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거악(巨惡)을 잡으려다 거악의 상징이 된 검찰청이 내년 10월 2일 문을 닫고 '공소청'으로 다시 태어난다. 공소제기와 유지라는 검사 본연의 업무에 가장 충실한 기관을 만들겠다는 것 외에 공소청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분명히 정해지지 않았다.
효과적인 공소제기와 유지를 위해 검사의 업무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지를 두고 남은 1년간 형사사법시스템에 속한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하다. 이번에야말로 수사기관을 실효적으로 견제하고, 기소권을 남용하지 않으면서도 범죄로부터 국민을 적시에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검찰개혁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년 10월 2일 공소청 출범…보완수사권 '최대 쟁점'
공소청이 어떤 기관이 되느냐를 두고 가장 치열한 쟁점은 '보완수사권'이다. 경찰 등 1차 수사기관의 수사에 대해 공소청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지,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는지, 모두 불가능케 하고 오로지 기소 여부만 판단하게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검찰청 폐지를 주도한 여권 강경파와 일부 법률가들은 공소청 검사에게 '직접 보완수사권'을 주는 데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다. 애초 검찰개혁의 목표는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검찰의 자의적인 수사-기소를 막으려는 것인데, 여전히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둬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직접수사 가능 범위를 크게 축소했지만,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시행령 확대해석을 통해 직접수사 범위를 다시 원상복구시킨 점이 일종의 트라우마다.
다만 1차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를 위해 '보완수사요구권'을 두는 데까진 검찰개혁 강경파들 사이에서도 동의하는 여론이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에서 검찰 직접수사의 대표적 피해자로 꼽히는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청 폐지는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라면서도 "검사의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은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 '직접 보완수사권'은 예외적 조건 하에서만 인정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를 포함한 법조계 다수 여론은 검찰청 폐지 이후 1차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더 크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협회원 238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8.1%가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요구권)이나 기소 전 조사권을 줘야한다고 답했다. 특히 44.6%는 보완수사요구권은 물론 직접 보완수사권도 모두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경찰 송치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들은 실무상 직접 보완수사가 불가능할 때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보완수사요구권만으론 대응할 수 없는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제1부 검사는 최근 SNS에 '당장 대안(입법으로 해결해야만 함)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라며 아래 예시를 들기도 했다.
▶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불가능할 때 대안입법이 필요한 사례 |
1. 송치된 구속 사건: 구속기간의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채로 보완수사 필요성이 있을 때. (구속 피의자를 석방하고 보완수사요구를 통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하게 할 경우 석방된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피의자가 도주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
2. (경찰 신청이 아닌) 검사가 체포영장 내지 구속영장으로 지명수배한 사건: 피의자가 발견되었는데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다면 피의자를 놓아주어야 하는 상황. (경찰 신청이 아닌 검사가 직접 청구한 영장에는 인치·구금 장소에 해당 검찰청, 교도소, 구치소가 기재되고 체포지 인근 경찰서는 통상 관할이 없어 구금 장소로 기재하지 않음. 현행 법제상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할 수 없음.)
3.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사건: 경찰이 불송치 했으나 이의신청으로 송치된 사건에 대해 검사가 불기소처분한 경우, 고소인의 항고가 인용되면 재기수사를 해야 하는데 이때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할 근거 조항이 없음. (현재는 원처분 검찰청의 다른 검사에게 재기수사를 명하거나 고검에서 직접 재기수사 함.)
4.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보완수사 필요성이 있는데 보완수사요구를 해 다시 경찰로 넘어가게 되면 공소시효가 도과될 우려가 있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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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완수사권을 남용해 검찰이 자기 권한을 강화한다는 우려는 적어도 이 정권 내에선 일어날 가능성 없는 일 아니냐"며 "다시 말해, 정권이 바뀐 후 검찰의 태세전환을 우려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패배주의적인 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는 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공리주의적인 사고를 통해 설계해야 한다"며 "보완수사권을 폐지했을 때 일반 국민이 받을 이익과 불편을 계산해 압도적으로 이익이 많은 쪽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부작용이 예상된다면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지 제도 자체를 폐지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개시-종결' 견제해야…전건송치 부활 논의
보완수사권과 함께 경찰 수사 사건을 공소청에 전건 송치하도록 할지도 주요 논의 사안이다. 지난 수사권조정 과정에서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주어지면서, 무혐의 처분한 사건은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종결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의신청 사각지대에 놓인 일부 고발사건은 1차 수사기관인 경찰 단계에서 암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실제 사례도 속출했다.
