대처법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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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감염 가능성에 무게..."행정편의" 비판도 제기

조류인플루엔자(AI)가 야생철새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살곶이공원 앞 중랑천에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윤성호기자

 


의심신고 농장 세 곳과 폐사한 철새에서 모두 동일한 형질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되면서, 철새에 의한 감염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상황을 ‘철새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0일 밤, 세번째로 의심신고를 한 전북 부안의 농장, 그리고 동림저수지에서 폐사한 야생 철새에게서 모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 바이러스 형도 H5N8로 똑같이 나왔다.

발생농가 3곳과 동림저수지의 야생철새에게서 모두 같은 형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되면서, 감염원이 철새라는 가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철새 발병설에 무게...방역도 철새 차단방역에 중심

실제로 가축방역당국은 20일 자정부로 전남과 전북, 광주 지역의 축산 관계자들과 차량에 대한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해제했다. 대신, 전국 철새도래지 37곳에 대한 예찰과 소독을 강화하고,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다. 또 농장으로 바이러스가 묻은 철새의 분변이 옮아가지 않도록, 장화갈아신기, 소독강화 등 이른바 '차단방역'에 집중해줄 것을 각 농가에 당부했다.

세번째 발생농가와 반경 500미터 이내 가금농가에 대한 살처분을 추가로 실시하는 등,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한 포위망 형태의 기본 방역 체계는 고수하되, 일단 사람이나 차량에 의한 인위적인 수평 감염 보다는 철새로부터의 감염을 차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한 동림저수지는 방역과 함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전북CBS 임상훈 기자>

 


하지만 철새를 감염원으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철새의 분변이 농장에 떨어지거나 장화나 차량에 묻어 농가로 번졌다는 추측만 할 뿐, 철새로부터 발생 농가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감염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연말까지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다가 갑작스레 동림저수지에서 폐사한 야생 철새들이 100여마리 가량 발견된 점, 그리고, 동림저수지 이외에 다른 철새도래지에서는 집단 폐사가 관측되지 않은 점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 철새 감염 처음 아닌데.. 근본 대책 세워야

결국은 정부와 방역당국이 이번에도 애꿎은 철새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손쉬운 방법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은 “허점이 많은데도 무조건 철새 탓으로 돌리는 것은 행정편의”라며 “수십만마리의 닭과 오리를 그냥 살처분하고 있는데, 정부가 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대처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작은 감염으로도 집단 폐사를 불러오는 양계장과 오리농가의 밀집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철새의 국제적인 이동경로를 면밀히 파악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사태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10년 전인 2003년부터 벌써 4차례나 발생했고 6,000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할 때마다 수십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죽이고 묻으면서, 결국은 ‘하늘의 철새 탓’으로 돌리는 일을 또 반복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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