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빈 자격으로 5박 7일 간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 시간으로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국내 수출기업들의 명운이 걸린 가운데 경제 외교를 표방한 윤 대통령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방미 일정을 소화 중인 윤 대통령은 26일(미국 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공동 기자회견을 순차적으로 소화한다. 미국 도착 후 첫날 일정으로 첨단산업 포럼과 나사(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등을 방문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지만, 역시 방미의 핵심 일정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다.
120여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미국을 순방 중인 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배터리‧반도체‧IRA 등 수출 기업들의 현안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반도체 문제의 경우,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최대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관건이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25일 미 백악관은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사실상 대(對)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시사했다.
한국 프레스센터 찾아 브리핑하는 존 커비. 연합뉴스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한국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최근 미국이 한국 기업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을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와 관련해 "국가안보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안보와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진 첨단기술 보호에 있어 협력을 굉장히 강화했다"며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있어 양국 간 공고한 협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가 '중국이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가 부족해지더라도,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한국 측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커비 조정관의 답변은 사실상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한국 측에 동행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됐다.
IRA와 반도체법 등 시행으로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커비 조정관은 "미국에 투자한 많은 대한민국 기업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칩스법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은 IRA 시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 형태로 미국 내 공장 신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 자국 내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보조금 혜택 관련 규제 완화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은 약 7500달러로 우리 돈으론 1천만원 상당 규모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앞서 지난 17일 미국 정부는 IRA 세부 지침에 따라 보조금 지급 대상 16개 전기차 차종을 발표한 바 있다. 당초 북미산 조립 요건을 맞추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엄격해진 배터리 요건까지 맞춰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세부지침에서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해당하더라도 북미에서 제조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할 경우 3750달러를 지급한다. 또 미국이나 FTA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의 40% 이상 사용할 경우 3750달러가 각각 지급되도록 규정이 엄격해졌다.
미 재무부가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는 테슬라 모델3, 모델Y, 쉐보레 볼트, 이쿼녹스, 포드 E-트랜짓, 머스탱 등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해당됐다. 현대차와 기아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명단에서 빠졌다.
이처럼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공세 속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만큼 우리 측이 실리를 얻어낼 수 있는 전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지난 25일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2024년 대선 출마 도전을 선언한 가운데 '자국 이기주의' 무역 정책 기조를 더 강화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선 협상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