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리 8번 소송학생 "체념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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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만능주의가 빚은 비극
- 당락 영향없으니 오류 괜찮다?
- 평가원, 자리보전 위해 필사적
- 지리학계의 침묵, 부끄러운 일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걸 (수능 응시학생), 박현지 변호사 (소송 대리인)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오류 논란 빚었던 세계지리 8번 문항. 법원이 어제 '출제오류로 볼 수 없다'면서 평가원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논란이 된 문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과 유럽연합(EU)의 총생산액을 비교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신의 사실과 교과서에 실린 사실이 달랐던 거죠. 결국 최신 정보를 알았던 학생은 이 문제를 틀리게 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학생들은 소송을 했고요. 법원이 여기에 대해서 평가원 손을 들어주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데요. 지금 학생들 심정은 어떨까요?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학생 이야기 직접 들어보죠. 이걸 학생 연결이 돼 있습니다. 이걸 군, 안녕하세요?

◆ 이걸> 안녕하세요.

◇ 김현정> 결국 세계지리 8번은 문제가 없다, 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이 소식 듣고는 어떠셨어요?

◆ 이걸> 허탈했어요.

◇ 김현정> 왜 허탈하셨습니까?

◆ 이걸> 수능이라는 건 자신이 얼마나 학업에 열중했느냐 그걸 평가하는 건데, 그 학업에 열중한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평가원의 재량에 얼마나 맞춰 놀아났느냐, 그것만을 따진 것 같아서 참 허탈했어요.

◇ 김현정> 평가원의 재량에 얼마나 놀아났느냐. 지금 굉장히 거친 표현까지 쓰셨어요. 학생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지금 굉장히 격앙돼 있습니까?

◆ 이걸> 관련자들은 격앙돼 있는 것이죠. 참 믿었던 법원마저도 평가원의 손을 들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다시 부딪쳐봐야 한다.

◇ 김현정> 그러니까 법원에서는 이런 판결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군요?

◆ 이걸> 지난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평가원에 대한 1차, 2차 심문이 있었어요 .그 법정에 참가를 하고 왔는데요, 거기서 평가원이 하는 모든 주장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반박이 이루어졌고요 평가원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일단은 저희 학생들이 생각하기에는 법권이라는 것은 약자인 저희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그 의견이 충분히 합당하다면 그 합당한 의견에 대해서 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2014 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 (자료사진)

 


◇ 김현정> 그런데 법원마저 우리를 말하자면 배반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 이걸> 굳이 말하면 그렇죠.

◇ 김현정> 그러니까 우리 이걸 학생은 NAFTA의 총생산액이 EU의 총생산액보다 많다는걸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법원은 세계지리 교과서와 EBS교재에 보면 EU가 NAFTA보다 총생산의 규모가 크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에. 물론 최근에는 그게 바뀌었지만. 어쨌든 교과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시험 문제는 문제될 게 없다라는 논리인데요?

◆ 이걸> 그러면 2006년인가 2007년에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에서 퇴출당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연도의 교과서에는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이라고 나와 있을 거예요.만약에 그 해 수능에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이라고 나와 있었다면 그건 맞는 걸까요, 틀린 걸까요? 그거는 당연히 틀린 거라고 해야죠. 이거랑 똑같은 이치예요.

◇ 김현정> 그러니까 신문 보고 시사를 똑바로, 제대로 최신 시사를 알았던 사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이 문제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런 말씀이신 거죠?

◆ 이걸> 네. 교과서 만능주의에 점철되어 정작 저희가 학습하고 그리고 살아가야 할 현실을 잊는다면 그건 올바른 평가라고 보기 어렵죠.

◇ 김현정> 문제 풀 때 좀 갈등하셨어요?

◆ 이걸> 네. 왜냐하면 평가원의 논지대로 이건 소거법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김현정> 그러니까 지금 이 문제가 ㄱ, ㄴ, ㄷ, ㄹ 중에서 2개씩 짝지은 게 맞은 걸 고르는 거였지요. 그런데 소거를, 확실히 소거를 하다 보면 이 문제는 풀 수 있었다, 이게 지금 법원의 논지군요?

◆ 이걸> 그런데 사실 ㄴ,ㄷ,ㄹ 다 틀렸는데 ㄴ,ㄹ만 소거법으로 한 다음에 ㄱ,ㄷ을 맞춘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소거법을 주장한다면 애초에 답이 없어지는 거죠. ㄱ 하나만 맞는 거니까요. 결국 정확히 다 아는 학생은 그냥 찍는 수밖에 없는 거죠. '어, 이건 분명히 답이 없는데 왜 이러지'라고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이 한 문제 가지고 떨어질 학생이 붙고 붙을 학생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 아니냐. 한 문제인데' 이런 얘기를 하세요.

◆ 이걸> 그 한 문제가 학생들의 대학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어요.

◇ 김현정> 어떻게 한 문제로 가능합니까?

◆ 이걸> 왜냐하면 예를 들어 최상위권 대학을 생각해 보세요. 학과별로의 평균적인 표준 점수 반영, 그러니까 합격대가 다 1, 2점, 3, 4점 정도로 갈리거든요.

◇ 김현정> 합격이냐가 불합격이냐가 1, 2점으로?

◆ 이걸> 네.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설사 한 문제가 대학 당락에 별로 영향을 못 끼친다고 해서 그 한 문제를 잘못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 김현정> 한 문제가 설사 대학 당락에 영향을 안 준다고 하면 그러면 오류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도 된다는 얘기냐 되묻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우리 이걸 학생,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죠.

◆ 이걸> 현재 고등학교 3학년생이에요.

