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한주간]“298”...역사를 글자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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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따라 골라 채택하면 된다는 교과서검정제도. 관점과 상식 사이에서 길을 잃다.

 


[CBS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
■ 방송 : FM 98.1 (06:10~07:00)
■ 진행 : 김윤주 앵커
■ 출연 :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자

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줍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 <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잡니다.

이정환(미디어 오늘 기자)> 안녕하세요?

김> 이번 주의 숫자는 뭔가요?

“298”...역사를 글자로 배웠습니다.

이> 298.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국사 교과서에서 발견된 오류 숫자입니다. “중대한 역사적 사실이 잘못 서술되거나 심각하게 편파적으로 해석한 대목이 간추린 것만 해도 298건이나 됐다”는 게 한국역사연구회 등 진보 성향 역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오류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식민사관에 따라 서술됐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건 교학사 교과서인데 8개 역사 교과서를 모두 수정·보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과 김구, 몇 대 몇?

김> 누가 기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되기도 하는데요. 진보 성향 학자들과 보수 성향 학자들의 견해 차이가 큰 모양이죠?

이> 특히 현대사 부분이 쟁점인데요. 이승만을 위한 교과서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5단원이 68페이지 분량인데 11페이지에 걸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승만의 이름이 42차례, 그런데 놀랍게도 백범 김구 선생님 사진은 딱 1장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5장이나 있는데 윤봉길 의사의 사진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전혀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친일파 인사들을 언급하면서 그 당시에는 마치 모든 민족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식민 통치가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등의 논조를 펼치고 있습니다.

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왜 그렇게 비중 있게 서술했을까요.

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한 교과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국민적 영웅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데요. 교과서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당시에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을 함으로써 국민들과 더욱 친밀하게 됐고,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미국의 소리’라는 방송에 출연했었죠. “일제는 전쟁에 패하고 있다. 독립을 위해 건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행적을 부각시키는 교과서는 공산주의 국가 교과서 뿐"

김> 공과 과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받죠.

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재판을 받을 때 “나는 기독교인이라 살인자를 도울 수 없다”며 통역을 거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남북 통일 정부를 세울 기회를 거부하고 남한 만의 단독 정부를 추진했고 반민 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들을 대거 중용하기도 했습니다. 4·19 혁명 때는 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에게 발포를 명령하기도 했고요. 이런 사실이 교과서에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독립운동은 이승만에 의해 다 이루어졌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이고, 착각을 유도하도록 의도적으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연세대 이준식 교수는 “이처럼 한 사람의 행적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교과서는 공산주의 국가의 교과서 말고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무조건 친일파로 매도하는 이분법적 시각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거나 독재를 부정하지 않는 시각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와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도 나올 만 한 것이죠.

김> 초대대통령인 만큼 역사적 평가가 더 많이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과 과과 균형있게 다뤄져 있지 않은 부분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애초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은데요.

이>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출발하는데요.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이 기간에 철도가 깔리고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측면에만 집중하다 보면 일본 자본의 수탈을 비판하지 않고 친일파를 협력자로 부르면서 일본군 위안부나 친일 인사들의 반민족 행위 등에 눈감게 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독재가 경제 성장을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장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했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논리인데요. 결국 이 논리의 그 근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자학사관, 식민 사관을 가르치는 한국사.
역사평가의 다양성 인정 vs. 왜곡과 비상식


김> 단순히 관점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목소리가 제법 크죠?

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시간관념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일깨워줬다는 맥락으로 읽히는데요. 마치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해서는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고 지적하면서도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윤보선도 쿠데타를 인정했고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했고 미국도 곧바로 정권을 인정했다”면서 마치 쿠데타를 일으킨 건 잘못이지만 정권의 무능에서 비롯했고 국민들도 이를 모두 받아들였던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부분에서도 시위대의 폭력 행사를 부각하면서 공수부대의 폭력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 친일파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많은데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국민 정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걸까요.

