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오컬트'라는 장르적인 한계를 넘어 '파죽지세'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파묘'는 개봉 11일 만에 2022년 최고 흥행작 '범죄도시2'와 2023년 최고 흥행작 '서울의 봄'보다 빠르게 600만 고지를 돌파했다. 또한 개봉 16일째인 8일,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곡성'을 제치고 한국 오컬트 영화 사상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이어 18일째인 10일에는 800만 관객까지 넘어서며 심상치 않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파묘'가 과연 언제 '천만'이라는 대기록을 쓸지만이 남았다.
'파묘'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 단 두 편의 영화로 '오컬트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획득한 장재현 감독답게 오컬트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애정이 담겼다. 여기에 이른바 항일 코드와 캐릭터 맛집으로 소문나며 전 세대를 아우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에 호러 상급자가 아닌 중급자라고 우기는 기자와 어쩌다 보니 호러 상급자로 오해받아 온 호러 초급자인 기자가 만나 '파묘'의 인기 요인을 파묘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파묘' 체감 공포 지수
최영주 기자(이하 최)> 순수하게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보자. 공포 지수만 놓고 보면, 10점 만점 기준으로 나는 2.5점? 3점? 무섭다기보다는 천천히 긴장감을 쌓아가는 게 있었다. 참고로 난 호러 영화를 잘 보는 건 아니고 중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눈막귀막은 안 하고 다 보긴 한다. '파묘'는 순한 맛이라서 편안하게 봤다. 평소 호러를 잘 못 보는데, '파묘'는 공포 지수가 어느 정도였나? 아니, 그 전에 어느 정도 캔슬링 없이 본 건가?
유원정 기자(이하 유)> 중급? '파묘'가 편안하다는 걸 보니 아닌 것 같다. '눈막'까진 당연히 했고, 캔슬링 구간이 꽤 많았다. (웃음) 다만 예상치 못하게 놀라거나 이런 구간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하긴 이건 호러물이 아니라 오컬트물이니까? '파묘'가 생각보다 순한 맛이라고 느낀 게 마지막 '오니'와의 대치 장면을 그래도 눈을 뜨고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묘'는 귀신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공포 강도가 더 높고, 그 이후에는 점점 낮아져 오히려 클라이맥스와 결말 부분에 가면 가장 떨어지는 느낌이다. 말이 길었는데 최종적으론 10점 만점에 7점 매기겠다. '오니'가 실체화한 장면을 내가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3점 깎았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파묘', 어떻게 봤어?
최>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로 자신만의 오컬트 길을 걷고 있는 장재현 감독이 보다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캐주얼한 오컬트로 돌아왔다. '장재현식 퇴마록'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서로 다른 개성의 네 명이 팀을 이뤄 오컬트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어릴 적 좋아했던(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퇴마록'을 연상하게 했다.
오락적이면서도 오컬트적인 요소, 특히 이전 작품들에서도 그랬듯이 덕후들을 환장하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내가 이만큼 넣어 놓은 다양한 코드를 한 번 찾아보고 해석해 보라는 거다. 숨은그림찾기 내지 퍼즐 맞추기 같은 재미가 있는 거다. 여기에 캐릭터의 매력과 관계성까지 살리면서 정말 여러모로 덕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 같다. 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안다고, 오컬트 덕후 장재현 감독이 여러 오컬트 덕후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유> '검은 사제들'도 상당히 캐주얼했던 기억이 난다. '파묘'는 그러면서도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컬트에 집중했다. 서양 오컬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콘스탄틴'이 생각 나기도 한다. '콘스탄틴'이 전형적인 서양의 오컬트 요소들, 성물, 천사와 악마, 구마 등을 액션으로 풀어나간다면, '파묘'는 무속, 풍수지리, 이장, 퇴마 등 본격 K-오컬트 재료들을 '진심으로' 활용했다. 거기에 민족의 역사적 아픔까지 녹여내면서 우리 입맛에 맞게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낸 것 같다.
