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카페에서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 발매 라운드 인터뷰를 열었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일곱 번째 정규앨범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를 발매한 가수 윤하. 앨범 발매 다음 날인 2일 오후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윤하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것'에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며 '안 알려진' 혹은 '덜 알려진' 것과 '가치'는 무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타이틀곡이 된 태양물고기는 개복치의 영문명 '선 피시'(SUN FISH)에서 착안한 소재다. 개복치에게 '태양 물고기'라는 또 다른 멋진 이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을 터. 윤하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에든 잘 몰입한다는 그는 낯설었던 개복치라는 존재를 점차 친근하게 느끼면서, '개복치 같은 사람이 되자'라고 마음먹었다.
2021년 나온 '엔드 띠어리'(END THEORY)와 리패키지 '엔드 띠어리 : 파이널 에디션'(END THEORY : Final Edition) 이후, 두 번째 '띠어리'가 될 이번 앨범에서는 원래 '인간'을 다루려고 했다. 회사는 역사, 세계사 등을 다루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으나 윤하는 "자신이 없었다." 역사의 경우, "한쪽이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제가 현명하게 풀 만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물'을 가지고 '우리의 이야기'를 해 보자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개복치는 금방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하는 여러 자료를 검색하면서 이유를 알았다. 그는 "인간이 (개복치를) 가두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던 거고, 바다에서 정상적으로 살았을 땐 성체 되고 나서 20년 넘는 수명을 갖고 있다. 수면 위부터 심해 800m 이르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생명체인데, 행동반경이 넓고 바다 생물들에게 이득을 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생기다 만 느낌도 있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해파리가 주식이라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자꾸 정이 가고, 제가 너무 동화돼서 이 친구(개복치)한테 이입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저녁 6시 공개된 윤하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 타이틀곡은 '태양물고기'다. 윤하 인스타그램이어 "요즘 SNS가 너무 발달돼 있다 보니까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페르소나를 많이 만들게 된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관한 불안이 사회 전반에 깔린 정서 같다. 언제부터 그랬는진 모르지만. 우리 이 개복치 같은 사람이 되자, 오해받고 누구한테는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길을 가면, 나름의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보통 타이틀곡이 첫 번째나 인트로 다음 두 번째 트랙으로 실리는 것과 달리, 윤하는 '태양물고기'를 여섯 번째 트랙으로 배치했다. 그는 "지난 앨범부터 세계관 작업하고 있다"라며 "리패키지는 훨씬 더 서사 집중형으로 트랙 리스트가 구성되는데 이번 거는 처음부터 이입해서 전체를 들었을 때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첫 번째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앨범을 '통으로' 듣는 게 이제 더 이상 '보편'이 아닌 시대에, 중간을 넘겨야 나오는 타이틀곡이 청자에게 장벽으로 다가가진 않을까. 노파심에 물었더니, 윤하는 "그 걱정은 매번 했던 걱정이어서 걱정을 해봐야 소용이 없더라"라며 웃었다. 이어 "타이틀이라고 딱 표기가 되어서 나오니까 아마 먼저 들으실 분들은 타이틀부터 듣지 않을까? 만약에 전체 재생을 들으신다면 1번 트랙은 '맹그로브'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라고 전했다.
앨범을 준비할 때 호주 브룸에 갔다. 은하수를 보러. '아예 다른 환경에 나를 두고 생각'해 봐야 떠오르는 것이 있을 거라고 봤다. 호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윤하는 구름에 그림자가 지는 걸 처음 봤다. 거기서 가져온 주제도 있다. 도착해서 은하수 보러 갔을 때는 '맹그로브'라는 식물을 처음 접했다. '태양물고기'(개복치)에 이입했듯, 맹그로브에도 이입했다.
이번 앨범에는 총 10곡이 수록됐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첫 번째 트랙 주제이자 제목인 '맹그로브' 역시 독특한 식물이다. 윤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썰물이 나가고 밀물이 들어온다. 뭍 생물이 와서 어떤 터전을 만들어준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자기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지 않나. 물이 들어오면 소금물을 끼얹어주고,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발이 묶여있고, 만약 (여기에) 인격을 부여한다면 어떨까? 나는 견디기 힘들 것 같은데? 되게 경이롭게 바라봐지더라. 혹자는 악취가 심한 나무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라서 이 이야기도 꼭 전할 수 있으면 했다"라고 밝혔다.
여행지를 호주로 정한 건 광해 지도 덕이었다. 빛의 오염(Light Pollution)을 나타낸 지도인데, 등급이 낮을수록 별이 잘 보이는 깜깜한 하늘이 있는 곳이다. 윤하는 "5등급이 제일 안 좋은 거고, 0등급이 제일 높다. 우리나라에는 섬 말고는 0급지가 없었다. 호주는 멀었고, 경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갔는데 너무 좋았고, 일단 사람이 아예 없으니까 치안이 너무 좋았다. 동물이 많기 때문에 차만 잘 타고 있으면 별일이 없었다"라며 웃었다.