이> 교과서에 보면 “최남선은 공과 과가 모두 있는데, 공과 과 어느 쪽이 클까요”라는 수행평가 과제가 있습니다. 최남선은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변절해서 1949년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됐던 사람이죠. 누구나 그때는 친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일제가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해방을 쟁취했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모욕이라도 읽힐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경성방직이나 화신백화점 등이 일본과 경쟁해서 성공한 국내 기업인 것처럼 치켜세우고 있는데 둘 다 철저한 친일 자본입니다. 박흥식은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서 구속됐던 사람입니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이런 걸 고의로 누락하고 왜곡했을 가능성 때문에 더욱 반발이 큽니다.

김> 교학사 교과서가 자학사관으로 쓰였다는 비판도 있던데요.

이> 부끄러운 역사라고만 말하지 말고 우리가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는 건데요. 일제나 독재 시절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니냐, 자학사관을 벗어나서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교학사 교과서를 만든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일부에서는 좌편향도 우편향도 모두 안 된다, 이념으로 보지 말고 관점의 차이로 보자는 시선도 있습니다. 명백한 역사 왜곡까지 견해의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후지이 다케시 일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학사 교과서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 협력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놓고 미국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끌고 간다.”는 건데요. 실제로 이 교과서에는 통일 정부가 아니라 남한 단독 정부로 가는 게 옳았다는 입장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북한의 남침 위협 때문에 박정희 10월 유신이 필요했다는 주장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자학사관을 벗어나자고 하면서도 이런 태도가 오히려 남북 대결 구도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갇혀 우리 역사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우리 민족을 수동적 존재로 그려낸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입니다.

김> 한국판 후소샤 교과서라는 비판도 나오는데요.

이>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이 만든 교과서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일본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후소샤 교과서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조선에 국교 수립을 강요한 불평등 조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교학사 교과서는 “개혁파의 주장과 고종의 긍정적 인식으로 체결됐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에 개통된 철도는 일본으로 쌀과 면화 등을 실어나르고… 철도를 이용하여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간관념이 형성됐다.” 이게 교학사 교과서인데요. 국내 다른 교과서들은 “호남평야의 쌀과 북부지방의 물자를 수탈할 목적으로…”라고 일본이 철도를 건설한 목적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기록은 속일 수 있어도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침략했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침략 당한 역사를 부정하려는 그런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역사를 남길 것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합격률95%, 이런 교과서도 저런 교과서도 입맛 따라 골라 배우는 재미가 있다?

김> 다른 교과서들은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교과서 검정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더라고요.

이> 교과서는 국정과 검정, 인정 교과서가 있는데 역사 교과서는 검정 교과서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하면 검정 교과서로 인정받는데 검정 위원이 7명밖에 안 됩니다. 8종이나 되는 교과서 전부를 분석하는데 본 심사 기간이 일주일 밖에 안 됩니다. 합격률이 95%가 넘는다는 건 20종을 심사해서 1종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깁니다. 이런 교과서가 있으면 저런 교과서도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 교과서가 8종이나 되기 때문에 골라서 쓰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 교과서를 좌우 대립으로 보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이건 관점이나 주장의 차이, 다양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역사왜곡이기 때문에 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 발행 포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이> 왜 교학사 교과서만 문제 삼느냐, 마녀사냥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교학사 입장에서는 역사 교과서 때문에 다른 교과서까지 안 팔리게 됐다며 울상입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살해하겠다는 협박 전화를 비롯해 회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등 테러 수준의 전화가 하루에 몇 백통씩 오고 있다고 합니다. 발행 포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는데요. 200억 원에 달하던 교과서 매출이 최대 2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49종이 검정을 통과했는데 교과서 한 권에 들어가는 연구개발비가 3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 저자들과 출판 계약 때문에 출판사 마음대로 발행을 취소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념 논쟁을 떠나서 이렇게 많은 오류와 사실 왜곡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과서 발행 취소 사유가 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 주의 숫자는 298,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서 발견된 오류 숫자였습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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