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편의점 진열대에 비치된 월경용품. 김수정 기자"한달에 2만 원 정도는 쓰는 것 같아요.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안 살 수가 없는 게 생리대잖아요. 솔직히 부담이 많이 돼요"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학생 정예린(22)씨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상황에서 점점 오르는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씨는 "잘못 쓰면 피부염 같은 질환이 생길까봐 유기농, 순면이나 브랜드 있는 제품들을 사는 편인데, 그런 것들은 더 비싸다"며 "급하게 생리가 터졌을 때 편의점에서 사는 것까지 합치면 한 달 지출이 꽤 크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비싸도 살 수밖에 없는 생리대는 생활 필수재다. 그러나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의 '생리 빈곤' 문제도 여전하다. 생리대는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비싸면 개당 900원까지…독과점 구조와 '안전 프리미엄'
통계청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생리대 소비자물가지수는 올해 3분기 기준 118.48로 2020년(기준시점·100)보다 약 18.4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물가 총지수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생리대 소비자물가지수는 120.91로 총지수 114.18보다 높은 수치다.
국내 생리대는 개당 100원에서 900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 생리대는 4개입에 3900원 수준으로, 할인 행사를 고려해도 개당 가격은 약 650원에 달한다. 하루에 평균 7~8개 정도의 생리대를 쓴다고 가정하면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여기에 소형·중형·대형·오버나이트, 입는 생리대, 탐폰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용품을 써야 하는 것도 부담을 키운다. 가임기 여성이 달에 한 번씩 약 5일 동안 월경을 하고 하루 평균 8개의 생리대를 쓴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약 40개, 1년에 약 480개의 생리대를 사용하게 된다. 평균적으로 약 40년 동안 월경을 한다고 보면 평생 약 1만92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는 셈이다.
여성환경연대가 2023년 5월 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발표한 '일회용 생리대 가격·광고 모니터링'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가격은 해외보다 약 39%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생리대 513종과 11개국(일본·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싱가포르) 생리대 69종 가격을 비교 조사한 결과다.
여성환경연대가 2023년 5월 국내 생리대와 국외 생리대 가격을 비교한 자료. 여성환경연대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 생리대가 비싼 이유로는 먼저 독과점적 시장 구조가 꼽힌다. 여성환경연대가 2023년 조사했던 자료에 따르면,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한국P&G 등 3~4개 업체가 국내 생리대 시장의 약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 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은 필수재는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소비자들이 다른 제품을 구매하기 쉽지 않다.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팀장은 "2년 전 생리대의 높은 가격 문제를 지적했을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독과점적 시장 구조는 생리대 가격을 왜곡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안전 프리미엄' 역시 가격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 이후 유기농·친환경·순면 등 각종 인증 마크를 내세운 제품이 늘었고, 이 과정에서 가격도 상승했다는 것이다. 여성환경연대 역시 보고서에서 한국 생리대가 계속 비싸지는 현상에 대해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뿐 아니라 인증마크 획득 비용, 독과점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평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국산 생리대가 다른 나라보다 가격이 39% 비싸다고 한다"며 생리대 가격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 제조·유통 단계에서의 부가세 등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자, 이 대통령은 "국내 기업들이 일종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현진 팀장은 "대통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지시해 생리대 가격 이슈가 다시 공론장으로 떠오른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조사로 원재료 상등 등 다른 구조적 원인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 면밀히 드러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생리빈곤' 문제는 2016년 '깔창 생리대'를 사용한다는 한 청소년의 경험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선별 지원의 사각지대…"생리대는 생필품, 인식부터"
현재 정부의 대표적인 지원책은 성평등부에서 시행 중인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바우처 지원 사업'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법정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 가구의 9~24세 여성·청소년이 대상이다. 관할 지자체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복지로 웹사이트 등을 통해 신청하면 국민행복카드로 월 1만4천 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3월 낸 '서울시 생리대 지원사업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서울특별시 예산은 2021년 약 4천440만 원에서 2025년 약 8천710만 원으로 약 18% 정도 증가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전반적으로 예산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이는 지원 대상의 연령 확대와 지원 단가가 오른 결과"라며 "여전히 민간에서 생리대 기부나 후원 활동이 지속되고 있어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자치구별로 사업 명칭이 제각각인 점도 문제다. 보고서는 사업명에 '생리대' 또는 '생리용품'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곳도 있으나 '보건위생물품 지원사업', '청소년 건강지원 사업'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곳도 있어 생리대 지원사업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고 지적했다. 또 생리용품 지원 관련 조례 제정된 자치구를 보면, 지원 연령이 달라 일부 자치구에서는 11~18세로 지원 대상 연령 범위가 더 좁다.

'선별 지원' 방식이기에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점도 문제다. 여성환경연대 서정희 활동가는 "한부모가정·차상위계층·기초생활수급자 등 3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여성·청소년만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청소년마다 월경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은 훨씬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폭력 때문에 탈가정한 청소년이 가구소득이 잡히지 않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고, 소득 수준은 차상위계층이 아니지만 가계 빚이 너무 많아 부모님이 월경용품을 사주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며 "낙인 효과 때문에 신청을 꺼리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여자 화장실에 비치돼있는 '비상용 생리대 자판기'. 사진처럼 안내데스크에서 코인을 받아 자판기에 넣으면 생리대가 나온다. 김수정 기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보편 지원' 사례로는 서울시가 운영하던 '공공생리대' 지원 사업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8년 시범 사업 도입을 시작으로 약 6년간 사업을 진행해 왔다.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 공공기관 여자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자판기'를 비치해 누구나 생리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2023년 기준 서울 내 304개소가 사업에 참여했고, 2019년에는 해당 사업으로 UN 공공행정상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지난해부터 예산이 전액 삭감되며 중단됐다. 현재는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했던 일부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비상용 생리대를 마련하면서 운영을 이어가고 있데, 서울시 차원의 관리나 모니터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중단 배경에 대해 "비치함 설치에는 예산이 많이 들었지만, 이후 생리대 구입 비용은 연간 100만 원이 넘는 곳이 8군데 정도에 불과할 만큼 크지 않았다"며 "각 기관이 자체 예산으로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해 사업을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기 목표였던 여성 건강권 인식 제고는 6년간 사업을 통해 일정 부분 달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여자 화장실에 붙어있는 '공공생리대' 포스터. 김수정 기자
이에 대해 서정희 활동가는 "국가가 체계적으로 보편 지급하는 정책이 중요한 이유가 예산이 부족할 때 삭감 우선순위가 되는 항목이 여성용품이기 때문"이라며 "공공생리대 지원 사업 중단은 사실상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펜실비니아주는 공공생리대를 공원에도 비치해 두는데, 야외 동을 하는 여성이 월경 때문에 활동이 중단되는 경우를 고려한 것"이라며 "월경용품이 여성의 건강권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연결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결국 '보편적 월경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 활동가는 "월경용품이 생필품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며 "안전한 생리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