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기. 연합뉴스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취업 사기와 납치·감금·고문 등 범죄 피해가 잇따르면서, 캄보디아가 어쩌다 온라인 범죄의 온상이 됐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범죄가 단순한 조직범죄가 아니라, 중국 자본이 유입된 온라인 도박 산업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사기 산업'으로 진화하면서 확산됐다고 지적한다.
캄보디아 정부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실태를 알고도 실질적인 조치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연간 125억 달러 규모의 '스캠 경제'가 국가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팽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지노에서 사기 범죄단지로…코로나가 만든 전환점
14일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난 6월 발표한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1990~2000년대 중국 본토에서 도박이 불법화되자 중국 범죄조직들이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지에 카지노와 호텔을 집중적으로 건설하며 온·오프라인 도박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고 관광이 중단되자 수익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다른 수익 구조가 필요했던 범죄조직들은 기존의 카지노·호텔 인프라를 활용해 온라인 사기로 범죄 방식을 전환했다. 폐허가 된 리조트와 카지노는 곧 '사기 범죄단지'로 변모했다.
이보다 앞선 2019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캄보디아가 온라인 도박을 전면 금지한 것도 이러한 전환의 촉매가 됐다. 이미 부동산과 카지노를 장악한 중국계 범죄 네트워크는 도박장을 폐쇄하는 대신 이를 '온라인 사기 공장'으로 재가동하며 오히려 더 정교한 구조를 갖췄다.
팬데믹 종료 후 이동이 재개되자, 범죄조직들은 '고수익 일자리'를 내세워 사람들을 유인하고 심지어 인신매매를 통해 강제노동에 투입할 인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2년을 전후로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가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의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다.
이후 남부 시아누크빌(Sihanoukville)을 중심으로 사기 범죄단지가 성행하게 됐고, 각 단지는 철조망·감시탑·경비초소를 갖춘 사실상의 감금시설로 변했다.
캄보디아 검찰에 기소된 한국인 대학생 살해 혐의 중국인 3명. 연합뉴스 '정부의 방기'가 키운 구조적 범죄 생태계
캄보디아에서 이 같은 범죄단지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핵심 원인은 정부의 방기와 묵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앰네스티는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정부가 사기 범죄단지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구조 작전'으로 포장된 형식적인 단속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역에서 확인된 53곳의 범죄단지 중 최소 20곳에는 현지 경찰이나 군이 개입했지만, 이후에도 감금과 폭행 등 인권침해가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완전히 폐쇄된 곳은 단 2곳뿐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경찰은 피해자만 인계받은 뒤 내부 수색이나 기소 없이 범죄단지가 그대로 운영된 것으로 보고됐다.
이들이 추가로 확인한 45개의 '범죄단지 의심 시설' 역시 높은 담장, 감시카메라, 다중 보안층 등 기존의 범죄단지와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정부는 해당 목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추가 조사 계획도 밝히지 않았다.
또한 국가인신매매대책위원회(NCCT)는 앰네스티가 지난 5월 공식 통보한 45곳의 의심 시설과 관련해 "어떠한 후속 조사나 수사 계획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명규 캄보디아 한인회장은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캄보디아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현지 경찰이) 중간중간 단속도 하고 신고도 들어가고 하고 있다"며 "다만 그 부패된 인원들과 정부 인원들과의 연계점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정부가 (범죄단지를) 파악하고 잡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범죄)단지들이 많이 점조직처럼 흩어져서 발생하는 경우도 더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돈이 되는 범죄경제'…스캠 산업 GDP 절반 수준
연합뉴스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사이버 범죄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범죄 수익 규모는 이미 주요 산업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올해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동남아의 사이버 범죄 수익이 연간 274억~365억 달러(약 39조~52조4천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역 법집행기관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수치다.
또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캄보디아의 사이버 사기 산업 규모가 연간 약 125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는 공식 GDP(약 280억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스캠 산업이 캄보디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느슨한 금융감독 아래 이 불법 수익은 중국·홍콩·태국 등지로 세탁된 뒤 다시 캄보디아의 부동산과 관료 네트워크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부와 일부 엘리트 세력이 범죄경제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