'그로우스 띠어리'는 윤하의 세계관 속 '소녀'가 굉장히 많은 생물을 만나는 이야기다. 이런 세계관을 그린 이유를 묻자, 윤하는 "제 시각이 독특한 건지, 너무 과몰입하다 보면 하나하나 개체들에 울컥하는 감정이 있다. 연어 같은 경우는 소화성 어류들이 성체가 돼서 바다로 나간다. 사람의 성인식처럼 은빛 드레스를 입고 '은화'가 돼서 태양 빛이 엄청 반짝반짝한 채로 나가는 거다. 그 바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채로"라고 답했다.
이어, "제가 (20주년을 맞아서)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스무 살의 키워드하고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채택하게 됐다. 개복치 같은 경우도 맹그로브와 비슷한 면이 있긴 한데 대중적으로 엄청 알려지거나, 주류라는 느낌은 아니지 않나. 고래, 상어, 개복치가 있으면 인기투표했을 때 무조건 고래가 1등 할 거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바오밥 나무, 맹그로브가 있으면 맹그로브가 1등은 아닐 거다.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하는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관심이 간다는 의미일까. 그러자 윤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본인을 개복치나 맹그로브라고 여긴 적이 있는지 질문에 윤하는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사건의 지평선' 전까지 그랬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나만 알기 되게 아까운 가수' '늘 아쉬운 가수' '한 발짝 더 나아갔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가수'라는 댓글을 자주 봤다는 윤하는 처음에는 '뭔 상관? (댓글을 달아주는) 님이 알면 되지, 난 그거로 충분한데'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차츰 '우리 팬들 어깨를 펴 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윤하는 "우연한 기회에 많이 사랑해 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보니까 뿌듯하긴 하다. 개복치나 맹그로브도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걔들이)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라며 "유명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부분이 이해가 가지만, (남들이) 몰라도 가치 있는 부분이 엄청 많다"라고 부연했다.
네 번째 트랙 '은화'는 여동생과 함께 작사했다. 윤하는 "작사 전체를 제가 혼자 하려고 했다. '은화'는 마지막 네다섯 줄 남긴 상황이었는데, 이것까지 완성해서 전체 단독 작사로 나가면 좋겠다, 팬들이 진짜 좋아하겠지 했는데 마감 기한이 점점 다가오고 심적으로 너무 힘든 거다"라고 털어놨다. 동생한테 '혹시 좋은 생각 없어?' 했는데, 금방 나오더라고. 윤하는 "며칠 만에 해결해서 이렇게 덕을 보게 됐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수 윤하. C9엔터테인먼트 제공'맹그로브'로 시작한 앨범은 '죽음의 나선' '케이프 혼' '은화' '로켓방정식의 저주' '태양물고기' '코리올리 힘' '라이프리뷰' '구름의 그림자'를 거쳐 '새녘바람'으로 끝난다. 생소한 느낌의 단어와 표현이 많다. 이런 부분에 고민은 없었을까. 윤하는 "회사와 갈등도 있고 싸우기도 하지만 정말 좋은 부분이 아티스트로서 (쓸)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시고, 충분히 생각하게 해 주시고,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대충 해~' 하지 않아서 토론을 몇 시간씩 한다는 거다"라고 답했다.
대중적이지 않은 느낌의 제목을 더 걱정한 건 오히려 윤하였다고. 그는 "좀 쉬운 제목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하니까 대표님이 '갈 거면 확실히 가는 게 맞지' '인간의 인생은 적당한 건 없어'라고 하셨다. 제작자가 훨씬 아티스트 같아서 반성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대화의 과정이 있었다"라며 '어차피 정규앨범은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야. 돈 벌려면 정규앨범 미친 짓을 왜 해?'라고 한 대표의 말을 전해 웃음을 안겼다.
마지막까지 앨범에 넣는 것을 고민한 곡은 탑라인 작곡에 참여한 '로켓방정식의 저주'였다. 윤하는 "제일 마지막에 픽스(확정)된 것 같다. 하도 안 나와서"라고 고백했다. 코드가 단조로워서 '금방 하겠지' 싶었는데 "어지간한 멜로디"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윤하는 "선 굵게 가려고 하면 너무 촌스러워지고, 요즘 노래처럼 잘게 쪼개거나 하면 윤하 노래 같지 않고… '페리'라는 작곡가분이 도와줬다. 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라고 전했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수록곡 중 추천하고 싶은 건 팬 송인 '새녘바람'이다. 정규 1집 '고백하기 좋은 날' 수록곡 '플라이'(Fly)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다. '천 번 넘어져도 다시 한번 나는 달려갈 거야'라고 하는 가사가 있는데, 이걸 확장한 게 '새녘바람'이다. 윤하는 "제가 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도 기다려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 믿음에 대한 보답 같은 곡"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해 또다시 '히트곡'을 만들어 낸 윤하. 윤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늘어난 상황에서, 가수 윤하를 알 수 있는 앨범을 추천한다면 어떤 것일까. 이에 윤하는 "전에는 4집 '슈퍼소닉'(Supersonic)을 많이 얘기했다. 지금은 다 필요 없고 새 앨범이다. 지금까지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새 앨범만 들어주셔도 지금의 윤하를 알 수 있다"라고 답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일 제 손때가 많이 묻었어요. 계속 들고 다니면서 고치고 수정하고 주제를 생각하고… 아무래도 시간을 가장 많이 썼으니까 애정이 많이 가는 거 같아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