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원 달러 환율이 꺾이지 않고 있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 달러 환율은 1475.6으로 거래를 마치며 지난 4월 9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390원대 후반에서 1400원대 초반을 오르내리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7-80원이 오른 셈이다.
1470원대 환율은 지난해 12.3 내란 계엄 직후 수준으로, 이후 환율은 윤석열 탄핵 이후 1350원대까지 떨어졌으나 여름이 지나면서 1400원대로 다시 뛰어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계엄 정국이 일단락되면 환율도 떨어질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높은 환율은 수출 대기업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한 뒤 가공해 납품하거나 자체 수출하는 중소기업에게는 원가 부담이 커져 불리하다. 올해 초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1304원이니, 수출입 중소기업에게 현재의 환율은 치명적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
고환율은 생활 물가도 끌어 올린다. 휘발유 값부터 시작해 수입 육류·수입 과일·수입 생필품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게 된다.
최근 같은 고환율을 겪은 적이 딱 한번 있었다.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 때다.
그해 6월 말 888원이던 환율이 11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거치면서 12월 30일 마지막 거래일에는 무려 1600원까지 폭등했다.
그럼 최근의 환율 급등이 IMF 때처럼 한국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것인가?
환율 움직임과 밀접한 외환보유액을 보면 1997년 한국 외환보유액은 불과 20억 달러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현재는 4천억 달러가 넘는다.
달러를 벌어 들이는 무역수지도 올 들어 9월까지 505억 달러로, 연말에는 800억 달러에 이르러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연합뉴스벌어 들이는 달러가 많은데 원 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은 나가는 달러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 6월 말 기준 대외 금융 자산 및 부채 현황을 보면 대외 자산, 즉 한국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이 2.682조 원인 반면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한 대외 부채 자산 금액은 1.651조 원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것이 환율 상승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따라 200억 달러를 매년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점도 환율 상승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서학개미들의 해외 투자를 막을 수도 없고 한미 관세 협상을 뒤집을 수도 없으니 환율 상승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봐야 한다. 1460~1470원대 환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락하는 변동성은 막아야 한다.
정부는 공적 연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을 적절히 조정하고 국내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제 개편 등을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은 국내 투자를 늘리고 환율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해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정부와 대기업의 일방적 지원만 바랄 것이 아니라 환율 변동을 자체 흡수할 수 있는 혁신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환율 급등을 틈타 '원화를 모두 달러로 바꿔 한국 시장을 떠나라'고 하는 불안 조장 현상도 자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