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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간' 이순신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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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충무공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내년 3월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서 전시 중인 국보 '이순신 장검'. 사진=국립중앙박물관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서 전시 중인 국보 '이순신 장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15년 전 가을, 경남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터에 지어진 제승당(制勝堂)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났다. 한산도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수루에 걸린 시에는 조국을 구한 성웅(聖雄)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고뇌가 배어 있었다.
 
파란 하늘과 옥빛 바다, 겹겹이 둘러쳐진 숲은 400여년 전 어느 날 장군이 남몰래 내뱉던 번민 어린 탄식처럼 처연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순신을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1597년 9월 15일(이하 음력) 명량해전 전날 호령했던 
"必死卽生 必生卽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1594년 4월 제작한 2m 길이의 두 자루 장검에 친필로 새긴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적진을 노려보던 장군의 서슬 퍼런 안광이 떠올라 피가 끓는다. 하지만 과거 제승당에서 엿보았던 장군의 인간미에 더 끌린다. 복제한 영인본(影印本)이 아닌 진본 난중일기 일곱 권에는 인간 이순신이 투명하게 남아 있다. 전장이라 흘려쓴 초서(草書)라 더욱 애정하게 한다.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서 진시 중인 국보 난중일기 7권. 사진=국립중앙박물관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서 진시 중인 국보 난중일기 7권. 사진=국립중앙박물관
40대 후반이던 1593년 6월 12일에는 노모에게 나이 듦을 들키지 않으려 흰 머리를 뽑았다.
"아침에 흰 머리카락 10여 가닥을 뽑았다. 희어지는 것을 어찌 꺼릴까"
 
1594년 4월 21일에는 전장으로 이동하던 중 잠시 감상에 젖었지만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일행이 다 꽃비(花雨)에 젖었다"
 
역시 비가 내렸던 같은 해 5월 9일에는 고독한 지휘관으로서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했다.
"하루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정신이 침침하여 취한 듯, 꿈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억울하게 파직 당하고 백의종군을 떠나는 아들을 만나러 오던 어머니 변씨가 배에서 병사했다. 1597년 4월 19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임지로 떠나야만 했던 장군은 "가슴을 두들기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통함에 몸부림쳤다.
"천지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랴, 속히 죽느니만 못하다"
 
명량해전에서 패배한 직후 왜군은 보복을 위해 장군의 아산 본가를 급습했고 막내아들 면이 20살 나이로 전사했다. 1597년 10월 14일 소식을 들은 장군은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오랜 전쟁으로 복통 등에 시달렸고 파직 이후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괴로워했다.
"날씨가 몹시 더웠다.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져 괴로웠다"(1593년 8월 12일)
"다리가 아직도 몹시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1597년 6월 15일)
"잠이 오지 않아 인시(寅時.새벽 3~5시)까지 앉아 있었다. 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1598년 2월 13일)
 

충무공 탄신 480주년 및 광복 80조년 기념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사진=연합뉴스충무공 탄신 480주년 및 광복 80조년 기념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사진=연합뉴스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역대 최대 규모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이 열린다. 친필본 '난중일기' 등 국보 15점, 보물 43점 등 이순신 종가와 일본, 스웨덴 등 외국에서 모은 396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다음달 4일까지와 충무공 서거일인 다음달 16일은 무료 관람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대로 장군은 "인간이 시련을 견디는 방식"을 기록했다. 고단하고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 이순신'과 함께 꽃비를 맞고 고뇌와 슬픔, 고통을 나누며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용기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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