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폭군의 셰프'에서 비밀이 많은 광대 공길 역을 연기한 배우 이주안. tvN 제공전작 '환상연가'가 사극이어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왠지 사극 하나 더 할 것 같은데?' 하는 바람이자 감이 왔다. 그 기세로 머리를 기르던 중, '환상연가' 종영 7개월 만에 오디션이 찾아왔다. 지난달 28일 17.1%(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로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다.
비밀스러운 광대 공길과, 극 중 왕 이헌(이채민)을 가까이에서 지키는 충직한 호위무사 수혁(박영운). 두 역할이 빈 상태로 오디션에 임했다. 대본은 둘 다 외워갔지만 "더 매력적이고 욕심난" 공길 역할에 집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통했는지" 최종 오디션은 공길로 봤고 "운 좋게" 붙었다.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폭군의 셰프' 합류 일화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안은 샤워하러 들어가기 직전 합격 전화를 받았는데 "(샤워실에서) 30분 동안 물을 맞으면서 꺼이꺼이 울었다"라고 털어놨다. 기뻐서 운 것도 있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한 보람을 느껴서 더 눈물이 났다. 이주안은 "1차 때부터 오디션 당일까지 하루에 10시간씩 대본을 봤고, 2차 때는 그 이상으로 준비했다. 전화받고는 기뻤지만 끊는 순간 그동안 했던 노력들이 생각났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라고 전했다.
"대학 붙었을 때도 울진 않았다, 소리를 질렀지"라는 이주안은 "이렇게 큰 오디션을 뚫어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됐는데, 데뷔 8년 차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입시까지 합치면 10년이고. 노력한 게 먹힌 건가 하고 생각했다"라고 부연했다.
오디션 때는 각 역할 대사 일부를 받아 연기했다. 후반부를 공길이 이끌어간다는 설명을 들어서 더 신중하게 임했다. 1, 2차 합쳐 3~4시간을 봤다. 자유연기 없이 이미 나온 대본을 가지고만 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배우 이주안. YY엔터테인먼트 제공
공길은 3화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낸 채로 등장한다. 옥에 갇혀 있었던 연지영(임윤아)과 서길금(윤서아)을 탈출시켜 주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 함정에 빠뜨린다. 춤출 때 쓰고 있던 가면을 벗자, 수려한 외모에 단번에 서길금이 반하는 장면도 나온다.
"진짜 부담이 많이 됐던" 장면이다. '폭군의 셰프'의 공길로서는 "세상에 처음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공길이 너무 익숙한 상황, "어정쩡하면 '왕의 남자' 공길에게 눌리겠다" 싶었다. 수염도 있고, 좀 더 마초적인 이미지를 강조해 이주안만의 공길을 만들었다. "정말 긴장 많이 한 장면"인데 다행히 "정말 예쁘게 나왔다"라고 그는 돌아봤다.
발성 하나만으로 '나는 광대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판소리도 따로 배웠다. 이주안은 "판소리가 무형문화재다. 그 안에서 쓰는 말이 실제 조선에서 쓰는 말이지 않을까 했다. 사극을 보며 따라 하는 것보다 판소리 말투를 배우는 게 정말 사극 말투겠다 싶었다. 또, 안에서 운율이 생기다 보니까 좀 더 광대스럽게 나왔다"라고 말했다. 7화 중 신수혁과 아웅다웅하는 장면에서 "떼르르르르" 한 대사도 판소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술과 기예에도 뛰어난 공길을 잘 표현하고 싶어 다양하게 배우러 다녔다. 손동작 하나하나도 신경 썼다. "광대의 손짓이라면 하나하나 예쁘게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레를 배웠고, 몸 쓰는 기술을 익히고자 아크로바틱 체육관도 등록해 다녔다.
이주안은 공길 역할을 위해 아크로바틱, 발레, 판소리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YY엔터테인먼트 제공이주안은 '폭군의 셰프'를 찍을 때 거의 대역을 쓰지 않았다. 그는 "초반에는 제가 얼마나 액션을 할(수 있을)지 모르니까 대역을 썼는데, 저는 제가 할 줄 아는 동작 나오면 괜히 옆에서 연습했다. (그걸 보고) 액션 감독님이 '너 그거 할 줄 알아?' 하면 제가 하고 이런 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누이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했던 공길은 숙원 강목주(강한나)의 심복 같은 감찰상궁 추월(김채현)을 만나 진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격렬한 사투를 벌인다. 공길의 서사에서도, 작품 자체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추월 역 김채현과 따로 연습했다.
"진짜 오래 찍었거든요. 그래서 예쁘게 멋있게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선배님이 에너지가 좋으세요. 그 에너지를 받았고, (저는 그) 색깔을 맞춰가야 하니까 서로 에너지가 점점 상승하면서… 무엇보다 선배님이나 저나 못해서 NG 나면 처음부터 해야 해서 '그래 오늘 한번 죽어보자' 하고 임했죠. 한참 선배님이시지만 액션에 관해서는 제가 몸을 잘 쓰니까 믿고 맡겨주셨어요."추월과 맞붙는 신은 '폭군의 셰프'에서 1:1로 나온 액션 신 중 가장 긴 분량이었다. 정확히 몇 시간을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길게 찍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밤 신이라서 해 진 상태에서 시작"해, "해 뜰 때까지" 찍었다.
