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시나브로 AI 시대가 됐다.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 등 가전제품에 장착된 AI는 조금 똑똑한 기계 정도로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접한 음성형 개인 비서들은 조금 신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클로드(Claude), 미드저니(Midjourney) 등 이름부터 생소한 생성형 AI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다.
검색어를 요리조리 바꿔가며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물어만 보면 척척 찾아준다. 학교 과제나 간단한 보고서는 물론 매출 분석, 마케팅 제안 등 전문가 수준의 해답까지 순식간에 내려 준다. 호텔과 항공권, 관광 코스 등 여행 스케줄을 짜주고 AI 자신들이 천정부지로 밀어 올리고 있는 유망한 주식들도 골라 준다. 포토샵, 파이널컷은 이제 더는 필요 없다. AI가 원하는 이미지와 동영상을 알아서 만들어 준다. 영화나 음악 추천부터 무인 로봇택시까지 AI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출몰한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녀석을 봤나.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퇴직을 눈앞에 둔 꼰대는 오늘도 AI와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AI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나 보다. AI가 결국 인간을 파괴할 것이란 두머(Doomer. 운명론자)들도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국제인권컨퍼런스에서 필립 알스턴 뉴욕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는 "AI가 인간의 생각과 습관, 의료 정보까지 추적‧분석하는 시대"라며 "단순한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조지 오웰 소설 '1984' 수준의 감시‧통제 시스템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핵무기로 인류를 멸망시키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젊은 시절 감명 깊게 봐서 그런걸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터미네이터'를 모르는 어린 학생들도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AI의 대표적 도구인 스마트폰은 이미 몇 년 전 뉴욕의 고교생들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 '러다이트 클럽'(Luddite Club)의 학생들은 19세기 초 산업혁명 시절 일자리를 없애는 기계들을 부숴버린 영국 러다이트 선배들의 뒤를 이어 스마트폰과 SNS를 버렸다. 디지털과 온라인 기술의 편리함에 중독되는 세태에 반기를 들고 인간성과 인간 관계의 회복을 외치는 똑똑한 아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놀았다는 알파(α) 세대와 2030 젠지(Z세대)에게 AI는 기술이 아닌 생활이다. 그런데도 앞장서서 AI를 거부하자고 설파하고 있다. AI 상용화의 서막을 연 을해 여름에는 AI 비거니즘(AI Veganism)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창작물, 논문을 도용하고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전력을 남용하고 감정과 사고를 둔화시키는 AI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2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김창열 회고전에서 전시 중인 1971년작 물방울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신제품과 기술은 먼저 써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의 상징이자 속도전의 대명사인 한국의 젠지 역시 이에 동참하는 것 같다. 인쇄소 골목에서 변신한 힙지로에, 80년대 복고풍 식당에 젊은이들이 가득한 모습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주역들이 찾은 균형점이 아닐까? 삼복더위 속에서 기나긴 줄을 서서라도 김창열 선생의 순수하고 영롱한 '물방울'을 기어코 눈에 담고야 마는 그들은 'AI를 피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 AI도 써 본 사람이 잘 쓴다. '양날의 검' AI에 우리가 베이지 않도록, 내 손안의 친절한 비서가 스카이넷이 되지 않도록 젊은이들의 본능에 기대어 보자. 알스턴 교수의 말대로 AI 때문에 "인간다움을 잃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