◇ 김현정> 말하자면 아직 사회 진출도 안 한, 사회로 발도 디디지도 않은 상태인데. 좀 상처를 받았겠다 싶어요?

◆ 이걸> 상처도 있지만 더 큰 건 체념이죠. 아, 어차피 이 사회는 이런 기득권층이, 기득권층의 말대로 이뤄지는 구나 결국.

◇ 김현정> 여기에서 기득권층이라 하면 그러면 평가원입니까, 힘 있는 평가원?

◆ 이걸> 네, 이런 게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또 한 사람의 앞날을 만드는 건데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그냥 덮으려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이런 평가원이 맡고 있는 교육에서는 솔직히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봅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아직 세상에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체념이라는 말을 먼저 배웠다는 게 참 기성세대로서 안타깝고 우리 학생에게 미안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힘내시고요.

◆ 이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희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이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이번에 수능을 치룬 고3학생입니다. 이걸 학생, 이걸 군을 먼저 만나봤습니다. 이번 소송에 수험생측 변호를 맡았던 박현지 변호사를 이어서 연결해 볼까요. 박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박현지> 안녕하세요.

◇ 김현정> 법원이 밝힌 패소 이유, 그러니까 논거가 있을 텐데 뭡니까?

◆ 박현지> 간단하게 말을 하면, 문제가 되는 이 지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문이 답이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지문만으로도 답을 풀 수 있다라는 겁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ㄱ, L, ㄷ, ㄹ 이 보기 중에 하나가 애매했더라도 나머지 3개를 정확히 알았으면 이 문제는 풀 수 있다?

◆ 박현지> 그리고 단순히 객관적인 통계수치만 엄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교과서나 이런 것들을 해석했을 때 이걸 맞는 지문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한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EU의 생산액과 NAFTA의 생산액. 엄연히 최근 것은 NAFTA가 많은데 교과서에는 과거의 것이 실려 있는 거죠.

◆ 박현지> 그렇죠. 문제 자체에는 기준시점이 없었고 지도에는 2012년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래서 수험생들은 계속해서 2012년, 최소한 최근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이 지문이 틀린 지문이 아니냐 이렇게 봤는데 법원은 2010년 이전이나 이후를 봤을 때 문제를 맞게 볼 수도 있고 틀리게 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애매하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딱 무조건 틀렸다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문제에 약간의 하자가 있을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푸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거죠.

◇ 김현정> 그러면 제가 똑같은 논거를 가지고 반론을 드리죠. 소거법으로 ㄱ, ㄴ, ㄷ, ㄹ 정확히 아는 학생이었다면 이 문제는 틀릴 이유가 없다. ㄷ이 비록 애매하다 하더라도.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 박현지> 그런데 이게 참 답답한 게. 다른 수능 문제도 다 지도에 나와 있는 연도가 기본적인 기준이 됐었고 이것도 2012라는 숫자가 있으니까 지문 자체는 연도가 없었고. 그렇다라면 당연히 2012년도나 아니면 최근 연도를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건데. 과거 통계수치만 반영된, 교과서대로 그냥 풀어야 된다라고 하니까 답답합니다.

◇ 김현정> 대형로펌을 평가원에서 고용했어요. 이게 상당히 이례적이라고들 하던데 맞습니까?

◆ 박현지> 그렇죠. 정부 기관에서 보통 정부 법무공단이라고 하는 정부에서 설립한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그런 정부기관에 소송대리를 맡기는 게 보통인데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굉장히 큰 대형로펌을 쓴 거고, 이것도 다 국민 세금으로 다 드는 거거든요, 결국은 변호사 비용도.

◇ 김현정> 변호사 수임료도?

◆ 박현지> 그렇죠. 그러니까 그럴수록 참 답답하죠.

◇ 김현정>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례적으로까지 대형로펌, 빅3로펌을 선임한 이유?

◆ 박현지>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왜 필사적이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오류 난 거면 오류라고 인정할 수도 있을 텐데.

◆ 박현지> 그런데 2008년도에는 오류를 인정을 함으로 인해서 평가원장이 사퇴를 했거든요. 오류를 인정함으로써 성적을 재산출하게 되고 입시일정에 혼란이 있으니까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는데 이번에는 저는 지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자기 자리를 어떻게든지 지키려고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아야 되고 오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굴지의 로펌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쓰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러면 정부 법무공단들 이용해서 이 재판을 벌인 것과 대형로펌의 변호사를 고용한 것과는 이 비용 차이가 어느 정도나 나나요?

◆ 박현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10배 이상은 차이나겠죠.

◇ 김현정> 10배 이상.

◆ 박현지> 필사적으로 수험생들 말을, 귀를 막고 귀로 듣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변호사님. 이번 경우가 특이한 건, 지금 변호사님 말씀대로라면 세계지리 학계에서 전체적으로 들고 일어나야 될 것 같은데 잠잠해요. 그건 이 평가원측 주장이 맞아서 그런 건 아닙니까?

◆ 박현지> 그것도 이제 재판에서 쟁점이 약간 됐었었는데 세계지리학회, 지리학과 학회 교수들이 되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선에 있는 교사들한테 여론조사를 한 내용이 언론보도가 되기도 했었는데 거기서 7, 80% 정도 교사들은 이 문제가 잘못됐다라고 의견을 냈거든요. 그런데 학회가 평가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한데 왜냐하면 평가원에서 연구용역도 주고 출제 교수로도 위촉할 수 있는 권한을 평가원에서 가지고 있으니까 학회라고 하지만 교수들도 평가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자적인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했다는 게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 박현지> 어쨌든 1심 결정은 났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시는 그대로 일정대로 치뤄집니다. 지금 정시 앞두고 있고요. 2심으로 갑니까? 항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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