극 중 공길과 추월이 맞붙는 장면은 1:1 대결 중에서는 가장 긴 분량의 액션 신이었다.'폭군의 셰프' 캡처 이어 "그러다 보니 한 번에 끝까지 다 갈 수 없다. 액션을 중간중간 끊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감정선이 끊길 수밖에 없다. 컷하고 구도 바꾸는 동안 (계속) 감정을 잡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근데 사실 몸이 지치니까 액션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엔 그게 서러워서 나오더라. 누이에 대한 분노도 분노인데, '아, 집에 좀 가자!' 하는 마음으로 찍었다"라고 웃었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극 중 '공길'이란 인물의 마음가짐도 다잡았다. 이주안은 "거칠 게 없는 광대가 그 놀이판에서 공중제비를 넘는데 그걸 평상시에 연습했을 것 아닌가. 탈춤도 추고 재담 소리를 하려고도 연습했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했고, 공길로서는 '복수심'을 가지고 살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평소 발레, 아크로바틱, 판소리 등으로 몸짓이나 말투를 '붙이고' 지냈고,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아서" 연기할 때도 덕을 봤다. 다만 이주안은 "쓸데없는 행동에 힘을 좀 안 쓰고 체력 분배를 해야 하는데 감정 신을 할 때는 조금 그게 안 돼서 후반부에 힘들지 않았나"라고 돌아봤다.
인물 소개에서부터 "비밀이 많은 이헌의 광대"라고 나온 공길은 극 중후반부에서도 이른바 '누구 편'에 설 것인지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다. 이에 이주안은 "저는 왕(이헌)의 편이 아니다. 제산대군(최귀화) 쪽 세력이 있을 거고, 왕(이헌) 쪽 세력이 있다면, 저는 '독립적인'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주안은 공길이 이헌의 편이었다기보다는 누이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영을 도운 것이라고 바라봤다. tvN 제공"왕은 (생모) 폐비 연씨(이은재)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살고, 저 또한 누이(죽음)에 관한 복수심을 가지고 사는 한 독립적인 세력이죠. 근데 왕을 도운 건 아니에요. 마지막까지 보면 결국에 이헌 편이었다고 하는데, 저는 지영을 도운 거고요. 지영이 나의 누이처럼 죽음을 맞지 않게요. 왜냐하면 (지영의) 죽음을 막음으로써 내 누이가 죽었던 그런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배후가 누군지 알았으니까 그 사람(강목주)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죽지 않게 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던 거죠. 근데 지영을 계속 옆에서 돕다 보니까… 사실 (압력솥을 구하러 가는) 7화 때도 지영을 도운 거였죠. 거기 가서 왕한테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하고 일부러 조언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옆에서 봤을 때) 왕이 (이전과는) 바뀌었네, 한 거고 12화에서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편이 될 순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10년 이상을 싫어했던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해도 바로 좋아지진 않잖아요.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이헌은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채홍이 시작 안 됐으면 (누이가) 애초에 안 끌려갔고, 이헌이 강목주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어쨌든 죽인 사람이 숙원인 걸 알지만서도 (이헌을) 좋아할 수 없었는데, 왕이 제산대군과 얘기 나눈 걸 들어봤을 때 왕이 하고자 하는 걸 이뤄내면 그래도 바뀌지 않을까 했던 거죠. 세상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열쇠랄까. 그래서 마침 제 엔딩 대사가 '내 이번만큼은 주상을 응원하겠다'라는 대사였고요."한때 제산대군 세력 밑에서 일을 '처리'하기도 했던 공길은 최종화에서 그들을 '처단'하는 데 앞장선다. 이주안은 "이헌이 좋아서 이헌 편에 선 게 아니라 그냥 너네들(제산대군 세력)이 더 엿 같고, 세상을 망치는 원흉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도 이쪽(조선 시대)은 군주가 있어야 세상이 유지가 되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쪽 편에 서겠다고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배우 이주안. YY엔터테인먼트 제공
지영을 응원하고 힘을 보태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무엇인지 묻자, 이주안은 "공길의 설정은 그거였다. 처음에는 지영을 지켜보다 보면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보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누이랑 겹쳐 보이는 거다. 그런데 지영도 죽을 뻔하고 자꾸 생명의 위협을 받으니까 이 사람을 죽게 하는 거는 내 누이를 또 한 번 죽게 하는 것과 똑같다고 본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두 번 다시 (사람의 목숨이) 이런 식으로 허비되면 안 된다. 그래서 강목주한테 찾아갔을 때도 '누이에 대한 복수를 하러 왔소이다. 그리고 그동안 죽어 나간 여인들의 복수도'라고 하지 않나. 누이뿐만 아니라 희생된 모두의 복수를 하면서 그런 (부당한) 제도가 없어지길 바라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정말 광대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광대는 세상을 해학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잖아요. 공길은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다고 보고요. 이 부분은 정말 사람들한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공길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누구의 편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애매해요. 그래서 마지막에 그 허탈한 표정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복수라는 게 공길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그걸 잃어버리는 순간 삶의 원동력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럼 공길은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가야 하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행동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이 행동이 변화에 힘을 보태길 바라면서 주상을 응원한 거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