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불법 정치 자금을 전달하는 등 '정교유착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통일교 한학자 총재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윤석열 정권과 정치권에 로비를 한 혐의로 통일교의 한학자 교주가 구속됐다. 통일교 교리대로면 한 교주는 메시아이자 독생녀로서 신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 시선에서는 종교인이 해서는 안될 일을 한 죗값을 받은 것일 뿐이다.
한·미·일 3개 국가에서 교세를 확장해 온 통일교에서 교주가 구속된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1984년 문선명 전 교주가 미국에서 이자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미 연방교도소에 수감됐었다.
통일교는 이념적 공통분모를 가진 일본의 보수정당을 정치적으로 지원(고액헌금)해오다 일본인 통일교도 살인사건과 맞물리면서 폐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일본 포교활동에서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최근 고액헌금과 불법행위 등을 문제삼아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해산명령을 내린 바 있다.
특검의 이번 조치는 비단 통일교 뿐아니라 한국사회의 종교계 전반에 여러 함축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독생녀 운운하는 교주도 법을 어기면 구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확인됨으로써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통일교도들의 반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도쿄 소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일본 본부. 연합뉴스 충성도가 높은 신자(축복가정)들 보다는 초심자에 가까운 신도들이 교주의 실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해외 포교의 거점인 일본에서 해산명령을 받은 데 이어 본산인 국내에서 교주가 구속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내부에서 후계를 둘러싼 투쟁이 촉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계속된 악재에 위기감도 높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통일교 교주 한학자의 구속보다는 그가 구속에 이르게 된 경위다. 특검이 청구한 영장에 따르면, 정치자금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 3~4가지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가 적시돼 있고 혐의내용의 본질적 부분은 종교집단이 정치권에 줄을 대 이런저런 로비를 폈다는 것이다.
아직은 로비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 건 아니다. 권성동 의원에게 특정청탁과 함께 1억 원을 건네고 전(前) 여당이었던 국힘으로도 통일교 자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으며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에게도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나와 있다.
특검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어 유착이 어디까지에 미쳤는지는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도 집단 입당(入黨)의혹'도 예외가 아니다. 통일교의 교주가 구속된 이상 통일교와 정권 유착의 실체적 진실을 향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본부 일대. 연합뉴스비단 통일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 우리 헌법도 20조에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가 종교를 통제하는 것을 막고자 함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이러한 정교(政敎)분리의 원칙은 심각하게 훼손됐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전광훈 목사나 손현보 목사 같은 개신교 목회자들은 정교분리 원칙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집회를 주도하거나 특정 대선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일부 목회자는 특검의 조사를 계속 받고 있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것과 특정정파에 편역드는 것은 분명히 구별될 필요는 있다.
정교유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가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도들의 정점에 서 있는 성직자가 특정정파의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할 경우 현실정치의 유권자이기도 한 성도들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검이 통일교주를 구속시키고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는 데는 이런 문제의식도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기독교계의 보수화 움직임과 관련해 종교계 한 인사는 "설교강단에서 정치이념을 설파하는 건 신앙적이지 않다. 강단에 정치적 편향성이나 자신의 신념을 나타내는 건 정교중립(분리)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정치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니까"라고 일갈했다.
'정교유착이 종교적 신념으로부터 동떨어졌다'는 건 이단교파에서 비롯된 정교유착이나 기성 교단에서 나온 정교유착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 외적인 목적이 종교적 신념을 앞선다면 선후가 바뀐 것이고 본말이 전도된 것에 다름 아니다. 특검의 수사가 종교계 전반에 경종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