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 등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지켜야 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법의 역할이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은 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윤석열의 12·3 내란에 참여하지 않은 공직자와 군인들은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형법 제87조가 무서워서 불법계엄을 따르지 않을 것일까? 실패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을 것이나 대부분은 상식적인 판단을 따랐을 것이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제77조를 위반한 것이 명백한 불법계엄이었기 때문에 "문을 부숴서라도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명령을 거부했을 것이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류영주 기자
당연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는 박성재 전 법무장관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법원 때문이다. 법원은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등을 기각 사유를 들었고 여기서 '다툼의 여지'란 12·3 불법계엄에 관한 위법성의 인식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전 장관은 12·3 불법계엄이 위법인지 아닌지 잘 몰랐을 수도 있으니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히 방어 기회를 주자는 취지이다. 이처럼 관대한 법원이라니.
박 전 장관은 법으로 평생을 먹고 산 공직자 출신이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고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로 입직해 윤석열이 법무장관으로 임명할 때까지 30년 넘는 시간 동안 검찰총장 빼고 거의 모든 검찰 요직을 거친 법 전문가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 직후 박 전 장관이 소집한 법무부 실국장회의에서 "계엄 관련 지시나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다"며 사표를 던진 류혁 전 감찰관.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 속에 "국회의사당의 주인은 국회의원인데 무슨 X소리냐"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사태 악화를 우려해 국회로 이동 중이던 후속부대에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고 기다리라고 지시한 영관급 장교들. 무엇보다 그날 여의도로 모여 국회를 지켰거나 뜬 눈으로 밤을 새며 계엄 해제를 기다렸던 시민들. 그런데 이 와중에 박 전 장관만 불법 계엄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전직 법무장관이나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 끄덕이는 법원이나.
황교안 전 총리. 황진환 기자
법원의 관대한 손길은 황교안 전 총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황 전 총리는 대통령 빼고는 안 해 본 관직이 없는 공안 전문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대표 시절에는 장외투쟁을 이끌다 21대 총선에서 103석의 참패를 당하며 당을 궤멸 사태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멀쩡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정선거를 귀신같이 찾아내더니 급기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를 체포하라고 주장했다. 내란특검은 이같은 황 전 총리의 행위를 내란선동이라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객관적인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증거가 상당 부분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의 필요성이 부족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염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해서도 수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관대한 판단을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황 전 총리의 상태가 심각하니 법의 차가운 단죄보다는 병원의 세심한 손길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거부하고 자택에서 문 걸어 잠그고 농성을 하는 전직 법무장관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법도 때로는 따뜻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이렇게 관대하고 자비로운 법의 손길이 1심 선고를 앞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그 졸개들에게 미칠까봐 무척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