각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전문 직업인으로서 정말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다. 분명 그렇게 시작했는데, 장으로 구분된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면서 관객들은 이들과 함께 수상한 묘지의 진실에 점점 근접하게 된다. 단순히 정체 모를 공포감보다는, 이 과정이 어딘가 있을 법한 미스터리 사건처럼 전개된다. '조상묘의 이장'이라는 누구나 맞닿을 수 있는 현실과 그 현실을 단초로 양파처럼 하나씩 실체가 드러나는 사연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 '사바사' '파묘' 포스터. CJ ENM, ㈜쇼박스 제공장재현 vs 장재현 vs 장재현
최> '검은 사제들'의 캐릭터성과 '사바하'의 매니악한 지점 중간에 놓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 사제들'은 사실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로만 칼라를 선보인 최부제(강동원)를 보는 재미가 큰 작품이었다. 그리고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과 달리 전문적이고 종교적인, 보다 매니악한 특성이 강했다. 정말 각 잡고 분석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일종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파묘'는 그 두 지점을 절묘하게 버무린 작품이다.
풍수 지리사 김상덕(최민식)과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윤봉길(이도현)은 직업적으로도 조금은 특수한 지점에 있고, 각 캐릭터가 가진 개성도 분명하다. 이러한 네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는 풍수와 무속, 역사와 오컬트의 요소가 어렵지 않게 녹아 있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공포 수위를 조절하면서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균형을 맞췄다.
유> 장재현 감독의 커리어에 있어 '파묘'는
상당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마이너한 장르로 평가되는 오컬트 영화가 대중에 통하기 위해서 어떤 점을 추가하고 어떤 점을 덜어내야 하는지 완벽하게 감을 잡은 듯 하다. 일명 강동원의 후광으로 회자되는 '검은 사제들'도 그랬지만 분명히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는 이미지와 표상을 벗어나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귀신보다 '험한 것'이 곳곳에 도사린 우리 사회의 단면을 조명한다. '사바하'는 너무 건너뛴 장면이 많아서 뭐라고 비교해서 평가할 수 없는데 더 어둡고 진득한 광기가 느껴졌던 기억만 얼핏 난다. 분명 '파묘'보단 고난도였을 거다.
관객에게 시각적 공포나 심리적 압박만을 자극하지 않고, 볼거리에 더해 생각할 거리와 마지막에 풀리는 소위 '떡밥'을 곳곳에 배치해 놓아서 이를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파묘를 1차 관람한 지인들도 이 때문에 N차 관람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다시 볼 때는 무서울 게 없으니 '파묘' 안에 설정된 각 귀신과 인간들의 관계성, 또 벌어진 사건들의 단서를 꼼꼼히 보고 싶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무서울 게 없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았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최> 솔직히 조금 더 무서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그리고 '파묘'는 조금 추리물적인 요소도 있었다. 전반부에서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한 줄 알고 안심하게 만든 뒤 한 번 꺾어서,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허리를 끊어서 진짜 문제로 들어가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미스터리와 팀업 무비가 더 빛을 발했던 거 같다. 그런데, 앞에서 '파묘'의 체감 공포 지수를 7점이라 했는데,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는 각각 몇 점이었는지 궁금하다.
유> 더 무서웠으면 '파묘'는 기억에서 날아가 오늘의 영화톡은 없었을 거다. (웃음) 그렇게 점점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드는 기법도 좋았고, '눈막'을 해도 사운드만큼은 생생해서 적절하게 시각적 상상이 가능했다. 나 같은 초심자를 위해 신경 쓴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이런 장르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오감이 만족스러운 영화일 것 같았다. '검은 사제들'은 그래도 흐린 눈 해야 할 구간이 많이 없었다는 점에서 5점을 주고 싶고, '사바하'는 시각적 공포도 공포지만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상당히 견디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9점 주겠다. 중간에 못 견디고 뛰쳐나갈 정도는 아니었기에 -1점 감점했다.
영화 '파묘' 스페셜 포스터. ㈜쇼박스 제공'항일'과 '오컬트'가 만나면
최> 리뷰에도 썼지만, '파묘'를 보면서 떠올랐던 것 중 하나가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감독 유상욱, 1999)이다. 영화 개봉 이후 그저 오컬트 영화인 줄 알았던 '파묘'에 항일 코드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항일 코드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게 된 저력이기도 하다. 영화는 사실 관람 전부터 캐릭터들의 이름을 통해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대놓고 암시했다.
