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고대 그리스 시대를 담아내고, 이후 학문과 예술의 근간을 만든 호메로스를 두고 우리는 '음유시인'이라 부른다. 20세기 대중음악 역사에서 호메로스와 같은 인물을 한 명 뽑는다면 밥 딜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항을 노래하고, 음악을 넘어 문학사에도 그 영향력을 끼친 밥 딜런의 음악적 삶에서 중요한 시기를 골라야 한다면 언제여야 할까. '컴플리트 언노운'은 이에 대해 영화로 답했다.
문화적 격변기, 무명 뮤지션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은 음악을 하기 위해 뉴욕을 찾는다. 그곳에서 놀라운 공연을 펼치게 된 밥 딜런은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고, 당대의 뮤지션들과도 교류하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삶을 노래하고자 하는 밥 딜런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뉴포트 페스티벌에서 충격적인 무대를 펼친다.
'로건'(2017) '포드 V 페라리'(2019)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이번엔 현대 미국 문화의 상징이자 20세기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음악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을 스크린에 소환했다.
보통의 전기 영화가 잘 취하는 방식이 한 인물의 방대한 생애를 전반적으로 훑는 것이다. 그러나 '컴플리트 언노운'은 격변의 시대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의 삶 중, 뮤지션으로서의 첫걸음과 어떻게 '저항'과 '변화'에 도전했는지를 선택해 집중했다.
외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전 세계를 비롯해 미국 역시 1960년대는 격변의 시기였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은 이후 반전운동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촉발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인권 운동이 일어났고, 히피 문화가 생겨났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가 충돌하며 핵전쟁의 위협이 미국 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혼돈의 시기 속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터 킹 목사 암살 사건까지 벌어졌다.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미국 사회에 저항과 변화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밥 딜런은 '저항의 아이콘'으로 격변의 중심에 섰다. 그런 만큼 사회와 밥 딜런의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기에 영화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아내며 밥 딜런이 어떻게 시대와 공명하며 저항과 자유를 노래했는지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밥 딜런에게 음악은 단순하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의 음악의 본질은 저항이자 자유다. 그러나 유명세는 밥 딜런을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틀 안에 갇히도록 강요했다. 포크의 영향을 받은 그였고, 포크의 대중적 인기에 영향을 미친 그였기에 그의 음악을 '포크'에 한정하려는 이들도 생겨났다. 밥 딜런에게 '포크의 계승자'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밥은 고뇌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외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그 결과 나온 것이 '포크 록'이다. 이는 포크 순정파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그러나 밥 딜런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이 틀에 갇히는 걸 경계했다. 비틀스를 언급하며 그 역시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것임을 암시했다. 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자기타를 들고나온 순간, 그의 음악적인 저항이 시작된된다.
그의 저항정신은 단순히 사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음악 세계, 포크라는 장르에도 해당됐다. 이를 대표하는 사건이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이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밥 딜런을 뒤따라왔다. 포크의 전통을 대표하는 페스티벌에서 밥은 주최 측의 반대에도 전자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모두가 그의 초기 음악들, 다시 말해 포크에 기반한 음악을 들려달라 소리치지만 밥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크 록을 밀고 나간다.
전통적인 포크가 아닌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는 밥을 향해 일부 관중은 야유를 던지고, 일부 관중은 환호한다. 시대를 앞서간, 팬들을 앞서간 뮤지션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향했다. 그렇기에 밥 딜런은 20세기의 '음유시인'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영화는 무명의 뮤지션 밥 딜런이 어떻게 '저항의 아이콘'이 됐는지, 그리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어떻게 음악으로 시대를 이끌어 갔는지 그 근간을 보여준다. 단순히 저항적인 내용의 가사를 쓴 것만이 아니라, 뮤지션이자 밥 딜런이라는 인간으로서 어떤 고뇌를 했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마저 넘어서며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갔는지 이해할 때, 비로소 '밥 딜런'이 오롯이 와닿게 된다. 그렇게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으로 향하는 가교로서 역할을 한다.
외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밥 딜런이란 세기의 음유시인과 티모시 샬라메란 아이콘의 만남은 옳았다. 티모시 샬라는 밥 딜런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밥 딜런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 5년 6개월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컴플리트 언노운' 안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밥 딜런 그 자체가 되어 왜 전 세계가 사랑하는 배우가 됐는지 재증명했다.
조안 바에즈 역의 모니카 바바로와 피트 시거 역의 에드워드 노튼 역시 뛰어난 캐릭터 해석과 열연으로 미국 포크 역사의 중요한 인물과 순간들을 고스란히 펼쳐냈다. 특히 '탑건: 매버릭'의 피닉스 역으로 모니카 바바로를 기억했던 관객들에게 조안 바에즈로 변신한 모니카는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미 '앙코르'에서 조니 캐시를 다루며 포크의 시대를 그려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컴플리트 언노운'을 통해 1960년대와 밥 딜런의 중요한 순간들과 음악을 다시금 매력적으로 재현했다. '제임스 맨골드'의 이름은 이번에도 믿음을 안겼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밥 딜런의 곡들을 듣고 싶은데, 특히 영화에도 나오는 곡이자 영화 제목인 '어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이란 가사가 들어간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 듣고 싶어진다. 1965년에 발표한 앨범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의 대표곡으로, 밥 딜런과 영화에 중요한 곡 중 하나인 만큼 꼭 들어보길 권한다.
141분 상영, 2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컴플리트 언노운'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