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전북 익산 모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A(60대)씨가 발견된 장소. 폴리스라인이 설치돼있다. 심동훈 기자익산에서 기초생활보장 중단으로 생계를 비관한 모녀가 사망한 가운데, 이들에 대한 수급이 지속될 수 있었다는 점과 재발 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왔다.
문태성 평화주민사랑방 대표는 지난달 30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익산 모녀에겐 주소지 변경 외에도 수급이 이어질 방법이 있었다"며 "A씨와 그의 딸에게 '가정해체 방지 별도가구 보장'이 적용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례 적용시 임대차계약 명의만 바꿔도 수급 가능
국민기초생활법상 기초생활의 보장은 가구를 단위로 이뤄진다. 이 중에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보장 가구에서 분리해 지원받을 수 있는 가구를 별도가구라고 한다.
'가정해체 방지 별도가구'란 가구 단위로는 급여별 선정기준을 초과하나 가구를 분리하면 선정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를 의미한다.
이는 가족 구성원의 소득 발생으로 인해 다른 구성원에 대한 수급이 끊겨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하기 위한 행정 지침인 국민기초생활보장 안내서를 근거로 한다.
문 대표는 A씨와 그의 딸이 가정해체 방지 별도가구 규정의 '(2)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없는 형제자매의 소득인정액 때문에 생계 또는 의료급여 선정기준을 초과하는 다음의 가구'의 종류 중 '②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에 해당된다고 봤다.
그는 "이런 경우에 A씨가 거주지에 대한 임대차계약 명의를 딸로 변경해 다시 계약했다면 다시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추정 소득 부과 무효' 판결 취지 따르면 익산 모녀도 보장
문 대표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의 판단 (2013구합51800)해당 판결문은 추정소득 부과처분에 대한 법령상 근거가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판결문 캡처문태성 대표는 추정소득 부과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단(2013구합51800)을 근거로 들며 "가정해체 방지 별도가구" 규정을 안내하지 않았거나 지침 해석을 통해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판결문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 있는 아무런 법령상의 근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추정소득은 취업 및 근로 여부가 불분명해 소득을 조사할 수 없으나 주거 및 생활 실태로 보아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자에게 부과하는 소득으로, 2016년까지 부과됐다.
지난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월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숨진 일명 '송파 세 모녀' 비극의 배경에도 추정소득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녀는 소득이 없었지만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일급 4만 1680원씩 15일, 한 사람당 62만 5천원씩의 추정소득이 3명의 가구원에게 부과됐다.
세 모녀에게 부과된 추정소득 187만 5600원이 2014년 당시 수급자 선정 기준인 3인 가구 최저생계비 132만 9118원보다 많은 것으로 여겨져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다.
문태성 대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일명 지침)에 명시된 "가정해체 방지 별도가구" 규정에 대해 익산시가 지침에도 없는 해석만으로 지원 대상이 아니라며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추정소득 부과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같이 무효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익산시 "특례 대상 아냐" VS 문 대표 "법률 근거 없는 변명"
익산시는 이들이 해당 특례의 대상자가 아니란 입장을 밝혔다. 익산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②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에서 '부모와 자녀'란 A씨와 그의 작은 딸 B씨가 아닌, B씨를 부모로 하는 가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B씨에게 남편이 없고, 자녀가 있어야만 해당 특례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익산시 관계자는 "A씨와 B씨는 안내서에 규정된 별도가구에 해당되지 않기에 주소지 분리 외에 안내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익산시의 해석이 "법률과 안내서(지침)에 명시적으로 나타있지 않은 근거 없는 것으로, 급여지원을 하지 못한 변명에 불과한 해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이후 익산시와 전북도는 수급 중지 가구 전수조사로 대응했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며 "안내서(지침)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별도가구"에 대한 정의와 유형, 대상과 기준을 법률개정을 통해 그 근거를 명확히 해 수급자의 급여 받을 권리를 잃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산시 청사 전경. 익산시 제공앞서 익산시 모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A(60대)씨가 추락해 숨지고, 그의 딸B(20대)씨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의 사망은 생활고와 지병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와 딸은 2006년부터 지난 2023년까지 약 17년 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월 A씨의 첫째 딸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이 발생해 지원 항목 대부분이 중지됐다. 지자체는 수급 재신청을 안내했지만, A씨는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익산경찰서 등에 의해 사건이 알려진 후 익산시는 재발 방지를 위해 기초생활보장 중지 가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집중 사례관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