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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구두(口頭)'와 '수결(手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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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뉴진스 사태로 보는 조선의 계약

조선 임금의 수결(手決)인 어압(御押).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태조, 태종, 고종, 정조의 어압. 국사편찬위원회 제공조선 임금의 수결(手決)인 어압(御押).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태조, 태종, 고종, 정조의 어압.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1파운드의 살' 계약이 나온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무역상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 주면서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받는다는 계약을 한다. 결국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법정에서 계약대로 가슴의 살을 요구한다. 이에 판사는 살 1파운드를 가져가되 계약서에 '피'가 명시되어있지 않으므로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하고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판결한다.
 
작품은 서구 사회가 계약의 내용을 얼마나 엄격하고 강력하게 적용했는지 잘 보여준다. 서구에서 계약은 단순한 법적 문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체제와 구조, 가치관과 사고 방식 전반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 법치와 이성 등 사회를 구성하는 틀의 기초가 됐고 재산권과 거래의 안정성 보장해 시장 경제를 작동시켰다. 또 사회 계약론에 근거해 국민과 정부의 계약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1215년 국왕과 시민(귀족) 간에 맺은 최초의 계약인 '마그나 카르타'는 왕을 포함한 모든 개인에 대한 법치주의 원칙을 규정했다. 이는 수세기 뒤인 1787년 미국 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사회 계약론을 실제로 적용해 국민이 정부에 통치 권한을 위임하되 정부를 교체할 권리도 있다는 국민 주권의 원칙을 명시한 최초의 성문 헌법이다.
 
우리 역시 계약을 중시한 것은 서구 못지않았다.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연대 문기(連代文記·부동산 등기부등본), 화회 문기(和會文記.상속), 분급 문기(分給文記·증여) 등 재산의 거래 및 권리 관계를 증명하는 다양한 계약 문서가 이를 보여준다. 문서에는 계약 주체의 개성까지 담은 다채로운 사인(Sign)이 남아 있어 흥미롭다.  
 
1597년 12월14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의병장을 임명하고 수결(手決)한 서첩. 전라남도 제공1597년 12월14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의병장을 임명하고 수결(手決)한 서첩. 전라남도 제공
계약은 사인, 즉 자필 서명으로 체결된다. 서구의 고대와 중세에는 계약서에 인장이나 표식이 사용됐지만 1677년 영국의 사기 방지법(Statute of Frauds Act) 제정 이후 서명이 보편화됐다. 우리의 서명 문화는 서구보다 역사가 깊다. 우리는 과거 도장을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장은 '어보(御寶)', '국인(國印)', '관인(官印)' 등으로 왕의 교지나 외교 문서, 관청의 행정 문서 등 공식 문서에 사용됐다. 개인은 계약이나 권리 관계 증명 등을 위해 서명을 했고, 도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됐다. 서명이 도장을 다시 대체하게 된 것은 2012년 12월 '본인서명사실 확인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이다.
 
조선은 서명을 '손으로 계약을 결정한다'고 해서 '수결(手決)'이라 불렸다. 초서(草書)로 성명을 쓰는 '서압(書押)', 꽃봉오리 모양으로 멋을 낸 '화압(花押)' 같은 서명은 중국, 일본에서도 썼지만 수결은 조선만의 독특한 서명 양식이었다. '一'자를 길게 긋고 위아래에 점이나 선,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일심(一心)'을 뜻하도록 서명하는 '일심결'(一心決) 형태였다. 임금도 수결을 사용했는데 '어압(御押)'이라고 했다.

주로 노비 등이 손가락 마디 크기로 그린 '수촌(手寸)'이나 손바닥을 문서에 대고 그린 수장(手掌)도 계약시 법적 효력을 가졌다. 많은 행정 문서를 한꺼번에 결재하기 위해 나무에 수결을 새겨서 도장처럼 찍는 각압(刻押)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서명에서 보듯 우리 선조들은 계약을 중시하고 준수함으로써 개인 권리를 보장하고자 애써왔다.

양자 삼는 것을 허가해달라는 청원서. 2004년 국민대박물관 '조선의 사인전' 제공양자 삼는 것을 허가해달라는 청원서. 2004년 국민대박물관 '조선의 사인전' 제공 
현재 한국 대중음산업계는 계약을 둘러싼 한 분쟁으로 어지럽다. 하이브 및 소속 레이블 어도어·쏘스뮤직·빌리프랩,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및 어도어의 걸그룹 뉴진스 간 소송이다. 하이브 및 소속 레이블과 민 전 대표는 주주계약, 손해배상 등 소송을 벌이고 있다.
 
뉴진스도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하면서 소속사인 어도어가 소송을 걸었는데 최근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속계약이 유지됐다. 뉴진스가 패소한 이유는 간단하다. 계약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엄마'와 같은 존재인 민 전 대표를 어도어가 자신들과 상의도 없이 부당하게 내쫓았다며 신의성실 의무 위반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속계약서에 민희진이 반드시 대표이사로서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계약서는 적시된 문자가 아닌 심증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뉴진스처럼 민 전 대표도 최근 계약을 지나치게 유연하게 해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1일 민 전 대표는 협력사였던 돌고래유괴단에게 어도어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민 전 대표는 돌고래유괴단이 뉴진스 관련 영상을 무단으로 유튜브에 올렸다는 어도어 주장에 대해 "'구두'로 허용했으며 이는 업계 통상"이라고 반박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왼쪽 하단)와 뉴진스. 연합뉴스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왼쪽 하단)와 뉴진스. 연합뉴스
민 전 대표의 말대로 계약서 없이 구두로 한 계약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해 법정으로 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녹취나 문자, 메시지 등 입증할 수단이 없다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뉴진스 재판대로라면 민 전 대표의 진술이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법정은 주장이 아니라 증명의 자리이다. 계약과 수결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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