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막을 올렸다. 한·미·중·일을 비롯한 21개 회원국 정상과 고위 관료, 경제계 거물들로 천년 고도(古都) 경주가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한미중일 정상들간 회담은 물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방탄소년단 RM 등 경제·문화계 인사들이 연사로 나선 APEC CEO 서밋에도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CEO 서밋 연설에 이어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장소는 국립경주박물관이었는데, 이곳을 환하게 밝힌 것은 천년 왕국 신라의 금관 6개였다. 한국에서 20년 만에 열린 APEC을 기념하고자 1921년 첫 발굴 이후 10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진배 장인이 특별 제작한 천마총 금관 복제품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아름답다. 당장 써 보고 싶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신라 금관이 1500년 만에 전 세계에 그 아름다운 자태와 황홀한 광채를 드러냈다.
신라 금관은 "대한민국 유물의 아이돌"을 넘어서는 존재이다. 금관은 고대 서라벌(신라)이 국제 무역 국가이었음을 실증하는 증거품이다.
신라 금관은 4~6세기 마립간(麻立干)들이 썼다. 지증 마립간이 국호를 '신라(新羅)'로 정하고 중국식 칭호인 '왕(王)'을 쓰면서 금관은 중국식 관모로 대체되어 갔다. 금관은 중국과는 궤를 달리하는 유라시아 북방 문화권의 색채를 보여준다. 스키타이-시베리아의 황금 문화와 신라 금관은 맥을 같이 하는 친족과도 같다.
27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언론 공개회. 일반 무료 관람은 APEC 정상회의가 끝나는 11월 2일부터 12월 14일까지. 연합뉴스신라 금관의 대표적인 특징인 출(出)자 모양의 나뭇가지, 사슴뿔 형태의 세움 장식, 곡옥 장식 등은 북방 문화권에서 흔히 발견되는 요소이다. 전면의 나뭇가지는 북방 문화권에서 신성시하는 생명 또는 우주의 나무를 상징한다. 사슴은 신(神)의 의지를 전달하거나 영혼을 인도하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북방의 샤먼(무당)들은 사슴뿔 장식의 관을 썼다. 이처럼 신라 금관은 하늘과 소통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마립간의 제사장적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금관의 곡옥(曲玉,굽은 옥)은 태아나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과 닮아 생명, 탄생, 재생을 상징한다. 또 곰 이빨 모양과 비슷해 강력한 왕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곡옥의 소재인 비취색 옥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주변이나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이 원산지이다. 여기에 황남대총 등 신라 고분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된 황금 보검, 유리 용기 및 구슬 등은 로마나 사산조 페르시아 등 서방에서 넘어온 것으로 분석된다.
아득한 고대에 페르시아의 처용은 대초원을 가로지르는 스텝 실크로드를 말 달려 한반도 남단 서라벌에 도착한 뒤 달 밝은 밤을 즐겼을까? 금관은 신라가 중앙아시아, 서방과 활발하게 교역하고 교류해 왔음을 찬란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갈등과 분열,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이즈음, 동서 교류와 문화 융합의 결정물인 신라 금관이 던지는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 경주 APEC이 지구촌 화합과 공존의 전기(轉機)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