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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는 진보적일까, 퇴보적일까[최영주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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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에밀리아 페레즈'(감독 자크 오디아르)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이 된 '에밀리아 페레즈'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 듯하다. 실제 트랜스 여성 배우를 캐스팅해 트랜스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뮤지컬 장르로 그려낸 '에밀리아 페레즈'. 이 영화는 과연 진보적인 영화일까 아니면 퇴보적인 영화일까.
 
능력 있는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는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의뢰를 받고 베일에 싸인 멕시코 갱단 보스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를 만나러 간다. 그의 요청은 놀랍게도 '자신이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달라는 것'이다. 리타는 델 몬테가 이전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탄생한 그녀, 에밀리아 페레즈(카를라 소피아 가스콘)가 세상에 나타나면서 모두의 인생에 2막이 오른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주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다루는 범죄물을 선보여왔다.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는 냉혹한 감옥 세계의 정치와 프랑스 사회 내 소수자인 이민자 계급 간의 갈등을 그려낸 '예언자'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에밀리아 페레즈'는 그의 특기인 누아르에 뮤지컬을 더하고, 멕시코 카르텔 두목 출신 트랜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특한 영화다.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에밀리아 페레즈'의 밑바닥에 깔린 단어는 '폭력'이다. 그리고 폭력의 중심에 있었던 주인공이 폭력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그렇기에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갱단 보스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사실 영화는 회개와 면죄 혹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트랜스 여성'이라는 소재는 주인공의 구원이라는 드라마에 비극성을 더하는 요소에 가깝다. 여기에 장르적으로는 뮤지컬의 외피를 입음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쇼'처럼 다가온다.
 
살아남기 위해 갱단에서 온갖 범죄를 저질러온 영화의 주인공 마니타스 델 몬테는 그 삶에 지쳐 여자가 되어 새출발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그 어떤 인간보다 나쁜 인간이 되는 삶이 싫어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성'이 되는 것이라는 거다. 폭력의 근원인 남성 마니타스가 여성이 된다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즉 마니타스의 성전환의 핵심은 폭력에 대한 면죄, 그런 삶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마니타스는 '여성'인 에밀리아 페레즈가 되어 폭력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바뀌었을지 몰라도, 그의 내면에는 마니타스로서 살았던 과거가 녹아있다. 리타는 에밀리아 내면의 마니타스로 인한 죄책감을 건들고, 이에 에밀리아는 카르텔 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에 나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에밀리아는 자신의 삶을 위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내와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에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 자신을 마니타스의 사촌인 에밀리아라고 속이고 말이다. 또 에밀리아는 갱단에 의해 폭력적인 남편을 잃고 기뻐하는 에피파니아(아드리아나 파스)를 통해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떠나려 하자 폭력성을 드러내며 붙잡으려 한다.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이처럼 마니타스와 에밀리아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존재의 모습을 "반 남자, 반 여자. 반 보스, 반 여왕. 반 아빠, 반 고모"라는 가사의 뮤지컬 신으로 표현한다. 에밀리아가 남자와 여자, 보스와 여왕, 아빠와 고모, 마니타스와 에밀리아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고뇌하는 것은 '에밀리아 페레즈'가 트랜스 여성을 중심에 놓은 게 아니라 폭력적인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반 남자, 반 여자'는 폭력의 과거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재의 은유가 된다. 구원을 말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트랜스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생략될 수밖에 없고, 에밀리아가 지닌 고뇌의 근원에는 '폭력'과 '구원'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기에 에밀리아에게 성전환은 일종의 자유를 향한 티켓이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면죄부처럼 주어졌다. 실제 성전환을 고민하고 실행한 이들의 고민과 별개로 '영화 속' 에밀리아에게 성전환은 그런 식으로 기능한다. 자연스럽게 마니타스와 에밀리아의 자아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묘사된다.
 
여성이 됨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얻었나 싶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었던 에밀리아는 회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그마저도 과거 폭력의 굴레가 에밀리아의 삶까지 이어지며 '반 남자, 반 여자'의 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마니타스에서 에밀리아로 '새 삶'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마니타스와 에밀리아는 동일 인물이다. 외면은 바뀌었을지언정, 그를 수술해 준 의사의 말마따나 영혼은 한 사람이었다.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면죄와 회개를 지나 에밀리아를 최종적으로 구원으로 이끈 건 삶에서 벗어나는 것, 즉 죽음이다. 그런데 영화는 에밀리아의 죽음을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마치 브라질 예수상을 보는 것처럼 '성인'(聖人)으로 표현한다.
 
비록 한 때는 죄를 짓고, 믿음에 반해 살았지만 회심해 거룩한 생활을 하다 죽으면서 '성인'이 된 것처럼 에밀리아를 그려낸다. 에밀리아의 마지막에서 '에밀리아 페레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트랜스 여성의 삶이 아닌 마니타스의 삶을 살다 회심해 에밀리아의 삶을 살며 많은 이를 구한 자의 '구원'이다. 이조차 스스로 도달하고자 했던 구원이 반, 에밀리아의 과거를 모르는 타인들이 건넨 구원이 반이다.
 
예수상을 닮은 에밀리아상, 그러니까 남자 성인(聖人)을 떠올리게 한 에밀리아의 마지막 길은 성인은 '남성'이라는 고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 감독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남성 반 여성 반' 그 경계에 선 에밀리아를 따라다닌 '남성'의 그림자였을까. 또 트랜스 여성의 비극적 삶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끝난 결말은 트랜스 여성에 대한 정반대의 현실을 풍자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것일까.

카르텔 보스에게 성전환은 면죄부 내지 회개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여성성'이 남성성이 저지른 죄를 회개할 유일한 수단이어야 했을까, 마니타스를 속죄하지 않고 에밀리아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진정한 속죄일까, 카르텔의 핵심이 카르텔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나서는 모습, 그 과정에서 뮤지컬 신으로 표현되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이야기는 과연 멕시코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본 끝에 나온 결과물일까.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마지막까지도 '에밀리아 페레즈'는 과연 영화 속 구원이 진정한 구원이었을지 그리고 영화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진보적인지, 퇴보적인지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애초에 '에밀리아 페레즈'의 중심축이 어디에 가 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 영화지만, 기존 뮤지컬 영화와 달리 현대무용과 결합한 '쇼'에 가깝고, 일반적인 뮤지컬 넘버와는 다른 색채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뮤지컬 장르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흥미롭고 매력적인지를 두고는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132분 상영, 3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외화 '에밀리아 페레즈'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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