▶ 최근 보도 등으로 알려진 경찰 수사종결 관련 주요 부작용 사례 |
-현직 경찰이 사기 사건 피의자에게 2억원대 금품을 받고 사건기록을 조작하거나 태업하는 식으로 불송치 결정해 암장하고, 일부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실이 적발됐다. 해당 경찰은 최근 구속기소됐다.
-A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적 장애인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후 자신의 친구 B를 불렀고 B도 피해자를 성폭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A의 경우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보고 불송치 종결했고, B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B에 대한 사건기록만 받아볼 수 있어 애초 원인이 된 A의 범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C사립학교 학부모들은 학교 이사장의 업무상 횡령 정황을 파악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1년 8개월 끝에 돌아온 결론은 '각하'로 인한 불송치였다. 횡령의 피해자가 학교이기 때문에 고소인이 아닌 고발인 신분이었던 학부모들은 불송치 결정에 이의제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서울 소재 검찰청 형사부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배임이나 횡령처럼 회사가 피해자인 사건이나 피해자가 노약자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는 대부분 제3자의 고발로 범죄가 인지되는데, 고소 사건과 이의신청 절차에 차이가 있다보니 경찰 단계에서 묻히는 경우가 있다"며 "경찰이 수사를 안하고 사건을 종결해도 검사가 인지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검찰개혁 강경론자들은 현재도 경찰 불송치 사건에 대해 검사가 90일간 검토 후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 견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검사들은 송치 사건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불송치 사건을 유심히 볼 구조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소재 검찰청의 한 수사관은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견제도 가능한데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로 그런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며 "검찰에 송치되지 않은 사건에 검사가 책임지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직접 보완수사하지 않고 요구만 해 경찰에 보낸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 훈련된 검사·수사관들의 책임을 '가볍게' 하려 하나"라고 말했다.
공소청은 검찰청보다 기소권 자제력을 갖출 수 있을까
연합뉴스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 등 1차 수사기관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기소권을 독점한 공소청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 6월 발의된 공소청법안에 따르면 검찰청은 현재 대검-고검-지검·지청 3단계 구조이나 공소청은 공소청-지역공소청·지청 2단계로 구조를 바꿔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이 사라진다. 이들 기관은 항고·재항고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검찰의 기소권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현재로선 해당 역할들을 공소청에서 어떻게 이어갈지 명확하지 않다.
특히 공소청법안상 재항고 제도는 아예 없는 상태다. 해당 법안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는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지역공소청에 항고할 수 있고, 지역공소청은 항고 이유가 인정될 경우 지역공소청 또는 지청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직접 경정할 수 있다며 항고 제도만 반영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공소청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고소인이나 고발인 입장에서는 현재의 절차에 비해 검사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가 된다"며 "사건관계인의 권리구제 보장 측면에서도 공소청 조직체계 구조의 적절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공소청법안에 반영된 항고의 경우에도 아예 다른 기관인 고검이 항고 사건을 맡는 것이 아니라 같은 관할 공소청 내에서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되는 구조다. 같은 청 내에서 적절한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는지는 물론 보완수사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항고 제도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 공소청법안은 기소 및 불기소, 영장청구 등에 관한 적정성을 심의하기 위해 공소청과 지역 공소청에 공소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현행 수사심의위원회처럼 일부 주요 사건에 한해 심의하고 검사는 결과에 기속되지 않는 권고 기능을 하는 수준으로 운영할지, 해외의 대배심 제도처럼 사실상 기소권 독점을 깨는 수준의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확실치 않다. 미국 대배심 제도의 경우 사건 관계인을 소환해 신문하고 자료제출을 강제하는 등 사실상 수사기능도 갖추고 있다.
지역법원 형사합의부의 한 부장판사는 "환부를 아예 도려내는 대수술을 한 셈이니 그만큼 봉합과 치료는 더 어렵겠지만 근본적인 개선도 가능한 상황"이라며 "검찰개혁에 대한 정부·여당의 진정성은 앞으로 1년간 그들이 공소청을 어떤 기관으로 만드느냐를 통해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