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내란특별(전담)재판부 설치나 대법관 숫자 증원 등 더불어민주당이 추진중인 사법개혁의 저변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민주당이 입법·행정·사법간 견제와 균형원리를 흔드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조희대 원장 사퇴을 강력 주장하는 건 현 사법시스템에 내란 재판을 맡겨둘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여권은 무엇 때문에 사법부를 믿지 못하게 된 걸까? 몇 가지 눈에 띄는 이유가 있다. 지귀연 재판부의 재판지연 의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전원재판부의 상례를 벗어난 선거법 판결, 여기에 더해 국민들로부터도 신뢰를 잃고 있는 사법부가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판단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를 이끄는 지판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사건 심리를 주 2~3회 진행중인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심리 때의 주 4회 대비 느린 편이고 체포적부심사기간을 날짜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결국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구속취소결정을 내렸다. 재판부에서는 연말까지 심리를 종결하고 내년초 판결할 것이란 말도 들린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1달여 남겨놓은 시점(5,1일)에서 나온 대법원의 '이재명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은 현 여권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항소심 선고일(3월25일)로부터 36일만에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때로 법원의 판단이 민주당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민감한 시기였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선거법 위반사범의 경우 전심(前審) 판결뒤 3개월 이내 판결해야 하지만 이 사건은 더 빨랐던 것. 일반사건의 경우 선고까지 164일이 걸리고 이 마저도 민사사건은 거의 1년에 가까운 시일이 걸리는 점(2023년 기준)을 감안하면 얼마나 빠른 지 짐작할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던 국민들도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히 나온 대법원의 판단을 놀라워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유죄라는 판결취지가 알려지게 되면 표심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게 뻔한데 법원이 왜 판결을 조기에 강행했을까 하는 의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후보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거나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미쳐 낙선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법부의 명운을 걸고 과반 의석을 장악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와 승부를 겨루는 거대한 모험에 나서기로 결심했을 것…"이라고 한 말도 이런 불신에서 비롯됐다.
한정애 정책위의장과 추미애 법사위원장, 서영교 의원 등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사법부 비판에 가담하는 건 단순히 사법개혁안에 법원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판단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법원에 재판을 맡겨뒀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여권과 사법부의 대립이 격화하는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계엄선포가 다시는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내란사범을 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말로 내란세력 처리를 국정 우선 순위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특별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게 무슨 위헌이냐"는 이 대통령 발언에는 강력한 내란 척결의지가 담겨 있다. 이재명정부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尹정권의 계엄 선포와 이를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봐야 했던 다수 국민들의 심판과 지지로 탄생한 정권인 만큼 내란수습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내란특검 등 3특검을 통해 윤석열정부의 부패와 반민주적 국정운영 실태를 파헤쳐 조사하고 내란특별(전담)재판부로 하여금 신속한 법의 단죄를 받도록 하겠다는 구상 아래 내란청산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조희대 사법부가 속도전의 복병으로 부상한 형국이다.
내란 재판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된 사법개혁 논의는 분립된 권력주체간 대립으로 비쳐지면서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내란재판과 별론으로 법원은 재판의 신뢰를 높이고 이를위한 제도개선에 나서야할 상황이지만 정권에 따라 재판이 흔들리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 역시 개혁논의의 불쏘시개가 될 조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재판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결과에 국민이 신뢰를 보낸다면 누군들 중립이 생명인 법원을 흔들 수가 있을까?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부가 특정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조희대 체제에서도 법원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반복되지만 이를 개혁하려는 법원의 자정 움직임은 보기 힘들다.
2023년 나온 LH판결만 놓고 보면 법원은 고립된 섬과도 같아 보인다. LH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 막대한 투기이익을 거둔 혐의에 대해 1심은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2.3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파면기간 동안 받지 못한 급여 2억여원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놨다. 법리해석에만 치중하는 법원에 국민들은 공분을 쏟아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그 판단이 국민의 정서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채로 존재할 수는 없다. 여권에서는 법원이 개혁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는 건 자정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추진중인 사법개혁안에는 내란특별재판부 신설 외에도 대법관 증원 및 추천방식 개선, 법관 평가제도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 압수영장 사전심문제 등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개혁안이 망라돼 있다.
내란재판 발 법원개혁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가 관심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란세력 단죄가 제대로 이뤄져야 우리사회에 정치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