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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희대 사법부에게 '본분'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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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 합당'은 공적인 자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 사진공동취재단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 사진공동취재단
내란사태의 뒷수습으로 어수선한 요즘처럼 '본분(本分)'이란 말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때가 있을까 싶다. 사전적 의미는 '그 사람이 마땅히 하여야 할 본디의 의무'를 말한다. 자신의 위치나 신분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있다.
 
고대 그리스 언어인 헬라어의 악시오스(axios)도 비슷한 의미다. '무게를 달다', '값을 매기다', '자리에 어울리다'는 뜻으로 쓰였다. 성경 에베소서의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구절에도 악시오스가 등장하는데, 소명에 어울리게 합당하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이다.
 
중국 당 태종 시절 저수량이란 사람이 기거주(起居注)에 임명됐다. 기거주는 황제의 언행을 기록하는 일종의 언관(言官)이다. 태종이 물었다. "나에게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대는 반드시 기록할 것인가?" 저수량은 이렇게 답했다. "저의 직책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기록하지 않겠습니까." 황제 앞에서도 저수량은 자신에게 부여된 공적인 자리의 무게, 즉 본분을 잊지 않았다.
 
사법개혁과 대법원장 사퇴론으로 정치권과 사법부가 힘겨루기에 한창이다. 그간의 행적을 돌아볼 때 사법부가 개혁의 도마위에 오른 것도 '본분'과 '합당'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본분을 다했나? 합당하게 행동했나?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12.3 비상계엄이 발발한 직후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대법원장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더이상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책무"를 망각하고 한밤중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법원을 짓밟으려 했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위헌적인 쿠데타 시도에 대한 법원 차원의 최소한의 조치로 대법원장에게 강력한 경고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란사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헌법수호의 기둥인 사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조계의 오랜 격언 때문인가 했더니 그도 아닌 것 같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희귀한 법 해석으로 풀어주더니 대선을 한 달 앞두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의 상고심 판결을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사건기록도 다 읽지 않은 정치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으로 보더라도 조희대 사법부는 사법정의라는 본분을 잊었고 사법독립을 운운할 자격도 없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16일 "대통령실은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의한 바 없으며, 앞으로 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여당 내에서 터져나오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요구도 "대통령실과 사전에 상의를 거친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에 대해 대통령실이 힘을 싣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선을 그은 메시지로 읽힌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조희대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조 대법원장 사퇴론은 불가피하게 삼권분립 침해 논란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의 선긋기는 적절하다고 본다. 더구나 논란이 부각되면 개혁에 저항할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들만의 사법부가 아닌,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변모시키려는 사법개혁의 동력에 바람을 뺄 것이다.
 
이제는 각자가 자기 본분을 돌아볼 시점이다. 사법부는 사법불신을 키운 것에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면 처절한 반성과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상고심 판결 적체가 심각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대법관 증원 문제도 사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사법부라는 조직의 평가는 개별 판결의 총합에 좌우된다. 스포츠에서도 오심이 종목 전체에 대한 이미지와 직결돼 대개 징계 등의 조치가 뒤따르는 법이다. 내란재판부에 쏠리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자구노력이 더더욱 요구되는 이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한 테두리 내에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면서 개혁의 성과를 내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이다. 사법부와 정치권이 충돌할 때 선을 넘으면 회초리를 들 것이요,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의 균형선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마음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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