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으로 신음하는 미군기지] 주한미군기지의 상징인 용산기지의 2016년 반환을 앞두고 오염 정화 문제가 최대 이슈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 한가운데는 한미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 오염 문제와 SOFA 개정 문제를 집중 취재·보도한다.[편집자 주]
반환미군기지 환경주권 포기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환경조항의 실효성(實效性)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박주선 의원(무소속)에게 제출한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기준 심층연구' 보고서에서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치유 절차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03년 5월 체결된 '반환기지 오염치유 절차서'에서 반환기지 환경오염에 대해 미국이 자신의 비용 부담으로 치유하도록 합의"했지만, "오염 치유 기준인 KISE는 지극히 미국적 제도의 일환으로, 협의의 대상자인 미국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별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반환미군기지 내 환경오염이 KISE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한국 법이 아닌) 미국의 EGS(환경관리기준)에 따라 주한 미군사령관이 결정"하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KISE에 구체적인 오염의 정의 및 범주와 오염 치유의 수준과 기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반환 미군기지 터에 환경오염이 있더라도 주한미군은 KISE가 아니면 정화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한미 SOFA 환경조항의 핵심인 KISE의 문제점을 직접 지적하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주한미군기지 환경주권 포기 논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 치유 규정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2001년에 체결된 SOFA의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다. 한미 양국 간 합의 문건에 '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알려진'(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 환경오염을 의미하는 KISE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 KISE 앞에서는 '위해성평가'도 무용지물 … MB정부의 '국내용 꼼수'국회 입법조사처는 특히 KISE에 대한 판단을 보강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간 합의로 새로 도입한 JEAP(공동환경평가절차서)에 의한 위해성평가 역시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JEAP에 전격 합의한 뒤 "SOFA 규정상 오염 치유 기준인 KISE 해당 여부 판단 보강을 위해「위해성평가」방식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환경부. 2009. 3. 19. 설명자료)
이명박 정부는 특히 "우리 측의 위해성평가 방식 도입을 통해 한∙미간 KISE 해당 여부 판단 및 치유 협의를 위한 과학적∙기술적 근거를 보강했다"고 극구 강조했다.
하지만, 입법조사처는 "(위해성평가를 통해 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위해도는 오랜 기간 후의 질병 발생 확률을 의미할 뿐 KISE(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는 아니므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미국 측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지 반환 후 평균 수명 70년, 평균 오염 노출기간 25년으로 가정했을 때 발암위해도 10^-4(10의 마이너스 4승. 1만 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확률), 비발암위해도 1을 초과하는 오염은 미군 측에서 정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KISE는 오랜 기간에 걸쳐 오염에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이 아니라 당장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을 의미하므로, 미 측의 조치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 당시 주한미군기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오염조사 방식인 것처럼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렸던 위해성평가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히려 과학적인 오염조사 방식이라던 위해성평가가 오염 원인자인 미군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발암 위험'에도 'KISE 아니다'며 정화 책임 회피한미 양국이 JEAP에 합의한 이후 부산 하야리아 기지 등 7개 미군기지가 위해성평가에 의해 반환됐고, 현재 부산 DRMO(미군폐기물처리장) 등 5개 기지에 대한 위해성평가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CBS노컷뉴스가 입수해 단독 보도한 각 기지의 위해성평가 결과 보고서들에 따르면, 위해성평가 자체가 주한미군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졸속으로 진행되고, 위해성평가 결과 자체도 심각한 축소∙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다.(2013년 9월 9일 노컷뉴스
[단독] 미군기지 '위해성 없음' 이유가 '기가 막혀')
더욱 심각한 것은, 주한미군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축소∙왜곡된 최소한의 위해성에 대해서조차 주한미군은 정화 책임을 끝까지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1월 반환된 부산 하야리아 기지의 경우 전체 면적의 불과 0.26%만 발암 위해성에 노출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는데도, 주한미군 측은 이마저도 'KISE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정화 책임을 끝까지 회피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부산시의 요청을 구실로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전제를 달아 하야리아 기지를 그대로 반환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부산시민공원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143억원의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고스란히 부담하는, '최악의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부산 DRMO에 대한 위해성평가에서도 전체 면적(3만 4,925㎡)의 10% 가까이가 발암위해도 10^-4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DRMO는 아직까지도 반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데, 주한미군 측이 부산 DRMO 역시 ‘SOFA에 규정된 KISE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정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은 자국 내 군 기지 오염은 포괄적인 규정을 적용하고 엄격하고 공개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치유하는 반면, 해외 기지의 오염은 치유를 최소화하면서 책임을 가능한 한 회피하는 입장"이라면서, "기지가 일단 반환된 후에는 치유 비용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기지 반환 후에는 오염 치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녹색법률센터 배영근 변호사는 "반환 미군기지 정화 여부를 주한미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면서, "보다 성숙한 한미 안보동맹 관계를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환경주권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SOFA 환경조항이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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