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사진 캡처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녹음파일의 공개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대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10일 돌연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간 대화록 공개 가능성을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박 대통령은 방북 당시 3박 4일 동안 체류하면서 김정일과 1시간의 단독회담과 2시간의 만찬회동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특히 김정일과의 단독회담을 통해 금강산댐 공동조사,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생사확인 등 남북간 주요 현안에 대해 ‘통 큰’ 합의를 이끌었다.
당시 박 대통령을 수행한 3명 가운데 한 사람인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올해 6월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30분은 김용순 당 비서와 내가 배석했다. 이어 약 1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독회담을 했다. 그땐 북측 속기사가 대화 내용을 기록했으니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02년 7월호 기사
북한이 공개하겠다고 이날 협박한 것이 바로 북측이 작성한 속기록으로 보인다.
북한 조평통은 지난해 6월 11일 “박근혜만 보아도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접견을 받고 주체사상탑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한 평양시의 여러 곳을 참관하면서 친북 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이 김정일과 두 차례의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2002년 방북 이후 몇 몇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털어놓은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우선 <신동아> 2002년 7월호에서 김정일에 대해 “가식이 없다”, “거침없이 답변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기자가 ‘박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신뢰감을 받은 것 같지만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 만나본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이던가요’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김 위원장은 가식이 없었어요. 나도 사명감을 갖고 북한을 방문했어요. 내가 속한 상임위가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여서 평소에도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거침없이 답변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가령 이산가족들이 지금처럼 만나면 어느 세월에 다 만나겠느냐, 상설면회소를 설치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거침없이 대답해요. 남북한이 같이 잘 사는 방향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 ‘내 생각도 그 생각이다’라고 답했어요. 끊임없이 얘기가 이어졌어요...”
이어 ‘북한의 인권문제 등 남북한 간에 갈등의 소지가 될 만한 이슈’들에 대해 기자가 물어보자 박 대통령은 “대화를 하려면 마주앉아서 인권이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NLL이라는 ‘껄끄러운 주제’를 직접 요리하지 않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보자기에 싸 봉합했던 때의 회담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평화정착과 통일로가는 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남한 내 보수층의 문제제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의 지도자인 이상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향적으로 대답했다.
주간한국 2002년 5월 30일자 기사
박 대통령은 특히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의 실정을 공박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었냐’는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미래지향적으로 일을 합니다. 국민들은 항상 마음속에 불안감을 안고 삽니다. 특히 남북문제에 있어서는요, 그걸 떨쳐버리고 평화로운 나라에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 국민의 염원입니다. 또 이산가족들은 살아생전 피붙이를 만났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해야할 사람이 아닌가요. 조그만 일이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풀어주고...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 일을 얘기하는 것이 국민들 평화롭게 사는데 도움이 되겠어요? 도움 되는 일이라면 하죠. 국민이 평화스럽게 살고 원하는 가족 만나고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 것을 위해 일하는 거지. 국민이 편안하게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얘기를 해서 뭐 하겠어요”
‘대결보다는 어떻게든 북을 안고 가야한다는 말씀이군요’라는 기자의 추가 질문에 대해서도 “신뢰를 구축하고 남과 북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류한다고는 하지만 서로 이해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자꾸 만나면서 이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4년 8월에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과의 회담 후일담을 털어놨다.
박 대통령은 ‘김정일과 무슨 얘기를 나눴냐’는 기자 질문에 “한 시간 얘기를 나눴고, 나머지 두 시간은 만찬이었어요. 김정일 위원장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둘 다 2세잖아요. ‘7.4 남북공동성명이 선대에 발표가 됐는데 정신은 좋은데 평화 정착이 아직 안 됐다’. ‘우리가 2세로서 같이 노력해서 공동성명의 정신이 한반도에 실현되도록 노력하자’. ‘평화정착에 힘쓰자’고 했고요. 저는 금강산댐이 부실공사로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해서, 그런 문제를 제기했어요”라고 말했다.
‘혹시 그 당시 김정일을 만나면서, 이 만남이 나중에 부담으로, 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남북 평화정착에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당시 방북길에 오르면서 북한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김정일이 특별전용기를 내줘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안전하게 날아간 뒤 귀국할 때는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다.
북한은 박 대통령을,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 할머니인 강반석에게나 붙이는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극진히 예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