항일의 코드는 이른바 '쇠말뚝' 이야기로 이어진다. 과거 도시괴담 내지 음모론처럼 자주 나왔던 이야기인데, 일본이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풍수지리적으로 주요 위치에 쇠말뚝을 막았다는 거다.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도 쇠말뚝 이야기가 나오고 '퇴마록' 국내편 2권 '초치검의 비밀' 편은 주요 내용은 천부인이긴 한데, 일본 악당 스기노방이란 주술사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 '풍수전쟁'도 그렇고 말이다. 이처럼 오컬트 콘텐츠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유> 쇠말뚝 이야기는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산맥'과 '정맥'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이 땅 전체를 관통하며 산줄기를 강줄기와 연관시켜 '정맥'으로 표현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일부러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어 '산맥'으로 치환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지리학자가 조선의 산줄기를 조사해 이처럼 '산맥'을 분류한 것은 맞지만 이는 민족 정기를 끊었다기보다는 일제 수탈 정책에 따른 지질학적 광물질 조사의 일환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나 저러나, 아픈 역사의 흔적임에는 매한가지다.
비록 콘텐츠의 단골 소재지만 글로벌 인기까지 신경 써야 되는 시대다. 상업 영화에서 일제시대의 역사적 음모론을 '최종 보스'처럼 심어 놓기까지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국내 관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영화임은 분명하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최> 이러한 역사적인 부분 등이 MZ를 비롯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오컬트로 만든 것 같다. 항일 코드로 다시 돌아가자면, 극 중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김재철)은 친일파의 자손이다. 이 친일파 집안의 문제의 근원에는 '땅'이 있다. 약탈과 살인을 일삼고, 민족정기마저 끊고자 했던 일본의 잔재가 땅에 묻혀 있던 거다. 친일파 자손의 의뢰를 받아 결국 묘를 파고, 굿을 하고, 최종 빌런인 쇠말뚝 역할의 일본 요괴 오니(鬼, おに)를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친일 잔재 청산의 의미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병폐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지닌 캐릭터로부터 생각해 본다면, 일제강점기 당시 상황이 '첩장'과도 비슷하다. 하나의 땅을 두고 주인 아닌 나라가 주인을 핍박하며 두 나라가 존재했고, 하나의 민족이지만 친일과 친일 아닌 자로 나뉘었다. 하나의 땅 위에 이렇게 두 개의 상반된 존재가 중첩돼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과 그 역사의 잔재를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장재현 감독이 자신의 영역을 보다 확장했다고 생각한다.
유> 크게 보면 오컬트와 역사의 조합이다. 귀신은 한을 품은 존재니 어떻게 보면 충분히 엮을 수 있단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를 얼마나 영리하게 엮느냐는 감독의 역량에 달린 문제였다. 장재현 감독은 기이한 초자연적현상의 근간을 이 땅 위에 기록된 '역사'로 삼았다. 친일파 자손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며 사는 박지용네 가족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이어 받아 가장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주인공을 떠올리면 역사적 모순을 느끼게 된다. 자손이란 혈연 관계를 떠나 친일 잔재가 지금까지도 이 사회의 양지 바른 곳을 좀 먹고 있으며 정작 빛나야 하는 가치들은 어두운 곳에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풍수사 김상덕의 역할이 컸다. 최민식의 연기나 '포스'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처음에는 김상덕이 대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궁금증이 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항일 코드가 관통하는 이상, '우리 땅'에 평생을 바친 풍수사가 활약할 수밖에 없더라. '파묘' 중반부까지 화림의 서슬 퍼런 칼날이 빛을 발했다면 '첩장'이 드러난 중반부 이후부터는 이 땅에 묻혔거나 혹은 외면해왔던 역사적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를 풍수 관계로 분석하는 김상덕의 시선 덕분에 과한 민족주의적 해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균형을 굉장히 잘 잡았다. 김상덕이 '쇠말뚝' 오니를 처리한 순간, 앓던 이가 빠진 듯 잠깐 가슴이 시원해지더라. 물론,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을지라도.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