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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 '전력 폭탄' 곧 떨어지는데…전기길은 꽉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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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AI 육성 정책이 본격화됐지만, 이를 떠받칠 전력망·전원 전략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송전망 병목, 탈원전·탈석탄 등 정책 변화로 인한 전력 공백 우려, 해외 주요국과의 대응 속도 차이 등 한국 전력 인프라에는 구조적 과제가 쌓여 있습니다. 이에 AI 시대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현주소와 해법을 연속적으로 짚습니다.

[AI 시대 오는데 전력 깜깜이 ①]
"AI 육성한다면서…전력 준비는 돼 있나"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 AI 경쟁력 불 붙었지만…기본 전력 공급 미비
전기를 가져올 길 좁아 일부러 멈추는 '출력제어' 일으켜
AI 데이터센터 지으려해도 수도권은 전력 부족, 지방은 여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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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AI·반도체 '전력 폭탄' 곧 떨어지는데…전기길은 꽉 막혔다
(계속)

정부가 AI 국가전략과 초대형 데이터센터 육성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송전망이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도권은 데이터센터 입지조차 불허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전력망이 앞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를 받쳐주지 못하면,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확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력 수요는 '폭증 예고'…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길'이 막혔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AI 경쟁력 확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한다"며 내년도 예산에 AI·R&D 등 미래성장 분야에 10조 1천억 원을 반영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이던 지난 달 31일엔 엔비디아가 국내 기업·기관에 GPU 26만 장 공급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AI 생태계 조성에 본격적인 속도가 붙었다.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으로 인한 전력 수요는 국제적으로도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작년 대비 2배 수준인 945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역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2023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전력 수요 확대에 맞서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더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배전망이 충분히 갖춰져 있느냐다. 한국 전력 구조의 특징은 전기 생산과 소비가 지역별로 불균형하게 분포돼 있다는 점이다. 충남(화력), 영남(원전), 호남(태양광·풍력) 등 지방에 발전설비가 몰려 있지만 실제 전력 수요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전기를 가져올 길'이 좁으면 전력난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송전망 확충 속도는 발전설비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년간 전력 수요가 100%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송전망은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전력을 나르는 도로는 그대로인데, 차(전력수요)만 두 배로 늘어난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같은 전력망 병목은 결국 '출력제어'를 불러왔다. 출력제어는 송전망 부족으로 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멈춰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즉,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될 경우 오히려 정전(블랙아웃)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발전을 멈추는 조치다. 기후환경에너지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육지 지역에서만 164GWh가 생산되지 못했다. 4인 가구 9만7600세대가 반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으로, 전력망이 수요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전망 계통이 더 원활했다면 공급될 수 있었던 전력이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그대로 버려진 셈이다.

전기본도 계획일 뿐…송·변전망 확충 '절반 이상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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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지난 2월 발표한 제11차 전기본(2024~2038)에 AI 수요 증가와 전기화 확대를 명시하고, 이에 맞춘 송·변전 설비 확충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속도는 더디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 11차 전기본 포함된 총 54건의 송·변전설비 건설사업 중 55%(30건)가 지난 10월 기준 지연 또는 지연이 예상되는 상태였다. 특히 전력이 충분히 생산되는 영남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전달하는 핵심 송전선로 공사(동해안~신가평·동서울 등)는 최대 8년씩 지연되는 등 단기간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송·배전망 사업 지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본래 5~10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인데다, 주민 수용성 부족, 보상 지연, 인허가·환경영향평가 절차 장기화, 부지 확보 난항 등이 겹치면서 일정 자체가 크게 늘어지는 구조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송배전 설비 건설 지연은 오랜 기간 누적된 사회적 문제"라며 "전력 설비가 주민에게 피해나 위험을 준다는 인식이 강해 반발이 크고, 그 결과 필수 인프라를 적기에 건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주민 수용성이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며 "국가 차원의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전력 부족으로 이미 '데이터센터 입지도 막혀'

이 같은 병목은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전력 공급 여력이 바닥나면서 AI 데이터센터 등 핵심 산업이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화됐다. 지난해 6월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 시행 이후 인천에 접수된 대규모 전력 사용을 신청한 데이터센터는 모두 24곳에 달하지만 전부 "인천 전력망은 더이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공급 불가'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력망 때문에 산업 입지가 막히는 사태의 시작"으로 진단했다AI 데이터센터를 기획해도 전력망이 이를 견디지 못해 좌절되는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전력난으로 입지 확보가 어려워지자 아마존웹서비스(AWS)와 SK는 상대적으로 발전소가 많아 전력 공급이 원활한 울산으로 방향을 틀어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이라고 상황이 단순한 것은 아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수도권은 전력공급 설비가 부족해 데이터센터 사업이 무산되는 상황이고, 지방은 전력은 충분해도 통신망·정주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 어려운 이중적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도 "아무리 첨단 산업을 유치하려 해도, 정주 여건과 기반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서 데이터센터가 구축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지방에서 생산한 전력을 버리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전력 인프라 구조를 혁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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